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성낙] 표절사회의 끝을 봐야한다
국민일보 입력 2013.04.22 18:42
"대학 평가할 때 논문 표절사고 일으킨 곳은 엄중하게 감점 주는 방안 검토해야"
출판물의 해적판(海賊版)이 나돌던 1970년대 상황에서 대학가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해적판을 적지 않은 교수들이 구입했으니 학생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의대학생회 이름으로 "해적판 단속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저개발국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저소득층 학생을 탄압하는 것이다. 정부의 강압적 단속을 규탄한다!!" 같은 내용의 벽보가 많이 붙어 가슴이 왠지 무겁기도 했다.
필자는 생각 끝에 학생 대표 몇 명을 교수실로 불렀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넌지시 "서가에 있는 적지 않은 책이 외국 원서인데, 저기서 이른바 '해적판'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왜 '초청'을 받았는지 짐작하고는 당혹해했다. 그래서 '가짜 책'에서 귀한 지식을 얻는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외국 대학생에게는 해적판이 없을뿐더러 그들도 돈이 없어 책을 구입하기 힘들어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얼마 후 학생들은 대자보를 조용히 수거했다.
짝퉁 상품이 민망스러울 정도로 주변에 범람하고 있다. 한 번은 유명 역사 유물을 전시한다고 하기에 먼 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필자는 그 유물을 보며 감동했다. 그런데 그 유물은 진품이 아니고 카피, 즉 짝퉁이었다. 진품은 금고에 보관 중이었다. 하지만 전시장 어디에도 작품이 복제품이라는 설명이 없었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실망과 함께 속았다는 배신감이 교차했다.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왜 우리는 외국 박물관에서처럼 그런 '사소한'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결국 공공 기관인 유물 전시관이 속임수인 표절 행위를 한 셈이다.
근래 방송인, 연예인, 정치인 그리고 교육계 종사자들이 취득한 박사학위가 논문 표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몇 년 전에는 교육 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교육부총리와 어느 명문 대학교 총장이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려 중도 하차한 적이 있다.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황우석의 표절'은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표절(剽竊)'이란 남의 작품이나 학설을 훔치는 도둑 행위, 즉 도작(盜作)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엄연한 윤리적 범법행위이다. 그런데 그런 '죄인들'이 몇 년만 지나면 텔레비전에 버젓이 등장한다. 참으로 허탈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하긴 중범죄로 수감됐던 정치인이 특별 사면을 받고 풀려나 다시 요직에 앉는 것을 묵인하는 우리 사회이니 할 말이 없다. 도둑 행위인 논문 표절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논문 표절'이 지닌 사회성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될 사안이다. 논문 표절 행위가 최고의 이성 집단이라고 일컫는 교수 사회에서 발생하고 대학이 그런 표절 논문을 제공하는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논문 작성 및 심사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역할과 책임은 매우 무겁다. 독일에서는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를 '박사 어버이(Doktor-Vater)'라고 한다. 그리고 3∼4명의 공동 논문 심사위원도 심사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논문 심사위원들이 표절한 부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전문인의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또한 논문 작성에 필수적인 실험이나 문헌 조사 및 결과 분석을 대신해주는 미래의 교수 지망생들도 있다. '논문 제조' 뒤에 이런 '팀 어프로치'가 있다는 것은 대학 당국도 분명 책임질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대학을 평가할 때 논문의 질(質)과 양(量)만 살펴보지 말고 '논문 표절 사고'가 발생했는지 철저히 조사해 경우에 따라서는 엄중하게 감점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야할 것이다.
짝퉁 상품을 묵인하고 사용하는데서 시작해 특허권 침해나 지적소유권 몰이해 현상을 넘어 논문 표절에까지 이르는 우리의 사회상을 관통하는 공통 함수는 '올바름에 대한 눈높이'이다. 여기에 논문 표절 행위를 근절해야 하는 절박한 당위성이 있다.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출판물의 해적판(海賊版)이 나돌던 1970년대 상황에서 대학가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해적판을 적지 않은 교수들이 구입했으니 학생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의대학생회 이름으로 "해적판 단속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저개발국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저소득층 학생을 탄압하는 것이다. 정부의 강압적 단속을 규탄한다!!" 같은 내용의 벽보가 많이 붙어 가슴이 왠지 무겁기도 했다.
짝퉁 상품이 민망스러울 정도로 주변에 범람하고 있다. 한 번은 유명 역사 유물을 전시한다고 하기에 먼 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필자는 그 유물을 보며 감동했다. 그런데 그 유물은 진품이 아니고 카피, 즉 짝퉁이었다. 진품은 금고에 보관 중이었다. 하지만 전시장 어디에도 작품이 복제품이라는 설명이 없었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실망과 함께 속았다는 배신감이 교차했다.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왜 우리는 외국 박물관에서처럼 그런 '사소한'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결국 공공 기관인 유물 전시관이 속임수인 표절 행위를 한 셈이다.
근래 방송인, 연예인, 정치인 그리고 교육계 종사자들이 취득한 박사학위가 논문 표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몇 년 전에는 교육 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교육부총리와 어느 명문 대학교 총장이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려 중도 하차한 적이 있다.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황우석의 표절'은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표절(剽竊)'이란 남의 작품이나 학설을 훔치는 도둑 행위, 즉 도작(盜作)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엄연한 윤리적 범법행위이다. 그런데 그런 '죄인들'이 몇 년만 지나면 텔레비전에 버젓이 등장한다. 참으로 허탈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하긴 중범죄로 수감됐던 정치인이 특별 사면을 받고 풀려나 다시 요직에 앉는 것을 묵인하는 우리 사회이니 할 말이 없다. 도둑 행위인 논문 표절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논문 표절'이 지닌 사회성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될 사안이다. 논문 표절 행위가 최고의 이성 집단이라고 일컫는 교수 사회에서 발생하고 대학이 그런 표절 논문을 제공하는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논문 작성 및 심사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역할과 책임은 매우 무겁다. 독일에서는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를 '박사 어버이(Doktor-Vater)'라고 한다. 그리고 3∼4명의 공동 논문 심사위원도 심사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논문 심사위원들이 표절한 부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전문인의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또한 논문 작성에 필수적인 실험이나 문헌 조사 및 결과 분석을 대신해주는 미래의 교수 지망생들도 있다. '논문 제조' 뒤에 이런 '팀 어프로치'가 있다는 것은 대학 당국도 분명 책임질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대학을 평가할 때 논문의 질(質)과 양(量)만 살펴보지 말고 '논문 표절 사고'가 발생했는지 철저히 조사해 경우에 따라서는 엄중하게 감점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야할 것이다.
짝퉁 상품을 묵인하고 사용하는데서 시작해 특허권 침해나 지적소유권 몰이해 현상을 넘어 논문 표절에까지 이르는 우리의 사회상을 관통하는 공통 함수는 '올바름에 대한 눈높이'이다. 여기에 논문 표절 행위를 근절해야 하는 절박한 당위성이 있다.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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