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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헬무트 틸리케

Joyfule 2010. 12. 2. 20:56

 


1944-45년 패망을 눈앞에 둔 독일의 폐허가 된 교회 안에서 헬무트 틸리케가 나치의 눈을 피해 가며 전한 ‘주기도문 설교’를 했다. 그의 주기도문은 절망과 시련으로 뒤범벅된 인생길에서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며,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를 뚫어 주는 구원의 통로가 될 것이다.

머리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2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2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나는 기도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수의 교회가 달콤한 삶이나 꿈꾸는 곳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교회가 저 잃어버린 자들에게 깊숙이 몸을 굽혀 그들을 보호해 주는 어머니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교회가 권력을 쥔 자들의 영광을 흘낏흘낏 훔쳐보며 그 영광을 좇아가는 추종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교회가 증오와 복수가 판치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진정 사랑받는 위로의 기념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런 세상을 구원하고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교회는 심판을 설교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 국민에게 커다란 재앙이 임할 것을 전하면서 무서운 시대의 징조를 밝히 알려 주어야만 합니다. - p.263 중에서 - 알라딘
우리가 연약하거나 지치거나 미련하고 둔감한 채로 기도할 때, 예수께서는 그분의 손으로 우리의 연악하고 지쳐 버린 기도의 말을 세워 주십니다. 예수의 이 손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입 속에서 연약하고 지쳐 버린 우리 기도는 올바른 기도가 됩니다. 의심이라는 강력한 세력이 에워싸거나 영혼을 엄습하는 커다란 고독이 우리 입술에 올릴 말을 소멸시켜 버립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철저히 벙어리가 되어 버리지만, 그때에도 예수께서는 신실한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변호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죽어 가는 자의 탄식마저 이해하십니다. 그분은 그 탄식에 아름다운 장신구와 예복을 입혀 주시는 분입니다. 그럼으로써 그 탄신을 지극히 귀한 기도의 반열에 올려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져다주셨던 바로 그 분이 우리와 더불어 기도하고 계십니다. - p.58~59 중에서 - 알라딘
 
전후 독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신학자요 설교가인 헬무트 틸리케는 패전 후 하나님 아버지를 잃어버린 독일 국민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다시 찾고, 또 그분에게 무엇을 구해야 할지 주기도문을 통해 알려 주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은 아버지 마음에 있는 그 깊은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매우 힘들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틸리케의 주기도문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의 길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 임영수 모새골 대표
 
 
 
 
 
20세기 최상의 신학자요 설교자 가운데 한 사람인 틸리케는 히틀러 나치정권을 비판함으로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설교까지도 금지당했던 행동 신학자이다. 그의 주기도문 설교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기도문이 단지 기도의 지침일 뿐 아니라 신자가 걸어야 할 십자가 길의 지침임을 천명하고 있다. - 김영한 숭실대 교수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피상성이다. 설교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 설교의 신학적 피상성과 척박성을 단박에 깨뜨린 설교자가 있다면 이는 독일의 탁월한 윤리학자이자 걸출한 설교가인 헬무트 틸리케일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주기도문에서조차 현대인의 다양한 삶의 문제를 짚어내고 성경의 수백 미터 깊은 암반에서 계시의 생수를 길어 올리는 틸리케의 설교는 피상성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 모든 설교자에게 나침반이 될 것이다. - 김지찬 총신대 교수
 
주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일용할 의욕을, 일용할 능력을 주옵소서!


전쟁 같은 세상이다. 당장 폭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보다 더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한다. 미얀마의 사이클론 피해, 중국 쓰촨성 사태, 일본에서 발생한 강진, 미국의 한 마을을 모조리 휩쓸어 버린 토네이도. 자연 재해만이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 값에 사람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이고 세계 곳곳이 난리에 난리를 거듭하고 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하는 기도가 무색해지고, 의문만이 쌓여 간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모든 일을 허락하시는가.

