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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 / 강여울

Joyfule 2015. 8. 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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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쌈 / 강여울

 

상추 두 잎을 손바닥 위에 얹다.

 온 식구가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다. 양념불고기와 푸성귀들이 먹음직스럽다. 볼이 불룩하게 쌈을 먹는 식구들을 보다 친정 부모님 생각에 콧등이 시큰하다. 나를 시집보내고 두 분이 쌈을 드실 때면 어김없이 내 생각에 목이 메었다고 했다.

 

 친정 부모님은 반세기를 함께 살면서도 거의 다투지를 않았다. 아버지는 정적이었고, 어머니는 활달했다. 부부 정은 특별했지만 무남독녀인 내게는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혼자 놀고, 숙제도 공부도 혼자 했다. 밖으로 나가 노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꿈꾸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악마를 꿈꾸어도 상상은 보이지 않으므로 모든 사람이 나를 착하다고 했다.

 

 시부모님은 오 남매의 자식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투는 날이 많았다. 이상한 것은 밥상 앞에 앉으면 서로 맛있는 것을 권하고, 한 사람이 아프면 한 사람은 그 머리맡을 지키는 것이다. 남편은 막내아들로 형과 누나의 보살핌을 덤으로 받고 자랐다. 심지어 자신의 꿈마저도 누군가 대신 꿔 주길 바랐다. 자신이 한 일은 일상적인 것도 큰 자랑거리였고, 잦은 실수에도 누군가가 반드시 원인 제공을 했다는 이유로 항상 당당했다.

 

 중매로 만난 우리 부부는 친정 부모님처럼 정답지도 않았고, 시부모님처럼 자주 다투지도 않았다.

 

 상추 위에 쑥갓을 한 잎 얹다.

 남편과 나는 맞선을 본 지 두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서로의 조건이 흡족했던 것도 아닌데 우리는 서로를 알기도 전에 결혼식부터 올리게 되었다. 맞선을 보고, 결혼 날을 잡고, 물목을 하고, 함이 오가는 날을 다 합쳐서 여섯 번을 만나고, 일곱 번째 만나는 날 신혼여행을 떠난 것이다. 친정 엄마는 몇 번이나 살을 꼬집어 꿈이 아닌지를 확인해 보았다 한다. 시어머니는 맞선을 본 당사자들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사천리로 결혼 절차를 밟았다. 결혼 전에 친구 집에 한번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님께서 나를 눈여겨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님은 맞선을 보기도 전에 무조건 내 식구가 될 것이라 장담하셨다 한다. 그런 어머님의 거센 추진력에 남편과 나는 물론 친정 부모님들까지 정신없이 그 물살에 휩쓸려 갔던 것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우리 부부를 데리고 신행을 다녀간 친정아버지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했다. 춘삼월에 첩첩산중, 말이 대구직할시지 그런 골짜기는 처음 봤다고, 요즘 세상에 아궁이 불 때서 밥 하는 집이 어디 있고, 그런 집에서 사 남 일 녀의 막내가 왜 시부모까지 모시고 살아야 하냐고 가슴을 쳤다고 했다. 지금이야 고층 아파트 밀림이 되어 사방으로 대로가 쭉 뻗어있지만 그때만 해도 웃돈을 더 줘도 택시들이 가기를 꺼리던 변두리였었다. 신행에서 돌아와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에 엄마는 다리를 뻗치고 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두 분이서 종일 울었다는 그날도 벌써 이십여 년이 지났다.

 

 쑥갓 위에 고기 한 점과 청량고추 한 조각을 얹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기도 전에 결혼을 했으므로, 나는 꿈같은 신혼은 아마도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꿈꾸는 나이였으므로 잠깐씩 비치는 햇살에도 까르르 나뭇잎처럼 웃을 수 있었다. 문을 열면 까꿍! 하고 앞을 막는 친구처럼 둘러선 돌담과 돌담 너머 언덕, 그리고 산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춘삼월에 눈이 하얗더라는 그 산이 바로 내가 날마다 보는 앞산 뒷 줄기와 이어진 청룡산이다. 되새김질을 하는 소와 아궁이 앞에 앉으면 슬금슬금 다가와 장난을 거는 송아지와 뱃속 아기의 발길질도 내 맘의 등불이 되어 주었었다. 그 새로운 환경을 익히느라 결혼을 하면 곧바로 장사를 시작하면 된다던 점포가 남편의 것이 아니란 것도, 남편이 늦도록 잠을 자고 종일 집 안에서 뒹굴어도 그것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었으므로 참이나 점심을 해서 머리에 이고 들에 나가는 일도 나에게는 나들이 같았다. 아버님은 가끔 당신보다 무거운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도 시원스럽게 패달을 밟아 시장엘 가셨고, 어머님은 채소를 팔고 돌아오는 빈 함지에 먹을 것을 사 와 펼쳐 놓곤 하셨다. 그러나 남편은 호기심 많은 아이가 처음 보는 물건을 찔러 보듯, 날 선 말들로 내 맘을 수없이 찔러 대었다.

