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숨은꽃 1.- 양귀자
그는 귀신사에 있었다. 나는 그를 귀신사(歸神寺)에서 만났다.
십오 년 만이었다. 물론 나는 그 십오 년의 세월을 첫눈에 걷어 내지는 못하였다.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이 돌연한 만남이 십오 년의 시간을 경과한 후에 비로소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랬다면, 만약 그와 나 두 사람 중의 어느 누구도 세월의 두께를 젖히고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서로 스쳐 지나갔을 것이었다. 하늘 향해 키를 겨누고 서서 연초록 잎을 피워 올리고 있는 껑충한 미루나무나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시들어 가는 진달래 잎사귀나 한 번 더 만져 보고, 나는 그만 돌아섰을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은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한 거인의 목소리를 채집하는 행운을 영원히 놓쳐 버릴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행여 하고 갔다가 역시 하고 돌아오는 허망함을 어떻게 가누었을지 생각만 해도 막막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가 거기에 가야만 했던 까닭을 미리 알고 먼저 그곳에 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해 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말해 버렸다. 귀신사에서 나는, 그렇게 말해 버리는 법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날 오전, 서울역의 혼잡한 광장에 홀로 남겨졌을 때부터 나는 이 여행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회가 시작된 시간은 그보다 한참 먼저였다. 기차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다소 부지런을 떨었던 아침, 내가 없어도 아무 이상 없이 잘 돌아가게끔 챙겨 뒤야 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앞에 두고 느꼈던 전날 밤의 한숨, 그보다 더 앞으로 시간을 돌리면 기차표를 에매하러 나갔던 날의 몽롱함과 회의까지를 다 후회의 페이지에 삽입시켜야 정확할 터였다.하지만 후회 잘하는 사람일수록 늘 그렇듯이 포기도 쉽게 하지를 못하고 결국 나는 예매한 기차표의 시각에 정확히 맞추어 서울역 광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사이 이 여행을 포기해도 미련 없을 만한 어떤 좋은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표는 잊지 않고 가져 왔지?」
나를 광장에까지 실어다 주고 돌아가면서 남편이 남긴 말은 이게 다였다. 잘 다녀오라거나 그저 머리나 식히고 오는 셈치라는 말쯤은 해줄 만도 한데 그는 그저 내 지독한 건망증만이 염려스럽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태연히 차를 돌렸다. 남편의 태연한 그 얼굴이, 광장에 밀집해 있는 자동차 사이를 빠져 나가 눈부신 봄 햇살 속의 거리로 섞여 가는 그 태연한 뒷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나는 억울하였다. 다른 이들은 모두 신나는 휴가를 떠나는데 오직 나에게만 처치 곤란한 일거리가 잔뜩 주어져 내몰린 기분이었다. 이건 정말 부당하다. 억울하다. 그 한순간의 억울함은 이 여행의 후회를 넘어서서 내 생애 전부를 후회하기에도 충분한 양이었다. 내 생애 전부를 실어 내기 위해 늘 내 이름자 밑에 괄호로 닫혀져 묶여 있는 ‘소설가’라는 호칭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슴에 얹혀진 바위 하나를 들어내는 방법이 꼭 이래야 한다는 것은 원래 내 방식이 아니었다. 잘 감긴 타래에서 술술 실이 풀리듯 그렇게 글이 풀려 나오지 않는다 해서 훌쩍 어디로 떠나곤 하는 버릇에는 애시당초 길들여 있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 혹은 좋은 글을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는 동업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허공에 들린 발을 염려하곤 했었다. 여행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삶의 필요에 의한 것이며, 단지 소설만을 위해서 일상을 저버리고 떠나는 일은 마치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처럼 부정하기 어려운 허장성세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나중에 하나의 여행이 온전하게 소설로 담겨져 나오는 수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 또한 삶의 필요가 먼저였고, 소설은 의외의 부산물인 경우에 불과했다. 성실하게 삶을 더듬다 보면 운 좋게 주어지는 그럼 부산물. 그러나 이번 여행은 삶의 여러 관계들로 야기된 피할 수 없는 길 떠남이 아니었다.
