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스승과 아비

Joyfule 2017. 9. 2. 17:50
     
     
        스승과 아비
        김요한 선교사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절) 
    아이들의 믿음을 주일학교에 맡겨선 안 되고 
    아이들의 교육 또한 학교에 떠 넘겨서는 안 된다. 
    그렇듯이 부모가 아이들을 낳고 믿음과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 
    그야말로 부생모육이다. 
    공부하는 방법과 지식과 삶의 요령은 제 또래에게서 배우지만 근본은 부모다. 
    근데 부모는 자녀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인물이 되길 원한다. 
    그야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이것이 바울의 사도정신이다. 
    그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가르치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의 마음으로 해산의 수고를 한다. 그래서 그는 본이 되려고 한다. 
    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은 첫째도 본, 둘째도 본, 셋째도 본이다. 
    모델과 예표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남을 가르치려는 선생은 많으나 아비의 마음을 가진 자는 적다. 
    아직 미숙한 지도자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오래 전에 한 친구가 내 꿈을 꾸었는데 푸른 색 옷을 입고 환자에게 수술을 하더라고 했다. 
    덜컹하는 마음으로 내가 아직 전문의가 아니라 
    수련의 정도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적이 있다. 
    신앙의 성장과정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과시하고 싶을 때도 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미국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아이들 숟가락 가르치는 법이 다른 것은
    미국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퍼먹도록 놔두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엄격하게 가르친다. 
    그렇듯이 교회에서 어린신자들을 양육할 때에 거의 획일적인 교제를 사용한다. 
    주입식이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많이 하면 사람이 
    주의 영과 생명에 의해 풋풋해지고 착해져야 하는데 똑똑해진다. 
    남을 가르치는 선생노릇하려 한다. 
    초신자들을 붙여주면 한 동안은 잘 가르치다가 얼마가지 못해 그만 그 관계가 깨진다. 
    가르치려고만 하다가 일어나는 작은 사고들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 보이고, 먹여 키운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고 산다. 끊임없이 용납하고 속아준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집을 세운다는 말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머리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찢으며 키운다. 
    이 시대에 진리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자신에게 적용하므로 
    해산의 수고를 하고, 
    그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얻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는 아비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어미의 사선을 넘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 탄생하듯 
    한 영혼도 그와 같은 수고를 통해 거듭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아비 된 마음으로 가슴을 치며 이 시대의 영혼들을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