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병기로 사용하라
김요한 선교사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3-14)
인간은 잊어 먹는 일에 선수다.
군대에서 연습을 가장 많이 하는 게 차려, 열중쉬어이다.
아마 군 생활동안 수 만 번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제일 안 된다. 항상 지적받는다.
다리 붙여, 배 집어넣어, 가슴을 펴, 시선을 똑바로 전방을 주시 해, 턱을 들지 마 등등...
그러나 이것이 군인의 기본 동작으로서 모든 움직임의 기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참 잘 나가다보면 의욕은 앞서는데 몸이 무겁게 느껴질 수가 있다.
분명 신앙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정상임을 알긴 아는데
자신도 모르게 그만 피동적으로 오그라든다.
그럴 때는 얼른 다시 기본자세를 되돌아봐야 한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열심이 아니고 소속과 위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그 안에서 의를 얻어 하나님을 향해 서 있는 자세, 이것이 바로 신앙의 차려 자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묵상할 때에 성령의 감동이 오고 진리가 체감이 되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보이고, 그리로 달려가고픈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여기에 하나님의 각양 좋은 은사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위치를 정해 주고 성령은 그 위치를 확정해 주신다.
거기서 하나님의 의 곧 됐어 하심이 있고, 성령의 지원사역이 작동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또 경건의 연습이다.
우리의 정욕은 지긋지긋해서 영적인 일조차 사욕을 좇으려는 심보를 가지고 있다.
정신적인 의지로 살 때는 가짜이긴 하지만 고품위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영으로 살기로 작정한 이후에는 쉽게 성령이 소멸되는 위험이 항상 따른다.
하나님이 상급생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므로
어린아이처럼 남에게 탓을 하고 땟지 땟지 할 수도 없다.
얼른 십자가의 도로 영적 혼란과 침체를 수습을 하고,
마음을 다 잡아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붙잡는 일에 올인을 해야 한다.
그 때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구름기둥이 다시 앞선 것처럼
성령의 감동은 나의 영혼을 붙잡으시고, 평강과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하신다.
의가 오고 평강이 따르면 기쁨의 깃발이 나부낀다.
우리 사령관이신 그리스도가 본부에 계신다는 표식이다.
그리고 난 다음엔 그 소속된 자리에서 자신의 몸을 사욕을 위해 사용할 건가,
성령의 소욕을 사용할 건가 매시간 선택해야 한다.
죄냐 의냐, 사망이냐 생명이냐, 어둠이냐 빛이냐 촉각을 세워 자신의 몸을 사용해야 한다.
이 시간이 많이 쌓아 질수록 하나님의 신용도는 높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