망설임과 후회가 그처럼 질겼던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거기에서 연유되고 있었을 것이다. 소설이 제대로 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여행을 도모하고 실천하다니. 게다가 단 한 시간이라도 죽을 듯이 아껴서 써대도 겨우 마감 날짜를 지킬까 말까 한 이 화급한 날들 중의 하루나 이틀을 온전하게 내던져 버리다니.
이 도박은 말하자면 벌써 몇 달째 그랬듯이 이번 달 역시 마감 날짜를 그냥 지나치고 말리라는 뚜렷한 징표로서 제시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소설은, 확률이 높건 낮건 간에, 결코 도박일 수 없는 것이므로.
여행에 대한 미심쩍음이 이리도 깊었던 탓에 창가 좌석에 앉아 스치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심정도 썩 밝지는 않았다. 소설을 위한 여행이 아니었다면 동네에서도 보고 또 본 저 흐드러진 진달래며 개나리, 그리고 연둣빛 새순들한테 얼마나 많은 감홍을 쏟아 넣었을까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기차가 서울역을 벗어나 달린 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의자를 마주 돌려놓고 먹을 준비를 하는 건너편 여자들의 거칠 것 없는 웃음소리도 내게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거의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여자들은 아마도 한 동네 단짝들인 모양이었다. 모처럼 집을 빠져 나왔을 여자들은 이른 점심인지 늦은 아침인지 모를 식사를 하면서 거침없이 웃고 떠들었다. 나는 그들의 거침없는 웃음을 훔쳐보며 더욱 창가 쪽으로 바싹 당겨 앉았다. 기차 안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처럼 모호한 표정의 승객은 없었다. 모호하기는커녕 일상을 벗어난 사람들의 표정은 그 여행의 목적과는 관계없이 지극히 선명한 굴곡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거침없고 선명한 승객들한테 자꾸 주눅이 들고 있었다.
미로에 빠졌으면 처음 길을 잃었던 자리에서부터 차근차근 출구를 찾아보는 것이 옳았을 터였다. 시작과 끝을, 삶의 처음과 마지막을 그토록이나 성실하게 더듬어 가는 것으로 미로를 벗어나긴 틀린 것이었을까. 운 좋게 부산물을 획득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이른 절망이 아니었을까. 좌표가 사라졌다고는 해도 좌표가 있던 자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도 맥이 풀려 버렸을까. 그 맥풀림에 대처하는 것조차 나는 왜 그리 조급했던 것일까.
한 시인의 말처럼 어차피 고통은 이 세상을 사는 인간들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일진대, 견디어 누르고 있으면 제 압력으로 솟아나오는 뿌리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이제는 그런 것들까지 폐기 처분되는 시대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은 그 믿음이 두려웠던 것일까, 나는. 생전 안하던 짓을 하고 있는 자의 가슴속으로는 온갖 의문이 스며들고, 그 의혹의 무게까지 덧붙여진 가슴의 바위는 참으로 처치곤란이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이럴 때는 무엇이든 읽을 것이 있어 글자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시간을 죽이기가 훨씬 수월 할 텐데도 내겐 인쇄된 그 무엇도 가진 것이 없었다. 나는 일부러 책 따위는 들고 가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차가 수원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읽을 것을 학대한 스스로를 질책했다. 책 대신으로 은근히 기댄 것은 가없는 풍경을 담아내는 기차의 넓은 창이었다. 나는 표를 예매하면서 근래에 드문 명료한 목소리로 창가 좌석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직통으로 얼굴을 쪼아대는 4월의 햇볕과 만난 것은 기차가 서울을 벗어나고 이내였다. 그것은 벌써 몸에 닿으면 감미롭고 마냥 훈훈하던 첫봄의 순수한 햇살이 아니었다. 견딜 만큼 견딘다 해도 결국 오 분이 채 되지 않아 때묻은 커튼으로 손이 갈 만큼 성가신 존재였다. 창의 배반은 당장에 읽을 것에 대한 갈증을 불러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처럼 모든 일에 있어 제3의 대안 같은 것은 준비해 본 적이 없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사실을 말하면 개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약국 앞에 붙은 간이 서점을 기웃거리긴 했었다. 읽을 것이 아닌 그저 볼 것, 머리에는 입력되지 않고 단순히 눈에만 머물렀다가 그대로 날아가 버릴 그런 것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나는 읽을 만한 책을 고르지 못하였다.
