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텍사스에 산다는 분이었다. 내가 블로그에 올려 민들레씨 같이 날려 보내는 글을 보고 인생관과 가치관의 정립에 도움을 얻었다는 것이다. 글을 쓴 보람을 느끼게 하는 감사한 말이다.
나는 왜 매일 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풀을 뽑을까. 사람들과 마음과 마음이 교류하면서 영혼의 좋은 친구들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맑고 향기로운 글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천국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한 그런 글을 써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희망을 가진 것은 내가 그런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단테가 지옥과 연옥을 보고 천국을 소개하듯 나는 사십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지옥’을 보고 연옥도 봤다. 법정과 감옥은 이 세상에 만들어진 지옥이었다. 짐승에서 사람으로 진화가 덜된 듯한 존재들이 있었다. 묻지마 살인 같이 이유없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끊는 존재들도 있었다.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악령을 뒤집어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증오와 저주가 가득 차 있었다. 욕심 분노 어리석음으로 끝간데 없이 싸우면서 자신들의 몸을 불태우고 있었다. 원초적 욕망으로 돈을 따라가다가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좀비로 변하는 것 같았다. 몸은 사람이지만 영혼이 빠져나가 버렸다. 감옥 안에 갇힌 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서민들의 모습은 어떨까. 사기의 피해자라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많다. 자기 그릇에 맞지 않는 턱없는 욕심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기들의 피해를 남에게 전가해서라도 손해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소리치는 걸 봤다. 피해자라는 단어는 그들의 욕망을 슬며시 희석시키거나 지워버리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빵 하나를 놓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죽도록 싸우는 게 가난의 밑바닥이었다.
부(富)를 거머쥔 재벌 회장이라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성공한 축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도 지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돈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었다. 재벌 회장의 수행비서를 오래 하던 친구는 부자들을 옆에서 지켜보면 탐식하는 짐승처럼 끝없이 돈을 벌려는 욕망만 보이더라고 했다. 돈을 벌어서 뭘 하려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들이 감옥에 갔을 때 법은 국가 경제에 이바지 했다는 명분으로 용서하지만 정작 그들의 인생관이나 철학은 부족한 것 같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권력에 취한 사람들을 보면 더 추한 모습이었다. 돈이 생기면 이번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권력이 돈을 지켜주고 돈은 권력을 만드는 구조 같았다. 공천을 받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없이 비굴한 모습들을 보기도 했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은 교도소 담벽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한 검사장은 내게 자기가 잡아넣으려고 마음먹으면 도지사 시장 군수 국회의원 모두 구속시킬 수 있다고 했다. 권력추구의 이면은 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운동중인 아직 젊은 문재인 변호사와 같이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그에게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통령을 꿈꾸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으냐고 물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육군 대위 시절부터 ‘국가와 민족’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같이 일하던 병사가 내게 말해준 적이 있다. 대통령 선거 때는 ‘보통사람’이란 구호를 내걸었다. 그가 추구하던 ‘국가와 민족’이 무엇인지 ‘보통사람’이 무엇인지 그의 상속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의 종착역은 지옥인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을 꿈꾸다가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적당한 단계에서 욕심을 조절했다면 그는 행복했을 것 같아 보였다. 정상에 승리의 깃발을 꽂고 대통령이 됐어도 하산길에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미끄러져 절벽아래로 떨어졌다. 그들이 감옥 안에서 무협지를 즐기는 걸 보면서 과연 그들에게 깊은 철학이 있었던가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
사석에서 대통령의 옆에 있는 장차관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재벌 회장의 옆에서 수행하는 그룹의 임원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영혼은 반짝이는 것 같지 않았다. 성공이라는 걸 움켜쥐었다는 사람들의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포장일 뿐이었다. 그들은 권력이나 부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이 변호사로 검은 터널을 그들과 함께 통과하면서 본 지옥 풍경이었다.
나는 배의 바닥짐같이 인간에게 중심을 잡아주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어떤 것일까 생각하곤 했다. 가을 계곡물 같이 맑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꿈을 꾸기도 했다.
반지하방 깨진 유리창 아래의 앉은뱅이 책상위에 낡은 성경책이 놓여있다. 거기에 손을 얹어놓고 기도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가난해도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 같았다.
높은 자리를 권유받은 사람이 “저는 제 주제를 압니다”라면서 사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주제’라는 단어가 내 인식의 벽에 화석같이 박혀있다. 자신의 주제를 아는 사람은 진정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돈은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땀 흘려 일하는 정직한 노동을 하면 누구나 그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닐까. 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은 영혼이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샘물같은 것은 아닐까. 내게 온 작은 댓글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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