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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찾는 습관을 들이라.

Joyfule 2015. 1. 14. 01:45

 

하나님의 뜻을 찾는 습관을 들이라.

 

 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성능이 좋은 모터와 바닷길을 안내해주는 정확한 내비게이션을 갖추는 것이 필수이다. 그렇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떤 것을 원할 것인가? 뛰어난 성능의 모터와 평범한 내비게이션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럭저럭한 모터와 정확한 내비게이션을 택할 것인가를 강요받는다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평범한 모터는 탁월한 성능의 모터보다 목적지에 조금 더 늦게 가게 해주겠지만 만약 내비게이션이 정확하지 않아 엉뚱한 곳으로 갔다면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가 모터라면 하나님의 뜻은 내비게이션이다.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면 눈물이 쏙 빠지는 고생이 앞을 가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는 소홀히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삶의 덫에 빠져 전전긍긍하고 있는 처지라면 남은 기회나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고통스런 덫에서 빠져나오려면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달아 삶에 적용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성경의 내용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다르다.

수십 년간 빠짐없이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들어왔던 사람이라면 웬만한 성경의 내용은 달 알고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며 요셉, 야곱을 거쳐 다윗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신약의 예수님의 행적이나 사도들의 신앙에 대해 훤히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틱한 사건을 비롯하여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는 대목들은 실제 본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간곡하게 요청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해박하여야 할 터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보자. 성경을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인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의, 의인, 성령의 열매, 신령한 지혜, 하나님의 뜻, 성경적인 믿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성품, 산상수훈의 축복이 구약의 축복과 다른 이유 등을 말해보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이러한 주제는 성경의 인물과 사건만 가지고는 쉽게 알 수 없는 주제이며 하나님의 뜻이나 깨달음이 부족한 목회자가 가르치는 교회의 교인이라면 철저하게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며 설교를 들어왔던 교인이라도 정작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이다. 그래서 주일 성수나 새벽기도, 십일조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만을 성실하게 이행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천국의 백성이 된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 현실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지 못한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신앙임이 분명하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어린 자녀가 글을 깨우치기가 무섭게 구약성경인 토라를 읽힌다고 한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종교엘리트층이었고 유대교의 지도자였다. 그들이 율법에 대해 해박하였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인 예수님을 환영하기는 고사하고 박해하고 핍박하였다.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거나 무지하다는 책망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들은 모세가 정한 율법의 내용은 잘 알고 있었지만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던 탓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교인들은 유대인들이 보여준 성경의 열정은커녕 관심조차 없다. 성경책은 주일에 들고 다니는 장식품에 불과하고 마지못해 읽는다하여도 형식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의 내용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이유로 인해 치루는 인생의 대가는 실로 엄청나다. 삶의 덫에 갇힌 이들 중에는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던 이들도 적지 않지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이 같은 곤경에 처해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성경의 내용은 잘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지한 탓이다.

기도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기도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주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모르는 크리스천은 없다. 그렇지만 기도에만 열중하는 이들은 위험하다. 기도할 때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죄다 받아들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할 때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적지 않겠지만 자신의 생각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사탄이 넣어주는 것도 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조차 예수님과 대화할 때 사탄이 생각을 넣어주기도 했다.(마 16:23) 그렇지만 적지 않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자신이 기도할 때의 생각이 전부 하나님이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마치 점쟁이나 예언자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대개 주변의 목회자들이나 기도를 열심히 하는 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응답을 요청한 결과를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응답의 결과는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이 받았다고 생각한 응답의 상당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기도에 빠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이나 기도의 응답이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잣대가 바로 성경이다. 성경을 통해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구별하고 참 목자와 삯꾼목자를 분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이라도해도 모든 삶의 행동지침을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성경의 주요한 관심사는 우리가 평안하고 형통한 삶에 있기보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뜻에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주요한 원칙을 발견하는 것과 슬기롭게 삶에 적용하는 것은 별개이다. 여기에는 기도를 통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행동원칙은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유명한 목회자와 신령하다고 여겨지는 교회지도자라 할지라도 성경에 위배된다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내용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를 분별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이단으로 지목된 이들조차 자신의 성경해석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데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는 해박한 성경지식이 필요하다. 이는 전문적인 성경교사의 자문을 구하고 관련 전문서적들을 참고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능력을 키워라.