집에서도 그랬다. 어쩌면 손쉽게 아무 책이나 택해서 손가방 안에 쑥 밀어 넣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짜증으로 이번 여행엔 아예 어떤 책도 동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무얼 구할 수 있었다면 왜 여행까지 생각했을 것인가. 그래도 나는 역 귀퉁이의 간이 서점 앞을 그냥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제목의 숲에서 길을 잃었다. 한참 뒤에 나는 집에서의 다짐을 떠올렸다.
책을 동반하지 말 것. 그 다음에 떠오른 것은 늙은 내 어머니의 푸념 같은 말씀 하나였다.
「쟈는 염생이 띠에다 염생이 달, 염생이 시(時)에 태어났응께 어차피 한평생 종이만 우물거리다 말 거여」
기차 안에서의 세 시간 동안 내가 만난 글자는 홍익회 판매원의 밀차에 담긴 군것질감의 상표와 앞자리 등받이에 새겨진 피로 회복제 광고가 전부였다. 피곤하고 나른할 때 이 물약을 마시면 새 기운이 솟구친다는 광고 문구는 어느 좌석이건 간에 다 흰 천의 등받이에 녹색 잉크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기차 안 이곳저곳에 내가 찾는 글자가 널려 있기는 한 셈이었다. 그것들의 한결같은 내용에 진저리를 치 면서도 내 눈은 글자를 읽고 뜻을 해독하는 짓을 멈추지 못한다.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으며, 나는 마녀의 주술 때문에 춤을 멈출 수 없어 쩔쩔매는 동화 속의 불행한 공주를 떠올린다. 누구, 이 춤을 멈춰 줄 사람은 없나요? 나는 밥을 먹으면서도 춤을 춰야 하고 자면서도 계속해서 춤을 춰야 한답니다. 제발, 이 춤을 멈춰 주세요.결국 나는 눈을 감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피로 회복제 광고를 외우다가 지쳐 떨어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피로 회복제였다.
나는 거의 한 달 이상 줄곧 피로했다. 물론 피로 회복제 같은 것을 먹어 본 적은 없었다. 도대체가 회복시킬 피로가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종일 팔다리 휘둘러 일을 하지도 않았고, 자판을 두들겨 가며 원고의 양을 착실하게 늘려 간 것도 결코 아니었다. 너무 멀어지기 전에 단편을 하나 써보겠다고 마음을 다잡기 시작한 한 달 전부터는 두 손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두 손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날이 하루 이틀 계속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지독하게 피로했다. 이런 식으로 시작부터 미로인 글쓰기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단편소설에 손대 본 지가 벌써 햇수로 3년, 전교조 원년의 그 치열한 투쟁의 한 자락을 그린 단편 〈슬픔도 힘이 된다〉를 한 계간지에 발표한 것이 마지막이었던 셈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처럼 까맣게 소설 작법을 잃어버릴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에도 나는 쓰고 또 썼었다. 단편이 아니더라도 써야 할 것은 많았다.
규칙적으로 원고를 넘겨야 하는 장편 연재도 쉬임 없이 해왔었다. 문제는 〈슬픔도 힘이 된다〉는 진술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세상의 변화에 있었다.
세상이 갑자기 텅 비어 버린 듯했다. 써야 할 것이 우글대던 머릿속도 세상을 따라 멍한 혼돈에 빠져 버렸다. 하필이면 이때, 나는 연신 미루고만 있던 단편을 써보겠다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두어 군데에 약속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소련과 동구권의 대변혁이 몰고 온 파장은 그나마 모색되어 오던 이 사회의 새로운 물결, 상식적인 삶의 예감까지 붕괴시키는 데 단단한 몫을 하려는 듯이 보여 졌다. 그쪽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007가방을 들고,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우리의 도시 속으로 합류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일은 착잡했다. 사회주의는 아직 한 번도 실현되어 본 적이 없다는 사라진 지도자의 말도 그 의미심장함과는 상관없이 역설적이고 허탈한 진술로만 들려왔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었다는 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도덕은 당분간 어느 곳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는 맹목적인 질주(疾走)만 남았는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늘 그렇다면, 에서 멈추었다. 누가 뭐라 말하든, 나로서는, 단편이란 양식의 소설이란 작가의 고백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해 왔었다. 어떤 내용을 담았건 그것은 작가의 고백이거나 기도 같은 것이었다. 멈춘 기도를 잊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그 일을 시작하는 일은 너무 버거웠다. 그때부터 나의 피로는 누적되기 시작했다. 나는 번번이 두 손을 늘어뜨리고 기계 앞에서 물러났다. 어쩌다 느닷없는 자신감에 힘입어 다시 기계 앞에 앉아도 첫 문장을 맺기도 전에 이게 아닌데, 라는 마음속의 말이 내 손을 멈춰 버리곤 했다. 이게 아닌데, 이것은 아니다, 라는 것 하나만 분명하고 그 외는 다 오리무중인 나날이 한 달간 계속되었다.