기도가 멈춰질 때 다시 시작하는 주기도문

1944-45년 패망을 눈앞에 둔 독일, 기도는 사라지고 절규만이 가득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누구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 사태를 허락하시는가.’
그때 독일의 도시 한복판, 폐허가 된 교회 안에서 설교가 시작되었다. 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저명한 설교자인 헬무트 틸리케가 나치의 눈을 피해 가며 전한 ‘주기도문 설교’가 바로 그것이다. 언제 또 공습과 폭격이 시작될지 몰라 불안에 떨며,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잘 곳이 절박한 사람들에게 ‘주기도문’은 과연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자신의 생명을 걸고 설교를 전한 헬무트 틸리케와 방공호를 전전긍긍하며 이 설교를 경청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알알이 박히는 주기도문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에게 평화로운 시절 나른한 예배 끝에 주문呪文처럼 외우던 주기도문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헬무트 틸리케가 한 구절 한 구절 풀어 가는 주기도문 속에는 2000년 전 그 기도를 처음 가르쳐 주시던 예수의 뜨거운 심장이 녹아 있으며,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이 그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다. 전쟁으로 훼파된 각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주기도문, 어그러진 무릎을 일으켜 세울 용기가 되는 주기도문. 그래서 다시금 입을 열어 주기도문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에게 절실한 ‘일용할 양식과 일용할 의욕과 일용할 능력’을 가득 채우시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제 반세기가 훌쩍 지나 버린 오늘날, 전쟁과도 같은 세상 속에서 좌절하며 기도하기를 멈춰 버린 우리 모두에게도 헬무트 틸리케의 주기도문 설교는 왜 세상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다시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와 지침을 명확하게 짚어 준다. 이 책을 통해 만나는 주기도문은 실로 절망과 시련으로 뒤범벅된 인생길에서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며,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를 시원하게 뚫어 주는 구원의 통로가 될 것이다.

저자 : 헬무트 틸리케
  • 최근작 :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세상이 어떻게 시작되는가>,<어떻게 다시 믿을것인가> … 총 10종 (모두보기)
  • 소개 : 신학자이자 철학가. 1908년 12월 4일 독일 부퍼탈-바르멘 출생. 1932년 에를랑겐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1934년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5년 에를랑겐 대학교 교수로 초빙되지만 나치의 방해공작으로 교수직에 오르지 못했다가 이후 193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가 된다. 1944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슈투트가르트는 폐허가 되었으나, 틸리케는 1945년까지 그곳에서 설교와 가르침을 계속하였다. 그때 행했던 주기도문 설교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이들에게 읽히며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2차 세계대전 뒤 1947년에 튀빙겐 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1951년에는 총장으로 취임하였고, 1954년에는 함부르크 대학교 신학부 설립을 주도하고 교수와 총장을 역임하였고 아울러 함부르크의 성 미카엘리스 교회에서 설교 목사로 섬겼다. 1956년부터 세계 각국의 초청으로 여러 대학과 공동체에서 수많은 강연을 하였다. 《신학적 윤리학》, 《하나님의 그림책》, 《하나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작을 남겼다. 1986년 3월 5일, 함부르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저자의 한 마디
1944년부터 45년은 독일 국민에게 절망의 시기였습니다. 패전과 연합국의 점령은 독일 국민에게서 일체의 소망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빵 한 쪽을 구할 수 없고, 물 한 모금을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틸리케는 ‘사람의 관점’으로 이런 동포를 위로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기 동포가 저지른 죄악을 고발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그들에게 주시는 참된 위로와 소망을 전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 시대를 가리켜 미래도 안 보이고 소망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알 수 없는 내일에 인생을 바치는 대신 차라리 오늘을 즐기라는 게 이 시대의 모토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이런 현실 역시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시는 진리를 망각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시대에 이웃은 사라지고 나만이 남았습니다. 오로지 나만 잘살고 보자는 이기심이 주기도문도 하나의 주문呪文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실 자녀 교육, 주택 문제, 분배의 불평등, 부의 양극화, 계급화가 엄존하는 현실의 뒷면을 들춰 보면, ‘나’와 ‘너’의 구별만 있을 뿐 ‘우리’는 사라져 버린 서글픈 우리 인생들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까? 셀 수도 없이 많은 설교가 강단에서 울려 퍼지고 있지만, 십자가의 길을 외치는 이가 얼마나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간곡하게 일깨우는 설교가 얼마나 됩니까? 과연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틸리케가 설파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지극히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가난한 자, 굶주리는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소망을 잃어버린 자들을 섬기고 있을까요? 이 시대는 가벼움이 넘쳐 납니다. 설교도 그러하고 신앙도 그러합니다. 때문에 깊은 성찰이 필요한 글이나 설교에는 등을 돌리는 게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늘 신앙의 실질Sache을 깊이 생각하게 마련”이라는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발터 퀴네트의 말처럼,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헬무트 틸리케의 이 엄중한 설교를 꼭 읽고 그 가르침을 깊이 숙고해 봐야 할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는 전쟁도, 굶주림도, 포탄에 죽어 나가는 인생도 없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느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며 모든 이가 한 형제임을,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만이 교회와 성도가 갈 길임을 까맣게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은 헬무트 틸리케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래전 저 독일에서 울려 퍼졌던 이 선지자의 음성이 오늘 한국에서 새로운 감격과 깨우침과 회개로 메아리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옮긴이의 글') - 박규태(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