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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면 - 반숙자

Joyfule 2015. 8. 18. 10:29

 

[일상]외할머니 장례식에 다녀왔어요...

 

 사흘이면 - 반숙자

 

 

숫자에 둔감한 탓에 자주 실수를 한다. 오늘도 은행에 갔다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애를 먹고 전화 번호나 나이가 생각 안나 쩔쩔 매기도 한다. 고액권 수표에 동그라미 수를 헤려면 손가락에 침을 발라 적어도 두 번은 일십백천...을 해야 정확을 기할 수 있는 위인이다.


 그런 내가 요즘 사흘이라는 수치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사흘은 시간으로 따지면 72시간이고 분으로 따지면 4320분이다. 초로 따지면 더 하겠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사흘을 밤과 낮으로 갈라보면 2박 3일이다. 사흘 책을 안 읽으면 머리에 곰팡이가 쓰는 기간이고 제주도 신혼여행기간이 되기도 하고 사흘 굶어 담 아니 넘는 사람 없을 기간이다. 또한 청국장을 띄울 만한 시간이고 막 피어오르는 매화가 활짝 피는데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해마다 추석이 가까워 오면 전국이 벌초차량으로 혼잡을 이루고 도시에 사는 자식들을 불러 내리는 시골 부모들의 애탐과 바빠서 내려오기 어려운 자식들의 입장 또한 난처하게 된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여서 내려오는 아이들이 피곤해 하는 모습을 보면 어미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느 해에는 종친 스무 명이 넘게 하는 벌초꾼이 여섯명으로 줄어 하루 종일 고생을 하기도 했는데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은 공원묘지로 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도 매장의 풍습이 지배하고 있는 터여서 좁은 국토가 산소로 침식당한 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에서는 가족들의 상의 끝에 가족묘원으로 납골탑을 마련하였다. 완만한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종산 양지쪽에 아버님의 직계가족 22기가 들어갈 수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탑이다. 탑 뒤를 대리석 병풍으로 두를 수도 있는데 너무 삭막할 것 같아서 잔디와 나무를 심었다. 산자락이라 숲이 우거지고 앞은 훤히 트여 전망 또한 좋다. 탑신 가운데에 "바람의 노래"라는 비문을 새기고 상석과 비석을 세웠다.


 일을 마무리 짓고 해거름에 제물을 차려 제사를 올리는데 바람이 잠자는지 촛불 조용히 타오르고 사위가 고요하니 참 평화로웠다. 그 뒤로는 아이들도 집에 올적마다 소풍가듯 그리 가서 한나절을 쉬다 오고 나도 가끔 이웃집 가듯 들르고는 한다.

 

 그냥 편안해서 들르다가 어느 날 사흘이라는 시한에 생각이 머물렀다. 사실 납골탑을 만들 때 어머님은 반대를 하셨다. 죽는 거야 다 똑같이 죽는다지만 화장을 한다는 일이 두 번 죽음이라는 것이다.

 

 사람 목숨이 떨어지면 장례절차가 사흘이면 끝이 난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3일장을 치르는데 화장인 경우 그 사흘이면 이 세상에서 완전히 퇴장하는 것이다.

 

 화장이 아니고 매장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는 것이 철리라지만 남아 있는 유족으로서는 무덤이라는 상징물이나마 있으나 납골탑의 경우는 잿가루 뿐이니 허망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이 나이에도 사람이 여물지 않아 가끔 마음이 바람을 탄다. 시간이 약이라고 자고 나면 풀어질 줄 알았는데 한달 여가 지나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경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복잡한 요소가 작용을 해서 더 어려워지기도 하는데 그날도 머리를 식힐 겸 그리로 갔다.

 

 잔디밭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하늘을 보고 구름으로 집을 짓다가 내가 만일 오늘 세상을 떠난다면 내일 모래면 여기로 온다는데 생각이 멈췄다. 무엇을 가지고 올 것인가. 누구랑 같이 올 것인가, 애지중지하던 성경책인가, 저금통장인가. 열심히 쓴 수필집들인가, 그리운 사람들 이름인가.

 

 그뿐이 아니다. 내 육신 중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눈을 가지고 오겠는가, 맛있는 것을 탐내던 혀를 가지고 오겠는가. 달콤한 말 듣기를 좋아하던 귀일까, 힘든 일을 마다하던 손일까, 그러고 보니 내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또한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여기까지 같이 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습기가 올라오는지 등이 축축해졌다. 일어나서 탑신에 기대앉았다. 앞산 중치에서 새 한 마리가 솟아오르더니 하늘을 가로질러 마을 쪽으로 날아갔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어떠한 현상계도 내 것이 아니라면, 내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갖고자 하는 나는 진정 무엇인가, 하늘은 석양으로 물들고 있다.

 

 산 넘어 마을에서 저녁연기가 한 줄기 솟아올랐다. 옷에 묻은 마른풀을 털어내고 천천히 걸었다. 건너편 별장 집 거실에 불이 밝혀지고 개가 짖었다. 이 저녁 가족이 귀가하는 모양이다.

 

 사흘 뒤면 볼 수 없는 저 아름다운 노을빛, 저 다감한 개 짖는 소리, 만일 그대가 세상을 떠나 사흘 뒤엔 영영 볼 수 없다면, 당신을, 누구를,....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발걸음이 바빠졌다.

 

- <월간 좋은수필> 2015. 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