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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중간 정도의 삶

Joyfule 2024. 2. 15. 11:1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중간 정도의 삶


동해의 바닷가로 내려와 살면서 자주 들리는 음식점이 있다. 막국수와 육계장을 잘하는 집이다. 도시에 살던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오전 열시반에 가게 문을 열고 오후 세 시경이면 문을 닫는다. 음식 맛이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몰려오는 데도 그 젊은 부부는 돈을 포기하고 자기들의 삶을 즐기는 것 같다. 그 부부만 그런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이름난 탕수육집도 그렇고 책방도 그랬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논다. 집세를 내지 못할 만큼 쪼들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돈을 따라가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집은 너무 좋지도 않고 너무 초라하지도 않다. 입은 옷은 낡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유행을 따른 새것도 아니다. 그들 중에는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이게 뭔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속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개발시대의 청년이었다. 우리들은 쉬지 않는 게 자랑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은 퇴근개념이 없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이면 외국바이어를 접대하느라고 술에 쩔어 살았다. 가족보다는 일이 먼저였다. 자영업을 해도 손님만 온다면 밤늦게까지 문을 열어두었다. 한 푼의 돈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돈을 벌어 아파트를 구입하고는 인생의 보람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머리위로 하얀 눈이 내리고 주름살 투성이의 할아버지가 됐다.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던 젊음이 어느순간 허망하게 증발해 버린 것 같다.​

동해의 바닷가에서 작은 레스트랑을 하면서 여유를 즐기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혼돈이 왔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

우리 시대는 ‘도 아니면 모’라는 극단의 선택을 강요당했다. 일류가 되어야 했고 성공을 해야 했다. 이류나 중간으로 지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던 풍조였다고 할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라는 인물은 밀납으로 된 날개를 달고 너무 높이 날아오르다 태양열에 한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기도 했다. 친하던 변호사 후배는 국회의원에 두번 출마해서 실패하고 세번째 도전하다가 암으로 갑자기 죽었다. 스트레스가 암의 원인 같았다. 그냥 평범한 변호사로 즐겁게 살 수는 없었을까. 내가 변호를 맡게 된 학원 재벌이 있었다. 그 정도로도 넘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최고의 정상을 향해 한없이 치솟고 싶었던 것 같다. 법정에서 재판장은 그에게 이카루스의 부실한 날개가 녹아버렸다고 했다. 그는 이십년가까이 한 평이 안되는 감방에서 지내고 있다. 시민운동을 하다가 서울시장이 된 고교후배인 변호사는 대통령이 되려고 애를 쓰다가 저세상으로 건너가 버렸다. 솟아오르려는 인물을 대중들은 발가벗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구름 위에서 떨어져 내려 진창에서 뒹구는 모습을 보고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의 성공을 거머쥐는 것이 좋은 것일까. 목숨 걸고 돈을 번 중국의 재벌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마약거래에 손을 댓다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이렇게 될 바에야 그저 가게 하나 운영하면서 가족과 즐겁게 살걸”하고 후회하더라고 했다. ​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바로 ‘중용정신’이 아닐까. 삶의 극단 사이 어디엔가 있는 꼭 알맞은 생활이 있을 것 같다. 인생은 쓰고도 단것임을 깨닫는다면 그 중간의 맛을 선택한 사람들이 가장 현명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조용한 노년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주변의 친구들이 있다. 사회에서 다소의 일은 했고 어느 정도 이름은 알려졌지만 그다지 유명한 인물은 아니다. 이름이 알려졌다면 알려졌고 알려지지 않았다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할까. 약간의 재정능력을 가진 조촐한 환경들이다. 우선 생활 걱정은 없고 그렇다고 전혀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속에서 삶을 즐긴다. 정년퇴직을 하고 십년째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가까운 벗들에게 들려주거나 자기 혼자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인 것 같다.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아니어도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닐까. 상당히 공부는 했지만 전문가까지는 되지 않는다. 글을 쓰지만 신문이나 잡지에 보내는 기고문이 때로는 안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실리기도 하는 정도라고 할까. 도시와 시골 사이를 오가면서 살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논다. 좋은 음식도 알맞게 먹는다. 그런 중용의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