필자가 상담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신앙에 열심이었고 교회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뜻에 무지해서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몰두하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삯꾼목자들의 덫에 걸려 기복신앙을 앞세우는 교회헌금으로 재산을 잃은 이도 적지 않았다. 삯꾼목자들이 말하는 투는 대략 이러하다.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쓰임을 받고 있는 종이며 꿈이나 환상, 기도 중의 말씀을 통해 특별계시를 받는다든가 주의 종이 시키는 대로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정작 하나님으로부터 중용되는 종이라면 이러한 투로 말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대부분이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더라면 이런 허점투성이의 제안에 넘어가지 않았겠지만 무지했기 때문에 목사라는 직함만을 믿고 넘어가버린 것이다. 삯꾼목자나 거짓예언자에게 넘어간 경우가 아닌 보통의 교인들도 신앙에 힘이 없고 삶에 능력이 없이 살아가는 이도 허다하다. 이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대부분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앞세운 각종 예배의 참석, 십일조, 새벽기도회 등이 주를 이룬다. 게다가 교회에서 봉사를 하거나 묵직한 직책을 가지고 있다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희생적이며 형식적인 신앙행위에 있기보다 내면의 성품이나 믿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서 나오는 친밀함 등이 우선이다. 이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지 못하고 기도응답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는 성경에 전문적이지 못하거나 깊은 깨달음이 없는 목회자의 설교를 오랫동안 들어온 탓이겠지만 누구에게나 성경이 주어진 지금 아무런 변명도 이유가 될 수 없다. 한글만 읽을 줄 안다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을 아예 다른 이에게 맡기고 잘 살펴보지 않고 덮어놓고 따른다면 소중한 인생을 다른 이에게 맡겨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된다.

대부분의 우리나라의 교회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 성경공부를 하는데 열정을 쏟기보다 전도나 예배행위에 더 시간과 노력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문적인 학력 배경이나 교육능력이 부족한 목회자의 탓도 있고 배우기를 싫어하며 변화하기를 싫어하는 교인들의 자세도 한몫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아는 능력이 없다면 삶은 형통하지 못하며 신앙은 위태할 수밖에 없다. 특히 팍팍하고 고단한 삶의 덫에 빠진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마지막 남은 등불이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닫는 데 소홀했을지라도 지금부터라도 그 뜻을 아는 능력을 기른다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기필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능력을 기르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습관을 들이는 포인트

1)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으라.

성경은 자신의 종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게 해주신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베스트셀러이고 스테디셀러이다. 그렇지만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열심히 읽는 것은 아니다. 선물하거나 예쁜 활자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거나 아님 번역본이 바뀌어 다시 사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필자는 이십여 년의 평신도시절에 성경을 열심히 읽으려하긴 했지만 의무감에서 보인 태도였다. 그래서 설교 때 주워들은 내용과 어설프게 읽은 것만 가지고도 신앙생활을 하고 중등부 교사를 하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지만 통찰력이 없이 읽은 성경은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예배나 교회생활에 필요한 성경말씀은 목회자가 잘 가르쳐주지만 삶에 필요한 말씀은 눈에 불을 켜서 읽어도 만만치 않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류구원을 위한 큰 주제로 쓰인 책이지, 형통한 삶을 사는 주제에 집중한 책이 아니기에 행간에 숨은 하나님의 뜻을 세세하게 살펴보지 않는다면 흘려버리고 지나치기 쉽다. 또한 일부에 국한된 구절을 깊게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성경 전체를 통해 밝힌 뜻을 균형 있게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자신의 신앙 수준과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깨닫는 의미는 매번 다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규칙적으로 꾸준히 읽어야 한다. 필자는 아침 기도시간이 끝나면 성경을 읽는데, 하루에 구약 3장, 신약 3장을 읽는 것을 정해놓고 있다. 읽는데 정신 팔리면 더 많이 읽는 날도 많다. 그렇지만 읽는 버릇이 몸에 배지 못한 사람들은 내용의 숙지보다 규칙적으로 읽는 습관을 들이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새로운 기대를 가지게 할 수는 없다. 앞에 나올 사건과 지금의 주인공에 대해 훤히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얻는데 있다. 책속에 마치 보물지도가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시간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찾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하고 성경에서 귀한 보석을 찾는 기대감도 필요하다. 이러한 마음은 견고한 믿음이 바탕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하는 열정이 토대를 이룰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마음이나 기대감이 없더라도 습관을 들여 읽다보면 그런 날이 곧 오게 된다. 필자 역시 처음부터 대단한 기대감을 가지고 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성경 읽는 재미가 쏠쏠하게 들고 기쁨이 샘솟는 날들로 채워졌다. 성경은 일반적인 이야기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안에 놀라운 능력이 숨겨져 있다. 그 보물을 발견할 때까지 믿음을 의지하고 참고 견디며 꾸준하게 읽어야한다.

2)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라.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    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수십 년간 읽어온 성경이라도 어느 날 새로운 깨달음으로 마음을 찌르는 때가 있다. 맨 날 들어온 설교라도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날이 있다. 특별하지 않은 구절인데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아마 소설책이었거나 일반적인 정보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말씀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많이 일으킨다. 하도 많이 들어와 새로운 맛이 없고 귀에 딱지가 붙어 심드렁한 말씀이 어느 날 가슴에 꽂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이다. 성령을 일러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와 같다.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할 때 가장 먼저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이 바로 성령이어야 한다. 그분이 내 안에 거주하시며 일하신다면 그동안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끊임없는 기도로서 성령이 주시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이 없어서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에 앞서 성령님의 내주(內住)와 도우심을 간절히 요청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일은 노동에 불과할 것이고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3) 성경 도우미를 활용하라.

