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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의 동참 - 김형석 95세 (철학교수, 수필가)

Joyfule 2015. 8. 14. 09:10

            부부 성경책리폼 by 꼰노이

 

영원에의 동참 - 김형석 95세 (철학교수, 수필가)

 

 

철들면서부터 내가 갈망한 것은 인생의 진리였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 뜻은 채워지지 않았다. 예술과 학문은 고귀한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설명하고 밝혀 줄 수는 있어도 문제의 해결은 줄 수가 없었다.

 

나는 공자를 존경한다. 그의 풍부한 인간미와 성실성은 평생동안 존경하게 될 것이다. 공자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제자들이 죽음이 무엇인가고 물었을 때 그는 솔직히 내가 아직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데 죽음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아침에 도를 깨달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고백했다. 그 점이 바로 공자의 좋은 점이다. 그러나 그는 삶의 궁극적인 문제는 풀어주지 못했다. 우리가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이며 삶의 성실한 교훈들이다. 확실히 그는 윤리와 도덕의 으뜸가는 스승이었다.

 

나는 석가가 공자보다는 차원이 높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모든 인간이 겪는 고통과 번뇌의 짐을 바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문제의 해결을 주려고 노력했다. 고통과 슬픔의 짐을 함께 질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고귀한 삶의 자세이다. 그리고 석가는 고귀한 삶의 무거운 짐을 근원적으로 해결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교훈이 종교적 지도자의 것으로서 손색이 없었음을 우리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가장 고마운 삶의 선구자였다. 공자에 비하면 종교적 스승이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그런 점에서 공자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석가의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석가에게도 한계는 남아 있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하면서도 엄숙한 인간적 한계였다. 석가는 결국 인간이 인간을 구해야 하고, 자아가 자신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는 임종 때, 내가 죽으면 법(法)이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며 너희는 부단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위대한 석가가 찾아준 교훈은 법을 믿고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본래부터 한계 지어진 존재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도록 지어진 존재는 못 된다. 사실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인간을 구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 없을 것이다.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러면 인간을 구해줄 존재는 누구인가. 나는 그 분을 절대자인 하느님으로 믿게 된 것이다. 만일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종교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적 윤리에 머물든가 불교를 정신적 수양의 수단으로 삼는 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그 한계성과 정신적 절망을 넘어 구원해줄 분을 믿게 된 것이다. 그것이 내가 바로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으로 머물게 된 동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증명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와 구원의 사실은 논리나 이론을 초월한 체험의 문제이다. 인식보다 깊은 체험에 속하는 문제이며 이론의 근저에서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삶의 사실에 근거를 둔 확증인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버지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인 아버지와의 삶 자체를 의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이 나와 하느님과의 사랑에서 맺어진 약속의 선물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깊은 의미의 ‘영원(永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나는 과학, 도덕, 예술, 철학 등을 통해 영원을 모색해 왔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나에게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영혼이 갈망하는 영원은 그 어느 것도 나에게 약속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이 그 영원을, 내 생명의 백을 합친 것보다도 귀중한 영원을 줄 수 있었다면 나는 그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 영원한 것에 대한 교훈과 실천적 사실을 몸소 체험했고 입증해 준 분이 바로 인간 예수였다. 그리고 그 영원에의 실천적 가능성이 인간 예수를 구주이신 그리스도와 동격으로 삼게 한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 중의 인간에 접하는 일이다. 참 인간을 예수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예수로 그친다면 종교적 구원과 신앙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의 삶과 죽음과 영원한 약속에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하나 됨을 입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동시성이 시간을 넘어 영원에의 동참이 되었고 그리스도와의 삶의 동일성이 시간과 함께 사라져 갈 우리의 삶을 영원한 것으로 승화시켜 주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자각하게 되며 또 모든 크리스천들은 근본에 있어 같은 존재와 영원의 의미를 찾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입니까 에세이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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