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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과 애찬

Joyfule 2023. 7. 30. 02:52




 

 

     성찬과 애찬 

         길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초대 교회의 모습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의 교회 생활은 어떠하였을까? 이에 대해 사도행전 2장 4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cf. 2:43-47; 4:32-35)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초대 교회가 힘쓴 것을 네 가지로 본다. 곧, 1) 가르침, 2) 교제, 3) 떡을 뗌, 4) 기도. 그러나 박윤선 박사는 특별한 논의 없이 1) 사도의 전도, 2) 사랑의 교제, 3) 기도, 이렇게 세 가지로 보았다. 여기의 ‘떡을 떼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지만 ‘성찬’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Calvin, Bruce, Jeremias, Van Eck 등). New Geneva Study Bible도 성찬으로 보며, NIV Study Bible도 (46절에서는 보통의 식사를 의미하지만) 여기 42절에서는 성찬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 한다. 화란 자유대학의 신약학 교수를 지낸 F. W. 흐로쉐이드(Grosheide)는 여기 이 표현은 성찬 또는 애찬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애찬’을 좀 더 선호한다.

 

교제와 떡을 뗌

  그러면 사도행전 2장 42절의 ‘떡을 떼는 것’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찬’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애찬’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보통의 식사’인가? 이를 알기 위해 먼저 원문을 정확히 살펴야 한다. 원문에 보면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 사이에 ‘카이’(and)가 있고 ‘떡을 뗌’과 ‘기도’ 사이에도 ‘카이’가 있지만, ‘교제’와 ‘떡을 뗌’ 사이에는 ‘카이’가 없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and) 교제, 떡을 뗌과(and) 기도에 힘썼다.” 여기서 ‘교제’와 ‘떡을 뗌’ 사이에 ‘카이’가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물론 후대의 소문자 사본들(Byz)에는 ‘카이’가 들어 있는 것이 많지만 고대 사본들(Aleph A B C D lat 등)에는 (거의) 없다. 아마도 후대의 필사자들이 “어? 여기에 왜 ‘카이’가 없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집어넣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이 둘 사이에 ‘카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교제’와 ‘떡을 뗌’은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일한 의미 범주에 속함을 나타낸다. 문법적으로 여기의 ‘교제’와 ‘떡을 뗌’은 동격(同格)으로 되어 있다(둘 다 與格). 이 동격은 동일한 내용을 다르게 표현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면 계시록 14장 3절에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에 의하면 ‘십사만 사천’과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동격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십사만 사천’이 곧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안에서 이런 동격 표현들은 2장 19절(‘징조들’ 곧 ‘피와 불과 연기’), 22절(‘나사렛 예수’ 곧 ‘하나님에 의해 증거/인정된 자’), 36절(‘주’와 ‘그리스도’ 곧 ‘이 예수’) 등 많이 있다.

  따라서 2장 42절의 ‘교제’ 곧 ‘떡을 뗌’은 같은 내용을 좀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교제’(코이노니아)를 힘썼는데, 구체적인 방법으로 ‘떡을 떼는 것’(식사)을 통해 실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떡을 떼는 것’은 초대 교회가 ‘코이노니아’를 실천하는 중요한 한 방법이었다(cf. Polhill). 그렇다면 초대 교회가 힘쓴 것은 네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곧, 1)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음; 2) 교제 곧 떡을 뗌; 3) 기도. 간단히 말하면 ‘가르침’(Teaching), ‘교제’(Fellowship), ‘기도’(Prayers)가 된다.

 

식사 교제의 중요성

  ‘떡(빵)을 떼는 것’은 식사를 나타내는 유대적 표현이었다. 복음서의 많은 곳에서 ‘떡을 떼다’는 표현은 보통의 식사를 의미하였다(마 14:19; 15:36; 막 6:41; 8:6, 19; 눅 9:16; 24:30, 35). 또한 사도행전 27장 35절에서도 보통 식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공동식사’를 교제의 주요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냥 ‘말’로써만 교제한 것이 아니라 또는 ‘노래’나 ‘친교게임’을 통해 교제한 것이 아니라 ‘함께 식사’하는 것을 통해 교제한 것이다. 유대인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식사’는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교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당시 ‘세리’와 ‘죄인들’과 교제하지 아니할 때 함께 식사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나타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식사하심으로써 그들과 교제하셨다(막 2:15-16; 눅 7:34 등; cf. 행 11:3; 갈 2:12).

  이러한 ‘식사 교제’는 초대 교회에 있어서 또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노년을 모국에서 보내기 원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와서 살았던 것과 관계될 것이다. 당시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없었던 관계로 이들 노인들, 특히 과부들의 생계 문제는 절실한 과제였다. 그런데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를 ‘공동식사’를 통해 해결하였다. 초대 교회는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했는데, 그 주된 방법은 ‘공동식사’를 통한 구제였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이런 공동식사는 ‘아가페’(애찬)로 불리게 되었다. ‘사랑’이 구체화된 것이 곧 ‘애찬’이었던 것이다.

 

애찬의 폐지

  그러나 이런 ‘애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헬라파 과부들’과 ‘히브리파 과부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었다(행 6:1). 이것은 아마도 구제를 위한 ‘식탁 봉사’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문제였던 것 같다. 날마다 식사를 준비하고 제공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이에 불만과 불평이 있었다(고전 11:17-34).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각자 음식을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어 먹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이를 통해 ‘사랑’ 곧 가난한 자 구제를 실천하였다. 이때 그들은 먼저 ‘성찬식’을 하고 먹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실제로 행할 때에는 어려움이 많다. 가난한 자들은 늘 적게 가져오거나 아예 안 가져오고 그냥 먹기만 하니 부자들이 화가 난 것이다. 그래서 먼저 온 부자들이 자기들끼리 먼저 먹어 버렸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늦게 오니 먹을 게 없었다. 이 소식을 듣고는 바울이 너희가 먹을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책망한다. 이런 것들은 선한 목적으로 시작한 ‘아가페’가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았음을 보여 준다.


  그 후의 교회 역사를 보면 이 ‘애찬’이 계속 논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주후 364년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결국 이 ‘애찬’을 폐지하고 말았다. 그래서 서양 교회는 그 후로 ‘애찬’이 빠진 ‘성찬’만 행하게 되었다. 원래의 ‘성찬’은 ‘애찬’과 함께 하는 실제 식사였다. 빵과 포도주를 배불리 먹는 실제 식사였다(디다케 X). 그러나 그런 ‘실제 식사’는 ‘애찬’이 폐지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의식적인 ‘성찬’만 남게 되었다. 중세 교회는 천년 이상 의식적 성찬만 행하였으며, 종교개혁자들도 이 ‘성찬’의 신학적 의미만 바로잡았을 뿐 ‘애찬’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모라비아 형제들과 초기 웨슬리안들은 ‘애찬’을 시행하였으나 곧 사라졌다. 그래서 서양 교회는 예배 후 교회에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애찬’(아가페)이 없으며 친밀한 교제와 공동체성이 부족하다.

 

한국 교회의 나아갈 방향

  그러나 한국 교회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情)과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주일 날 공동식사를 통해 사랑과 교제를 실천해 왔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귀한 유산이며 또한 초대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양 교회를 그대로 모방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가 어떠했는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서양 신학자들을 그대로 따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 한국 교회가 가진 유산을 바로 알고 귀하게 여기며, 그것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