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색, 은밀한 곳에서부터 온다 - 김희자
보여줄 듯 말 듯 애를 태우며 자연이 밀당을 하는 서툰 봄이다. 황토 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엉뚱한 곳에서 봄을 만났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띄었다. 봄처녀였다. 그녀를 보는 순간 “싱싱하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꽃은 바람이 지나가는 자연 속에만 피는 게 아니었다. 밋밋한 회색빛 벽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옛 사람이 말했다. 봄을 찾는다고 동쪽으로 가지 마라. 서쪽 뜰에 매화가 이미 찬바람 속에 피어 있다고. 나는 먼 서쪽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고도 봄을 만났으니 뜻밖의 행운이다.
휘청휘청 봄처녀의 꽃향기에 취한다. 그림이 하도 신선해도 수줍음도 잠시 잊었다. 예전에는 이런 그림을 보면 낯이 뜨거워 눈을 감아버렸다. 내 몸을 보여주는 듯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보는 눈이 깊어진 탓인가? 때늦게 철이 드는 것일까? 살아온 세월과 살아갈 세월이 비슷해진 나이의 기로에서 비로소 깨치게 된다. 우리 인체도 하나의 신비한 예술작품이라고. 봄은 자연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몸으로도 오고 있었다.
액자 속 그림에 빠져든다. 한 양산 속에 두 여자가 서 있다. 한 여자의 두 자아인가? 두 여자가 친 자매인양 닮았다. 파랑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어깨선을 드러내며 서 있고 또 다른 여자는 알몸으로 서 있다. 벌거벗은 여자의 아랫도리를 봉선화가 가리고 피어 있다. 보일 듯 말 듯 한 아랫도리의 검은 부분이 성적인 감각을 자극한다. 두 여자의 시선은 어느 한곳에 머무는 듯 정지되어 있다. 침묵 사이로 부서지는 봄의 소리가 들린다. 우산대를 가슴과 가슴 사이에 두어 둥근 선이 더욱 드러난다.
액자 속에 갇힌 그림이지만 그 창을 통해 봄을 본다. 봄물이 물씬 오른 여인의 봉긋한 젖가슴이 젊음을 드러낸다. 앵두 같이 붉은 젖꼭지에서 봄이 느껴진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젖가슴이 매력을 더한다. 한 손 안에 쏙 들어갈 만한 가슴을 봄볕이 들어와 어루만진다. 보고 또 봐도 꽃보다 더 붉고 예쁜 가슴이다. 이슬에 젖은 봉숭아꽃이 말간 얼굴을 드러내놓은 그 시간, 누가 다녀가셨나? 여자의 가슴은 온몸으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붉은 젖꼭지에서 꽃잎의 기다림을 만난다. 누구를 기다리며 저렇게 붉게 피어있는 것일까? 제 스스로도 취할 붉은 빛깔을 하고 있는가. 꽃은 필 때 제 빛깔을 풀고 잎은 질 때 감췄던 열정을 불태우는 법. 만약에 나 다시 태어나 첫눈을 뜬다면 세상의 하늘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태양도 별빛도 구름도 아닌 붉은 꽃으로 피어나겠네. 그대 얼굴 달처럼 덩그렇게 웃으며 다가오면 그대를 위해 활짝 피는 꽃이 되고 싶다네. 사랑은 제 모든 것을 던질 때 참 기쁨을 느낄 수 있듯 나의 몸에는 그대를 위해 한 달에 한번 꽃을 피우고 달을 품겠네.
일생을 붉음으로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색으로 오는 봄, 몸으로 피워 올린 꽃이 너무도 신선하여 어제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내일이면 이미 달라져 있을 살아있는 시간이 어제다. 처음 이 그림을 볼 때는 혼전의 내 모습을 보는 듯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아직 탄력조차 잃은 것은 아니지만 두 딸을 잉태하고 젖을 물렸던 탓에 꼭지의 색이 바랬다. 앵두 같은 빛깔을 잃고 먹물을 찍어 놓은 듯 물이 들어 있다.
가난한 집안의 쌀통처럼 헐어놓으면 하루, 한 주일, 한 달이 야금야금 줄어드는 것이 세월이다. 아주 작은 조개껍데기 속에도 한 세상이 들어가 있듯 세월은 나를 젊음 앞에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젊음을 잃어가는 몸과 열정이 식어가는 텅 빈 가슴, 비어진 곳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나를 가꾸어 희망으로 채워야 한다는 걸 일러주었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라고 했다.
봄이 오는 길목, 진달래를 만나기 위해 여자의 몸에서 핀 꽃을 보았다. 흉중의 개화라는 말이 있다. 꽃이 피는 순서도 그러하듯 가슴 속에서 꽃이 피어야 꽃을 찾아 나설 수 있다. 꽃은 향기로 자기를 알리지만 사람은 신체의 변화, 색으로 존재를 알리고 사랑을 보여 준다. 여위고 건조해진 내 가슴에도 다시 꽃이 피려는 것인가. 봄은 색, 이렇게 은밀한 여자의 몸에서도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며 사색하는 시간, 몽환의 세상에 빠져든 이 순간이 좋다. 내 안에 가라앉아 존재하는 감각이 남부럽지 않다. 해탈은 멀고 허무는 가까웠지만 살아온 세월에 후회는 없다. 모든 것은 변할 뿐만 아니라 소멸되어 간다. 그림 속에 있는 젊은 여자처럼 탱탱한 몸은 유지할 수 없겠지만 외형상 속 빈 강정이 되지 않도록 나를 가꾸어야 한다.
‘당신은 16세 때의 아름다움을 당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60세 때도 아름답다면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일 것이다.’라고 말한 마리 스톱서의 말을 기억하며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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