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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어머님께 띄우는 편지 - 글: 문 보근

Joyfule 2024. 5. 8. 16:41


아버님, 어머님께 띄우는 편지

아버지 어머니
꽃가게 앞에서
나는 한참을 머뭅니다

카네이션 꽃을 사본 지가 얼마던가요
여전히 카네이션 꽃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름답고 고웁습니다

나는 주인 없는 꽃 두 송이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면서
그때 순간순간 불렀던
두 분의 호칭을 그리움 찍어 다시 불러 봅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님,
그리고 엄마, 어머니, 어머님하고 불러 봅니다
이렇게 부르다 보니
눈시울이 붉어지며
아릿한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아빠하고 부를 때는
아빠는 나를 토끼라고 부르고
엄마는 강아지라고 부르셨지요

내가 중년이 되어 아버지하고 부를 때는
아버지는 나의 선배가 되시고
어머니는 친구가 되셨지요

내가 불혹이 되어 아버님하고 부를 때면
아버님은 나의 스승이 되시고
어머님은 동지가 되셨지요

아빠와 함께 걸으면
사탕 가게가 나오고
아버지와 걸으면 서점이 나왔지만
아버님은 근린공원이 나왔습니다

엄마와 함께 걸으면
학교가 나오고
어머니와 걸으면 텃밭이 나왔지만
어머님은 노인정이 나왔습니다

아빠를 생각하면
세뱃돈이 생각나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황소가 생각났지만
아버님은 고향이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색동옷이 생각이 나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떡국이 생각났지만
어머님은 부지깽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아빠 몸에서는
까까 냄새가 나고
아버지 몸에서는 땀 냄새가 났지만
아버님은 약 냄새가 났습니다

엄마 몸에서는
젖 냄새가 나고
어머니 몸에서는 분 냄새가 났지만
어머님은 파스 냄새가 났습니다

아빠 입에서는
웃음소리가 나고
아버지 입에서는 자식 염려 소리가 났지만
아버님은 앓은 소리가 났습니다

엄마 입에서는
어부바 소리가 나고
어머니 입에서는 자식 걱정 소리가 났지만
어머님은 신음 소리가 났습니다

아빠는 나의 놀이터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담장이셨습니다
아버님은 나의 그늘이셨습니다

엄마는 나의 둥지이셨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오솔길이셨습니다
어머님은 나의 솜이불이셨습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님,
이렇게 당신과 나의 삶을 나열하고 보니
당신은 나에게는 하늘 같은
드높은 분이셨습니다

엄마,
어머니,
어머님,
이렇게 당신과 나와 살아온 행적을
펼쳐놓고 보니
당신은 나에게는 땅 같은
아늑한 분이셨습니다

두 분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에 떠있는
해와 달이십니다

아버지 어머니
눈을 지그시 감고
두 분을 그림 그리듯 그려 봅니다

두 줄기 강물이 만나
한 줄기로 흘러 내가 태어났고
그 물줄기가
내 뿌리를 적혀 나를 꽃 피웠습니다

때론
아버지는 해로
어머니는 달로 하늘 높이 떠
나를 비추어 주셨고

때론
아버지는 굴뚝으로
어머니는 아궁이로 구들장 같은 나를
따뜻하게 데워주셨습니다

때론
아버지는 물음표로
어머니는 느낌표로 무지한 나를
질문과 답이 되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많이 많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몹시 보고 싶습니다

오늘 밤엔
꼭 내 꿈에 오세요
두 눈 꼭꼭 감고 두 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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