내가 생전 하지 않던 짓을 해보겠다고 여행을 나선 것도 모두 이게 아닌데, 라는 내 속의 외침을 잠재우기 위한 버둥거림의 결과였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디 먼 곳에라도 가서 그 지긋지긋한 내 속의 외침을 땅속 깊이 파묻어 버리고 혼자만 도망쳐 올 수는 없을까 해서 꾸민 음모였다.
그 일이 가능한 것일까. 실제로는 나는 지금 땅속에 파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듯싶었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정작 땅속에 파묻어 버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건져 와서 완전한 혼돈에 빠져 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버리겠다면서도 다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고, 이게 아닌데,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이 질긴 모순을 나는 차마 바로 볼 수가 없다. 내 속에 들어 있는 것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어떤 문장에도 안심하고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는 것이다.
거의 이리(裡里)에 다 왔을 때까지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면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눈꺼풀을 사이에 두고 나는 여전히 세상 속에 있었다. 한숨 푹 잠속으로 떨어졌다가 일어나면 한결 머리가 맑아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한번 빗나가기 시작하면 아무리 쉬운 일도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두 시간이 넘도록 맨 정신으로 기차의 진동을 느끼고 있는 나를, 그래서 나는 이해하기로 하였다.
기차가 이리에 멈추었을 때 나는 가벼운 두통을 느끼면 눈을 떴다. 내릴 사람들이 통로에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손에는 가방을 들었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헝클어진 머리며 꾸깃꾸깃한 옷을 매만지고 있었다. 내릴 사람이 다 내린 다음 이번에 새로운 승객들이 등장했다. 조금씩 허물어져서 지친 표정으로 기차를 내린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새 승객들의 머리는 단정했고 구김살 하나 없는 봄나들이 옷은 화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묵지근한 기차 안 공기는 새 사람들로 인해 금세 싱싱해졌다.
나는 여태도 창을 가리고 있는 때묻은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을 보기 전에는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기차는 이미 출발을 하고 있었다. 마치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역사가 슬금슬금 뒷걸음 치고 있는 것이었다. 역 구내의 모든 풍경들은 뒷걸음으로 사라지고 나는 얼굴을 창에 박으면서까지 물러나는 것들을 쳐다보았다. 달려오는데도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푸른 작업복의 안전 요원, 기척도 없이 멀어지는 만개한 목련들. 한껏 벌어진 목련꽃은
가벼운 한숨 한 자락에도 호르륵 이파리를 떨 굴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보였다. 목련에 비하면 쇠락의 조짐이 엿보이는 샛노란 꽃다발 사이로 뾰족한 잎사귀들을 다 내밀고 있는 역 울타리의 개나리 덤불이 한결 당당했다.
역 구내를 거의 빠져 나오면서는 개나리 덤불 사이로 히끗히끗 개구멍들이 보였다. 그 구멍으로 개만 드나들었던가. 아마 나도 먼 옛날의 어느 하루쯤 저 구멍으로 들어왔거나 나갔거나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철로변의 풍경들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햇볕은 아직 짱짱했지만 얼굴로 쏟아지던 것에서는 다소 비껴갔다. 설령 얼굴로 쏟아진다 해도 여기서부터는 때묻은 커튼과 타협을 할 수가 없었다. 이 길을 통해 나는 세상에 나왔었다. 한때의 기억들은 모두 이 길의 언저리에서 만들어졌다.
