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양심(良心)은 양심(兩心)

Joyfule 2018. 2. 5. 10:28
     
     
        양심(良心)은 양심(兩心)
        김요한 선교사  
    타고난 인간의 양심은 선악의 기준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을 쫓겨난 아담의 후손들이 물려받은 마음과 행동의 저울입니다. 
    문제는 이 양심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세 들어 사는 사람의 양심과 세를 내 주는 사람의 양심이 다르고, 
    며느리 때의 양심과 시어머니 때의 양심이 다르다고 말들을 합니다. 
    이 양심은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상황윤리라는 말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양심(兩心)이라고 해 보는 겁니다. 
    그러나 거듭난 양심은 선악을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단, 빛과 어둠, 
    생명과 사망, 성령과 육체, 그리스도와 나 이 두 영역을 감시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선과 악은 자신의 의지대로 오락가락하지만 빛과 어둠, 생명과 
    사망의 영역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건너다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록 거듭났다고 해도 아직 옛 사람이 남아 있어 
    끊임없이 옛 양심으로 자신과 남을 판단합니다. 
    마귀의 참소와 자신의 양심의 고소를 당합니다.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어린아이이며 육신에 속한 자들입니다(고전3:1-3) 
    그런데 옛 양심으로 회개를 해도 성령은 이를 보증하고 확증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스스로 양심의 기준에 의한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묵상하고 
    자신을 거기에 넘겨 줄때에 역사하십니다. 
    자신의 선과 악의 잣대로 하나님 앞에 잘못을 고백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양심을 무마하려는 사람의 회개를 하나님이 받아 줄 리는 만무입니다. 
    그건 맹자의 일일삼성(一日三省)과 다를 바가 없는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 거룩한 영역 곧 그리스도 안이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로 재어 준 구역 안으로 그 아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들어가려는 
    자녀들에게 그 아들의 피의 효력은 나타나고 성령의 보증하심이 뒤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죄로 부터의 자유와 진리 안에서 
    자유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옛사람의 타고난 양심에서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양심 곧 
    오직 하나님만 선하시고 세상과 인간은 악하다는 양심입니다. 
    인간들은 다 똥 싸고 오줌 싸는 어린아이의 수준에서 낫다 못하다는 정도, 
    마음엔 온갖 더러움과 부정함이 있어도 넌 그랬지만 난 아냐 하는 수준에서 다툽니다. 
    이 양심의 차이에서 싸움이 일어납니다. 
    난 아닌데 넌 왜 그래 이것이 모든 분쟁의 원인입니다.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거룩한 양심, 거듭난 양심은 자신의 옛 사람의 양심이 
    얼마나 부질없고 보잘 것 없는 기준이었는지 그리고 이기적이고 거짓이었는지 잘 압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기준이 바로 십자가란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지 않았던 옛사람의 양심의 기준, 지식, 경험, 자격, 관념 등이 
    다 나로 하여금 남을 죽이고 나를 죽이는 흉기가 됨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신을 처리하고 빛과 생명과 사랑 안에서 
    새로워지길 사모하는 거듭난 양심엔 세상과 사람이 새롭게 보입니다. 
    자유인입니다. 
    성령을 좇아 살며 남을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는 영적인 기능과 역할을 갖게 됩니다. 
    그 마음엔 의와 화평과 희락의 꽃이 피고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자연인의 양심은 선악의 기준이며 호불호(好不好)요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건너 온 양심은 진리 안에서 
    거룩, 영광, 사랑과 같은 하나님의 속성이 그의 양심의 기준이 됩니다. 
    인간이 요구하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은 그 안에 이미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 알고 있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은 
    그 양심과 더불어 서서히 물러나고 새 사람의 양심은 서서히 정립이 되어 갑니다(고후4:16) 
    그래서 신앙은 나와 다른 이들을 향해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