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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달리아(Adalia)

Joyfule 2016. 4. 27. 09:23

 

 

앗달리아(Adalia)

 

앗달리아(안탈랴)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소아시아에 있는 로마의 속주 밤빌리아 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 ‘아달리아’(Adalia)이다. - B.C. 145경 버가모의 왕 앗다로스 2세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 세운 도시이다. 밤빌리아 지역의 소아시아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현대의 ‘아달리아’(Adalia)이다. 앗달리아는 ‘카타락테스’(Catarrhactes) 강에서 약 37m 정도 융기되어 있는 평평한 석회암 대지에 위치해 있다. 앗달리아의 역사는 버가모의 ‘아탈루스 2세’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앗달리아’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소아시아 서쪽 연안, 밤빌리아의 가장 중요한 출구이다. 앗달리아는 남서쪽의 풍부한 ‘프리지아’(Phrygia)지역과 교역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리쿠스’(Lycus)와 ‘메안데르’(Meander), 그리고 에베소와 서머나로 향하는 교역로가 앗달리아를 통과했다. 시리아와 이집트로 가는 길로도 편리하게 이용되었다. 앗달리아는 페르시아, 마케도이나, 시리아의 셀류커스 왕조, 앗달리드, 그리고 로마의 계속적인 침공으로 황폐하게 되었다. 앗달리아는 본래 버가의 외항으로 사용되었는데, 초기 기독교 시대의 주요 도시 지역이 되었다. 앗달리아는 고대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서 터키의 남쪽지방에 위치하고 있고, 아름다운 해변을 지나고 있기에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로 알려져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방어 시설물들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고, 중세 도시 성벽들에서 발견된다. 가장 인상적인 고대의 경계표는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만들어진 삼층으로 된 문이다. ‘하드리아누스’(Hadreanus)가 세운 ‘명가고딕 아치형’ 문과 고대의 수로는 기념비적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바울과 실라가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중에 들렸던 곳이다.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사도행전 14:25)  

 

앗달리아(안탈랴)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앗달리아(안탈랴)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앗달리아(안탈랴)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안탈랴                   (출처- http://blog.daum.net/baegnh/7090355)

 

앗달리아(안탈랴)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앗달리아(안탈랴)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안탈리아 구시가지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유적           (출처- cafe.daum.net/posung57/MK51/439)

 

앗달리아(안탈랴) 구 시가지              (출처- cafe.daum.net/posung57/MK51/439)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들로 둘러싸인 안탈리아 시내           (출처- cafe.daum.net/posung57/MK51/439)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들로 둘러싸인 안탈리아 시내           (출처- cafe.daum.net/posung57/MK51/439)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us Kapisi)                   (출처- cafe.daum.net/posung57/MK51/439) 

 

안탈리아 구시가지에 있는 하드리아누스의 문은 서기 130년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안탈리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대리석으로 만든 문이다. 섬세하고 뛰어난 조각들로 유명한 히드리아누스의 문은 이오니아식 기둥이 받치고 있는 3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어, 이 나라 말로 위츠 카프라르(3개의 문)라고도 불린다. 이 문은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이 문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 지고 있다. 이 문은 기원전 130년 하드리안 황제가 안탈랴를 침입했을 때 그의 영예를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것인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항구 근처에는 이 문과 성벽의 다른 부분을 나누는 두 개의 탑이 남아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us Kapisi)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us Kapisi)                   (출처- cafe.daum.net/posung57/MK51/439)

 

하드리아누스의 문에 있는 '이오니아식 기둥'                 (출처- cafe.daum.net/posung57/MK51/439)

 

이오니아식 기둥의 특징은 기둥의 맨 위에 산양의 뿔모양이라고도 불리는 둥근 장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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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us Kapisi)                   (출처- http://blog.daum.net/baegnh/7090355)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us Kapisi)                   (출처- http://blog.daum.net/baegnh/7090355)

 

이블리(이울리) 탑(Yivli Minare)              (출처- cafe.daum.net/posung57/MK51/439)

 

38m 높이의 이울리 탑은 ‘룸 셀주크 왕조’의 술탄에 의해 세워진 모스크 첨탑(미나레)으로 뛰어난 조각장식들과 탑 정면의 푸른 타일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블리’는 홈이라는 뜻인데 미나레 외벽에 붉은 벽돌로 만든 8줄의 세로 홈이 있어서 이블리 미나레라고 불린다. 이 첨탑이 있는 이울리 모스크는 비잔틴(동로마)제국 시대에 성모 마리아를 위하여 지었던 교회를 1373년 이슬람교 사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블리(이울리) 탑(Yivli Minare)              (출처- cafe.daum.net/posung57/MK51/439)

 

앗달리아(안탈랴)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앗달리아(안탈랴)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안탈랴                   (출처- http://blog.daum.net/baegnh/7090355)

 

안탈랴                   (출처- http://blog.daum.net/baegnh/7090355)

 

앗달리아(안탈랴)                       (출처- cafe.daum.net/drivingtour/MGiw/476)

 


로마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아스펜도스는 안탈랴의 동쪽 47킬로 지점, 고대 유리메돈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고대 도시 아스펜도스는 위 부분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와 아랫부분의 로우어 시티(Lower City)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있다. 아고라, 불레테리온, 예배당, 기념분수는 도시의 윗부분인 아크로폴리스에 있고, 극장, 스타디움, 로마 목욕탕과 수로(水路)는 아랫부분에 있다. 원형 극장 아스펜도스는 약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로서, 로마 시대(AD 2세기 후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AD 121-180) 황제 재임 시 유명한 건축가 제논에 의해 세워졌다. 관중석의 일부는 아크로폴리스 열의 언덕에 의지하여 만들어졌고, 나머지 부분은 둥근 지붕이 있는 하부구조 건물로 만들어졌다. 높은 무대 건물은 대부분의 다른 극장과는 달리 관중석과 분리되어 있다. 구조물은 일반 원형 극장과 별다른 것이 없지만, 입구부터 그 시대 귀족과 평민이 사용하는 문이 구별되어 있고, 관객석 역시 다르게 구별되어 있다.

 


 


무대 건물은 셀주크 시대에는 대무역상들을 위한 숙소로도 사용되었고, 끊임없이 복구한 덕분에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고대에 세워진 극장 중 보존이 가장 잘 된 것이다.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복구하여 야외 공연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