 

 쌈장과 밥 한 숟가락을 얹어 쌈을 싸다.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가는 것이 결혼이라고 믿었으므로 처음에는 모든 걸 견딜 수 있었다. 남편은 술에 취해 돌아와 울분처럼 욕설을 했고, 욕을 해 반응이 없으면 문이나 가구를 부수었다. 그렇지 않으면 밖에서 싸움을 하고 돌아와 술이 깨면 가슴을 치며 후회 했다. 그 모든 것들이 부족한 사랑 때문일 것이라고, 사랑이 충만해지면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갑자기 낯선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체하듯 모든 것들이 숨 막히게 느껴질 무렵, 아들이 태어났다. 모든 아픔을 덮을 만큼 온 집안에 자랑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산천에도 꽃 피는 봄에 우리 부부는 백일 지난 아들을 업고 못 둑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아이는 등에 업혀 좋아했지만 그해 여름 나는 더위를 먹어 해골처럼 말랐었다. 그래도 저금통장에 제법 늘어난 숫자를 보며 그 겨울 아들의 우유 값은 걱정이 없겠다고 미소를 지었었다. 그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 술에 취한 남편은 하룻밤에 그 숫자를 마이너스로 만들었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맘 놓고 울 수도 없었다. 큰방에는 시부모님이 계시고 품에는 아들이 방긋거리며 옹알이를 했던 것이다. 결혼이란 내게 닥치는 모든 것들을 넓은 치마폭으로 감싸 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익히게 되었다.

 

 쌈을 씹어 삼키다.

 고통도 습관이 되면 편안한 옷처럼 길들여진다. 남편의 거듭되는 버릇도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될 무렵 나는 책방을 차렸다. 그동안 극단적인 생활에 익숙해지느라 외면했던 지적 갈증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밤낮 나는 책 속에 빠져 지냈다. 내가 책에 빠지는 만큼 남편의 버릇은 크게 날갯짓을 했고, 그때마다 가계의 숫자는 들어온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날아갔다. 그럴 때도 아들은 변함없이 내 품에서 재롱을 떨었고 남편이 원하던 딸이 태어나 또 방긋거렸다. 아이들은 모든 반찬들과 어울리는 밥처럼 내 마음을 든든하게 배불렸다. 다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한 많은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라고 믿었다. 남편이 자상하고 능력 있는 가장으로 나를 행복하게 한다 해도 아들딸이 많이 아프거나, 말썽을 부리거나, 꿈을 갖지 않는다면 더 큰 슬픔이리라. 남편이 주는 아픔은 내게서 끝날 아픔이니 얼마든지 참을 만 하다고 웃었다. 고통스럽다고 피하지 않고, 기쁘다고 가볍게 뛰지 않고, 순간순간 내게 오는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맘으로 감싸 안으면 그 속에 가정이라는 따스한 밥상이 차려지는 거였다.

 

 또, 쌈을 싸서 입에 넣다.

 늘 웃는다고 마음도 항상 웃음이었을 리 없다. 겨울 벌판 같은 마음은 늘 통곡의 강을 품고 있었다. 그랬음에도 남편과 나는 거의 다투지 않았다. 가해자이면서 늘 피해자처럼 할 말이 많은 남편의 잔소리는 거의 일방통행이었다. 함께 사는 시부모님과 아이들이 잔소리의 쌍방 통행을 제한한 것인지 모르겠다. 마음 내키는 대로라면 싸움이 아닌 날들이 몇 날이나 될까.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 나는 매운 세월을 씹듯 꼭꼭 쌈을 씹는다. 씁쓰레한 상추와 바람처럼 향긋한 쑥갓,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추와 부드러운 고기가 함께 씹힌다. 씹을수록 각각의 맛은 약해지고,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식욕을 한 눈금 높인다.

 

 아들과 딸이 자라면서 남편의 말도 조금씩 둥글어지고, 나의 스펀지 같은 맘은 조금씩 견고해지고, 아들과 딸의 또 다른 성격들이 남편과 나의 모난 구석들을 깎이게 했다. 남편은 벌지 않는 대신 씀씀이를 줄이고, 술과 난폭한 성격도 조금씩 줄여 갔다. 아픔이 많았던 만큼 상처를 쓰다듬는 손길도 멈추지를 않았다. 아이들은 그렇게 부모의 성격을 조금씩 섞어 놓는 조화를 부렸다.

 

 큼직한 쌈을 씹다.

 오랜만에 쌈을 먹으니 쌈 맛이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내가 철학적인 쌈의 맛을 알고 쌈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쌈을 좋아한 내 미각이 참으로 기특하게 느껴졌다. 다시 상추 두 잎을 손바닥에 사이가 뜨지 않게 잘 펴고, 쑥갓과 고기 한 점을 얹고, 고추와 쌈장을 얹고, 그 위에 밥 한 술을 얹어 잘 싼다. 큼직한 쌈을 입 안에 넣는다. 상추, 쑥갓, 고기, 청량고추가 밥과 쌈장이 섞이면서 매콤하고 달짝지근해진다.

 

 쌈 맛이 철학적인 것은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은 극단적이거나 개성이 강한 저마다의 사람들이 섞여 살면서 적당히 각이 깎이고 둥글어져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씁쓰름하고 풋내 나는 푸성귀로 각기 다른 맛을 가진 음식들을 싸서 먹는 쌈의 매력은 바로 어우러짐이다. 볼이 불룩하게 쌈을 씹던 남편이 내게 어서 먹으라는 손짓을 한다. 이십 년을 함께 살다 보니 적당히 무디어진 성격처럼 입맛도 닮는가 보다. 귀찮다고 쌈을 꺼리던 사람이다.

 

 부부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이 각기 다른 음식들을 싸서 먹는 쌈과 같다. 일방적이든, 상대적이든, 또 자신의 내면이든 서로 섞여 부딪치는 사이 조금씩 모난 성격들은 부드러워지고, 마음은 넓어지고, 정은 깊어져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닐까.

 

 ('수필세계' 200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