아무리 성경에 해박한 성경학자라 하더라도 모든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물며 평신도가 성경의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닫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비록 3년간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랫동안 사역을 위해 성경을 연구해왔지만 지금도 잘 모르는 내용이 툭 튀어나올 때가 적지 않다. 그럴 때면 성경사전과 주석 혹은 여러 번역의 영어성경,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어를 뒤지고 전문적인 참고서를 찾아보기도 한다. 같은 단어나 구절이라도 구약이나 신약에서의 뜻이 조금씩 다르며 성경기자가 선호하는 뜻에 차이가 있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리 적용하는 경우도 있기에 말이다. 또한 성경은 한글만 알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쓴 이야기책이 아니라 결코 만만치 않은 신학사상이 스며들어 있으며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이나 비유가 난무하고 어려운 구절들이 다수 포함되어있다. 신약만 하더라도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뒤로 갈수록 바울서신을 비롯한 성경은 그냥 읽는다면 무슨 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그래서 성경은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가 읽기에도 녹록치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 평신도가 아무런 참고서 없이 단지 성경만을 읽어 그 속뜻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도우미 없이 그냥 성경만을 읽는 데 급급하다. 어려운 뜻이나 구절이 나오면 성경사전을 참고하고 평신도용 주석이라도 찾아보아야 할 터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성경을 읽어도 깊은 깨달음이 없다. 단지 알기 쉬운 사건이나 내용,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만 훤하게 알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성경을 읽을 대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지 말고 정확한 뜻을 아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희생적인 신앙행위만을 반복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제부터는 성경을 읽을 때 최소한 성경사전이나 평신도용 주석서라도 옆에 두고 참고하며 읽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같은 물이라도 남이 퍼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과 깊은 샘에서 생수를 직접 퍼서 마시는 사람은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다.

4) 중요한 내용은 주제를 나누고 기록하며 읽는다.

구약은 스토리텔링식의 이야기 구술이거나 지루한 족보나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투로 이어져 행간에 숨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명쾌하게 깨닫는데 어렵고 신약의 복음서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사건과 비유로 채워져 있으며 속뜻을 파악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하고 그 뒤의 서신서는 만만치 않은 신학사상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래서 정신을 집중하고 읽더라도 정확한 뜻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성경의 내용은 잘 알고 있더라도 정작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이들이 많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도 그랬다. 율법내용에는 교사요 전문가로 자처하였지만 정작 그 속에 숨은 하나님의 뜻에는 무지하여서 예수님의 책망을 자초하였다. 필자는 성경을 읽을 때 노트를 따로 두고 기록하면서 읽는 게 버릇이 되었다. 중요한 구절이 나오면 일단 전체의 뜻을 파악하여 주제를 정해 빨간 볼펜으로 제목을 단다. 그리고 파란색이나 검은색 볼펜으로 기록을 하고 맨 뒤에 출처를 적는다. 이렇게 하면 성경구절을 한 주제로 묶어서 이해하기 쉽고 삶에 적용하는 것도 수월하다. 또한 나중에 필요에 따라 노트를 펼치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어 요점만 다시 읽으며 처음의 잔잔한 감동을 재현할 수 있다. 이처럼 하는 것은 성경내용을 아는데 그치지 않고 행간에 숨은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을 깨닫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나중에 다시 읽을 때는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비교할 수도 있고 더 깊은 비밀을 발견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마치 시험을 치루기 위해 정독을 하는 학생처럼 집중력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버릇을 기르면 오래되지 않아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것이다.

5) 목표를 세우고 성경 읽기표를 작성하라.

누구나 처음에는 단단한 결심을 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초심이 물러지고 흐지부지하기 쉽다. 이럴 때는 다른 도구를 이용한다면 의지를 곧추세울 수 있다. 그것은 읽는 목표를 정해서 하루하루 필요한 분량으로 나누는 것이고 그것을 기록표에 매일매일 적는 것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신약 2장, 구약 2장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조금씩 분량을 높여나갔다. 지금은 신구약 각각 3장 이상을 읽고 있다. 초기에는 내용숙지보다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므로 규칙적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을 정하고 목표를 세우고 기록표를 작성하여 자신이 눈으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성령이 주시는 즐거움을 얻는 것이 쉽지 않아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령 충만한 가운데 성경을 읽는 버릇을 기르게 되면 꿀을 먹는 것처럼 기쁨과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 다음에는 굳이 목표를 세우고 읽기표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며 성경을 읽고 싶어진다.

6) 감명 깊은 말씀을 묵상하라.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는 길이 성경말씀을 통해서라고 말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말씀을 읽고 감동이 오는 말씀을 묵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읽는 성경말씀 중에서 머릿속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는 구절이 있음을 적지 않게 경험했다. 그 구절은 예사롭지 않았기에 묵상하면서 무언가 하나님이 주시는 깊은 뜻이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과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씀은 놀라운 깊은 뜻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감동이 오는 말씀은 기록하며 틈나는 대로 묵상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뜻을 살피곤 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지 않기에 좋은 기회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놓치곤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성경을 읽으면서 감동이 오는 말씀들은 기록하고 깊이 묵상하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만 깨닫는다면 가는 길이 얼마나 형통하겠는가?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