추억은 그것의 생성 장소에서 회상해야 가장 선명한 법이다. 똑같은 장소를 두고 단지 시간만 달리해서 한 인간의 몸과 정신이 투영되는 일은 언제라도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때 나는 거기에 있었고 지금 다시 나는 여기에 있다. 그 사이로 수천수만 번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갔다. 덧없는 물거품에 옷은 또 얼마나 많이 적셨던가.
그때 내 발부리에 부어졌던 그 파도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를 내다보는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돌아갈 길이 없는 시간, 나는 창 유리에 이마를 부비며 문득 돌아갈 길도 모른 채 가고 있는 스스로의 존재가 한순간 포말이 되어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나는 흡입당해지고 잇다. 나는 우주 속으로 버려 진다…….
흡입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결국 도시를 떠나 버린 한 시인이 있었다. 문단에 시인이라는 이름을 얹을 때부터 나는 그를 알게 되었다. 내 딸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녹음기가 내장된 커다란 앵무새 인형을 사다 준 이도 바로 그 시인이었다. 어떤 말이든 입을 달싹이며 그대로 따라하는 초록 앵무새는 딸뿐만이 아니라 가끔 나도 가지고 놀았다. 시인도 우리 집에 놀러오면 초록 앵무새와 놀았다. 앵무새는 두 마디 이상은 따라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난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하면 난 너를, 까지만 따라 하고 나머지 말은 기계 속으로 흡입되어지고 말았다.
우리 놀음은 앵무새가 「사랑해」까지도 발음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관심이 모아져 있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여간 빠르지 않고선 번번이
「사랑해」는 금속의 기계 어딘가로 흡수되어 분해되고 말았다. 설령 아,이,우,에,오를 되풀이 연습해서 입술운동을 실컷 한 다음에 「난 너를 사랑해」를 최대한도로 빨리 발음하는 데 성공했다 해도 허사이긴 마찬가지였다. 명확한 발음이 아니면 문장 정체가 다 녹음되었어도 재생된 소리는 제멋대로 깨어진 채였다. 날랄해, 날리레, 이런 식으로 되돌아오는 「난 너를 사랑해」는 흡사 얼레리 꼴레리 하며 조롱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소리가 깨어져서 괴상한 모음과 자음의 조합이 이루어지면 어린 딸은 아주 즐거워했지만 시인은 몹시 낭패한 기색이었다. 언젠가는 초록 앵무새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와야 겠다고 들고 나선 적도 있었다. 다른 앵무새도 모두 이런 식이라면 앵무새를 만든 공장을 찾아가 항의하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사랑해」를 말할 줄 모르는 앵무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시인의 분노는 딸의 반대로 행동에까지 옮겨지지는 못했다. 잠을 잘 때도 초록 앵무새를 껴안고 자는 딸애는 한사코 그것과 헤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에게는 아직 얼레리 꼴레리로 능멸당해 본 슬픈 기억이 없었던 탓이었다. 깨진 언어에 대한 시인의 절망을 아이가 어떻게 이해하리.
「사랑해」를 말할 줄 모르는 새는 새가 아니다. ‘사랑’한테 얼레리 꼴레리 혀를 내미는 앵무새는 앵무새가 아니다. 나는 그가 천상 시인임을 그 작은 일에서 확인했다.
나는 시인이 아니어서 앵무새를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만든 이한테 항의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앵무새의 배에 달린 작크를 열면 어린아이의 손에도 쥐어질 만한 작은 녹음기가 있었다. 작크를 열고 기계에 건전지를 갈아 넣기도 한 나는 기계의 용량에 대해 주로 생각하였다. 작은 기계와 작은 음절밖에 녹음할 수 없는 성능. 「나는 너를 사랑해」가 안되면 그냥 「사랑해」로 가는 것이다. 「나를 너를」이 없이는 「사랑해」를 온전히 말할 수 없는 시인의 상처를 소설가는 이렇게 산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인이 지난해 서울을 떠났다. 글자를 짜 맞추고 짜 맞춘 글자들은 행으로 모아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만들던 일을 하다 말고 어느 날 문득 시인은 직장을 버렸다.
