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Joyfule 2018. 2. 6. 11:17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김요한 선교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마음만 있고 행위는 없는 인간의 선의 의지를 로마서 7장은 고발합니다. 
    인간이 타고난 성품으로 능히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식을 현대교육이 조성했고, 
    자본주의는 그 소유가 존재의 정체감인 것인 양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 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의 강력한 원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욥(Job) 같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욥이란 말은 ‘대적하다’는 의미인데 어쩜 자신의 일(Job)로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육체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욥에게처럼 긍정적인 역할이 있습니다.
    육체는 잘 하려고 하는 의지만 강할 뿐 결국은 악으로 무너지고 맙니다. 
    그 안에 있는 죄의 법 때문입니다.(롬 7:23) 인간은 선과 악 사이에 철저하게 
    따지고 잘 해 보려고 노력을 할 수 있지만 스스로 구원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선과 악은 상대적일 뿐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에 비하면 밀에 대한 겨의 비교입니다.
     육체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바른 말은 딱 떨어지게 잘하지만 찬송이 없습니다.
     ‘평생 갚아도 빚진 자 되어 주님의 빚진 자 되어...’ 사랑의 빚진 마음이 없습니다. 
    구원의 노래가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지만 항상 율법이 찾아와서 
    사망의 덤터기를 씌우기 때문입니다.(고전 15:56) 
    곡식에 있어서 밀과 겨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와 나를 어찌 나란히 둘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보이는 우상이나 마음이 따라가는 우상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그럭저럭 탈피할 수 있지만 
    자신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자아라는 우상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목숨이라 질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됩니다.(시 23:4) 
    인간적으로 정말 달갑지 않은 인생의 홍역을 겪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세례,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만 순순히 따라가는 
    훈련을 쌓으면 타고난 목숨을 버리는 그 홍역도 쉽게 넘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인지 
    알고 계시는 그 생명을 사모하고 또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확신과 
    그의 영광 가운데 소망을 확실하게 가지고, 자신을 거듭거듭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내어 주고 주 예수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백이 터져 나오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찬양을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주의 생명을 간절히 소원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바로 평강과 기쁨일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