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은 구분된다 ─
Ⅲ. 성령의 역사와 관계된 개념들의 올바른 이해
1. 구원·중생과 성령의 역사
신약성경의 일관된 주장은, 구원은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라는 진리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말씀하신 대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되는 것이다(롬10:10).
또 이것을 다른 말로 설명하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그가 곧 구원받은 자이다. 즉 구원은 예수 이름을 단지 환영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며, 성령을 받는 것과는 구별되는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상의 강도와 같이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 믿은 사람들도 흠없이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성령을 받거나 은사를 받을 때에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그때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단지 확신을 갖게 되었을 뿐인 것이다. 구원은 이미 받았으나 실감하지 못했던 것을 후일에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성령이 내주하시기 전에도 가능하며, 우리는 다윗의 경우나(마22:43-45) 베드로의 경우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마16:13-17).
만일 예수를 시인할 단계에 이미 성령께서 몸 속에 들어와 계시는 것이라 주장한다면, 그것은 예수를 시인할 단계에 또는 그 이전에 이미 죄사함 받고 거룩해져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예수를 시인하는 것은 형식적인 과정에 불과하며, 그 외에 다른 어떤 과정에 의해 구원이 제공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결국 예수의 구원자 되심을 부인하거나 그의 공로가 불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난을 모면하기 어렵다.
그것은 중생(거듭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십자가상의 강도나 제자들도 앞에 설명한 것처럼 오순절 성령강림 전에 이미 구원받고 거듭난 상태였다. 그렇다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다(요3:5)는 것은 성령의 내주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해답은, ‘그리스도의 영’과 ‘성령의 감화감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대답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일단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구원과 중생은 적어도 성령의 내주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이 이루어지는 사건이며 실제로 오순절 성령강림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2.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감화감동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내주하시기 전에도, 구약시대부터 성령의 역사는 계속 존재해 왔다. 그러나 죄사함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성령이 내주하시지 않으므로, 그때의 성령의 역사는 내주와는 구별되는 감화감동의 역사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사람의 몸 바깥에서 옷을 입히듯, 필요에 따라 능력을 입혀 주시는 형태의 역사였다. 그래서 그 필요가 없어진다거나 그 사람이 경건에서 타락하면 성령의 역사는 소멸되고 만다(삼상16:13-14). 다윗이 범죄한 후 성령을 거두지 말 것을 그토록 간절히 기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시51:11).
그러나 예수의 공로로 죄사함을 입은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요14:16).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성령의 감화감동만 있고 신약시대에는 성령의 내주만 있다고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구약시대에는 성령의 감화감동만 존재했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감화감동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논증한 바와 같이 성령이 내주하시기 시작한 오순절 이전에도 성령의 감화감동의 역사는 있었고, 무엇보다도 구원과 중생은 내주와는 별도로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동시설이나 절충설이 갖는 오류들은 바로 이와 같은 내주와 감화감동의 혼동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신약시대에는 감화감동이 없이 내주만 있으리라는 단순한 선입견에서, 모든 성령의 사역을 성령의 내주에 의한 사역으로 가볍게 판단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3.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고 말씀하심으로써 주님의 말씀은 ‘살리는 영’임을 가르쳐 주셨다. 사도행전 8장 14절에서는 예수 믿는 것을 “말씀을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들은 ‘살리는 영인 말씀’을 받은 자들인 것이다.
한편 로마서 8장 15절-16절은 ‘종의 영’과 ‘양자의 영’과 ‘성령’을 각각 구분하여 별개임을 설명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도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그 후반부에서는 하갈과 사라, 이스마엘과 이삭의 비유를 풀어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즉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복음도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율법을 받은 자는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종이요, 복음을 받은 자는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임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말씀은 종의 영이 아니라 아들의 영(양자의 영)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난 상태이다.
이렇게 복음 곧 아들의 영을 받은 우리를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인치시고 보증하심으로, 우리가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고(롬8:16) 또한 땅끝까지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행1:8). 그러므로 로마서 8장 9절의 ‘그리스도의 영’은 ‘아들의 영’ 곧 복음을 말한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요건은 성령을 받았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복음 곧 말씀 곧 아들의 영을 받았는가의 여부라는 사실은 신앙의 상식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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