그사이 서로 간에 격조해 있었던 탓에 나는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전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덧없는 삶과 창백한 시에 눌려 도시를 떠나고 싶었으려니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시인이 경기도 어디에서 새를 기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뜸부기, 이것이 시인이 기르고 있는 새의 이름 이었다. 여름철에 냇가나 연못, 풀밭 등에 살고 날개 길이는 10센티미터, 부리와 다리가 길며, 잘 날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뜸북뜸북 하고 우는 새. 뜸부기. 앵무새는 아니고 뜸부기였지만, 나는 맞다고 생각했다. 뜸부기 때문이라면 서울을 떠날 만도 했다. 서울에서는 뜸부기를 울게 할 수 없으니까.
시인이 할 수 있는 일로 그보다 더 맞는 일은 없다고 무릎을 치며 탄복했었다. 그 탄복은, 시인의 뜸부기가 애완용으로 팔려 나가 이 집 저 집의 조롱에서 아침저녁으로 뜸북뜸북 노래를 한다는 혼자만의 상상이 어긋나고 말았을 때 참혹하게 거두어졌다. 나는 얼마나 순한가.
시인이 알에서 부화시키고 조석으로 모이를 주어 기른 뜸부기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을 때 식용으로 팔려 간다. 시인의 뜸부기는 최고급 요리로 둔갑하여 호텔 식당의 우아한 바로크식 식탁에 진열된다. 성장을 한 여자와 남자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시인의 뜸부기를 먹어 치울 때 시인은 홀로, 아무도 없이 그저 자기 홀로, 뜸북뜸북 뜸부기의 노래를 듣는다.
시인의 뜸부기는, 아니 뜸부기 시인은 아침저녁으로 뜸북뜸북 노래를 한다. 나는 너를 사랑해…….
새의 노래, 새를 먹어 치우는 사람들, 돈이 되는 뜸부기, 새를 팔아 사는 시인. 시인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잡한 소제목들이 나열된다. 그리고 나는 전율한다. 그러나 이 전율은 시인을 향한 절망에서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이 거대한 모순의 슬프고도 기묘한 조화가 주는 경이 때문에 전율하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나는 늘 소스라치며 마음으로 시인에게 묻는다. 뚜벅뚜벅? 어떻게? 무슨 나침반으로? 분해되거나 실종되지는 않았어?
기차는 나침반이 없이도 제 길을 달려 나를 목적지까지 실어다 놓았다. 다음 정착역이 김제임을 예고해 주는 열차 방송을 듣다가 나는 문득 바로 얼마 전에야 그 초록 앵무새를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손에서 진작에 떠나 버린 앵무새 인형을 나는 몇 년씩이나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다.
새의 부리와 배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세탁이 불가능했던 그것은 보기에도 흉칙스러울 만큼 실컷 더러웠는데도 그랬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지 않아서 단 한음절도 따라하지 못하는 누추한 앵무새는 올 겨울을 지낸 뒤에야 대청소라는 이름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단 한 번도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 보지 못한 채.
「나는 너를」이거나「사랑해」로 나누어서 말할 수밖에 없었던 기계를 뱃속에 간직한 채 앵무새는 떠났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 뜸부기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먹히고, 아침저녁으로 노래하는 뜸부기를.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살펴보고 내려 달라는 안내 방송이 무색하게도 내게는 하차의 준비랄 것이 전혀 없었다. 손가방만 하나 달랑 들고 동행도 없이 터덜터덜 플랫폼을 걸어가다 말고 나는 갑자기 주머니와 가방을 뒤져 차표를 찾기 시작했다. 내리기 전에 차표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은 곧바로 내 좌석 어디에 차표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은 곧바로 내 좌석 어디에 차표를 흘리고 왔음이 틀림없다는 결론으로 치달았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나에 정신이 팔리면 다른 하나는 까마득하게 잊고 마는 정신의 불균형에 대해 얼마나 많이 절망했던가.
기차는 이미 떠났고, 두고 온 기차표를 어디에서 찾으랴 하는 마음 때문에 가방과 주머니를 뒤지는 손길에는 믿음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결국 무임승차의 혐의를 받게 될 것이고 혐의를 벗어나가기 위해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뜸부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역무원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가 뜸부기를 알고 있기나 할까. 그러나 나는 내 손에 끌려 나온 기차표를 발견했다. 그것은 손가방 속 깊숙이에 접혀진 채로 보관되어 있었다. 열차의 좌석 어딘가에 기차표를 흘리고 내렸다는 내 결론은 틀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랫동안 빗나간 결론을, 어긋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은 기차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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