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죽기까지 하고 싶은 일
화면에 유명한 여성 연극배우가 나와서 앉아있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의 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뇌종양으로 큰 수술을 하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세월에 풍화되는 존재인 것 같다. 죽음을 앞 두고 있는 듯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을 살아도 나답게 살고 싶어요. 무대 위의 나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죽기 전에 ‘짠’하고 뭔가 보여주고 싶어요.”
이어서 그녀는 자신이 연습한 아리랑을 몇 소절 청승맞게 불러제꼈다. 그녀가 덧붙였다.
“우리 엄마도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러면서 ‘죽을 때 죽더라도 일해야지’라고 하셨죠.”
오래전 소송업무관계로 그녀의 오피스텔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서가에 연극 대본들이 가득 차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 무심히 그중 한 권을 뽑아서 들춰보았었다. 두 명의 연극배우가 하는 대사들이 빽빽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한 연극무대에서 대사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걸 다 암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냥 외우면 되는 게 아니었다. 그 위에 표정과 어조 행동을 덧붙이고 감정까지 이입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미쳐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일도 일 나름인 것 같다. 공직 생활을 무난히 마치고도 ‘자리’에 연연하면서 끝없이 권력의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도 보았다. 늙었어도 국회의원 선거때만 되면 후보자로 등록했다. 선출직이면 어떤 곳이든 나서려고 했다. 그것도 안되면 공기업 사장 자리에 지원서를 내놓고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어느 날 허공에서 중간에 구멍이 뚫린 계단의 허공을 밟고 바닥없는 영원한 허무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헛된 것을 추구하다가 헛된 존재로 스러져 버리는 것 같았다. 인생의 스산한 겨울 저녁빛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되새김한다. 그리고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까를 화두로 삼는다.
지난 이년동안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에서 본 노인들의 삶은 내게 하나의 참고서 같다. 아흔살이 넘은 한 노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의 황혼과 죽음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있어요. 기울어가는 마지막 햇살이 산의 능선이나 나무들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순간같지. 그 순간을 음미해 보느냐 아니면 일을 하다가 바로 죽음으로 가느냐 선택의 문제겠죠.”
그 노인의 말도 지혜였다. 그 노인은 매일 매일이 그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했다. 노인은 매일 파크골프를 치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저녁이면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며 살고 있다. 노인은 아침에 눈을 뜨면 선물 받은 하루에 감사한다고 했다. 행복과 지혜는 감사에서 오는 것 같았다.
실버타운에 관절염인지 다리를 절룩이면서 밀차를 밀고 다니던 여성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내게 인생 말년에 남는 게 시간밖에 없다고 하면서 무료함과 공허를 하소연했다. 주어진 하루가 선물이 아니고 견뎌내야 할 고통같이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노인은 실버타운 안에 있는 피씨방에서 혼자 포커 게임을 했다. 그러다가 그 옆 바닥에 죽어있는 게 나중에 발견됐다. 그 노인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실버타운에 잔디정원이 있고 시설이 좋아도 사람들은 무료함과 공허를 어쩌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일을 찾는 것 같다. 텃밭에 나가 고추와 오이를 기르는 노인도 있다. 주민센터에 가서 쇼핑봉투에 플라스틱 손잡이를 끼우는 작업을 신청하는 노인도 있다. 공사장의 일용잡부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분도 있다. 그들을 살펴보면 젊은 시절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에서 대접받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뭔가 아쉬워하며 긴긴 인생의 저녁을 보내고 있다. 그 아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미치도록 사랑해보지 못하고 밋밋한 인생을 살아온 걸 후회하는 건 아닐까. 전부를 걸고 죽을 만큼 노력해 보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 건 아닐까. 결혼도 사회생활도 포기한 채 ‘혼불’이라는 소설을 평생 쓰다가 죽은 소설가가 있었다. 내가 소송을 맡았던 화가는 평생 손에서 드로잉 연습을 그친 적이 없었다. 예술이라는 건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고 싶은 어떤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 것 같다. 뇌종양을 가지고 있는 한 연극배우를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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