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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지옥생활

Joyfule 2019. 4. 26. 08:09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지옥생활


(눅16:19~31)

지난주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현재적인 삶이 미래의 삶을 결정한다는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의 부자의 지옥생활에 관하여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성도가 가는 곳은 아니지만, 우리 주위에 우리가 사랑하는 부모 형제 친지 이웃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살다가 갈 곳이 지옥이기 때문에...

지옥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뜨거운 열정과 함께 우리를 그곳에서 건져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거지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지만 부자는 장사되어 음부 고통 받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었을 때에 누가 장례를 치러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부자가 집의 하인들이 대충 땅에 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분명히 장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자의 장례는 화려하고 성대하게 치러졌을 것입니다.

부자에게는 다섯 형제들이 있었기에 수많은 조문객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조의를 표하고, 무덤에는 공덕을 기리는 비문까지 새긴 비석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영혼은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었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눅 16:23)“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이 부자의 죄는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벗이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부자였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도 부자였습니다.

왕이었던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도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솔로몬은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살았던 부자였고 날마다 즐거운 잔치로 세월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그러면 부자가 지옥으로 가게 된 죄는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자”라 이름의 뜻이 있었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부자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어도 그는 만족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나사로와 부자가 태어났을 때 모두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에 나사로에게는 하나님이 있었고, 부자에게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부자는 하나님 없이 만족하여 살았던 것입니다.

마치 눅 12장에 나오는 부자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눅 12:16-21)“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께 대하여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의 소욕을 채우며 살아가는 이 부자의 삶이 바로 눅 16장에 나오는 지옥에 떨어진 부자와 같은 삶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사람의 본분을 잊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편히 쉬고 먹고 즐거워하리라....

이것이 지옥 가는 죄였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자기의 부요함으로 인하여 걱정 근심을 별로 하지를 않습니다.

인생의 고통과 고난과 시련을 잘 알지 못하고 아주 편안히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 73:3-9)“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도 만족을 합니다.

(시 73:10-11)“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하도다”

이러한 죄의 결과 죽음과 심판과 형벌이 따르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 앞에 서도록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영은 육체가 없지만 부활할 때에는 몸을 다시금 덧입게 됩니다.

눅 16장에서 죽음 이후 나사로도 부활하였고, 부자도 부활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요 5:28-29)“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나사로는 생명의 부활로 부자는 심판의 부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눅 16:23-24)“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부활된 인격체이기 때문에 눈이 있고 손과 혀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부자가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자가 처음으로 울부짖은 말은 “목 마르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목이 말라본 적이 없었던 자였습니다.

인생들은 이 세상에서 목말라할 때에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요해도 인생들이 당하는 고통과 슬픔과 시련을 통해서 왜 인생에게 이러한 고통들이 왔는가?

또한 인생들에게 죽음이 임하는 것을 보면서 왜 죽음이 왔는가?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으며 누가 나를 세상에 보내 주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우주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가난한 심령이 되고 목마른 심령이 되었다면 지옥에서 목마르다고 하지 않을 텐데 이 부자는 세상에서는 목 말라본 적이 없어서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하여 결국은 지옥에서 목이 말라 큰 고통 하는 외침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치면 최고의 부자였던 사람은 아마 솔로몬왕일 것입니다.

그는 부자였지만 인생에 대하여

(전 1:2)“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는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다” 고 인생의 고통을 깨닫고 ...인생의 본분이

(전 12:13)“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고 증거 했던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의 삶에서 심령의 고통과 자기가 지은 죄악의 고통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하나님께 구원을 갈망했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시 42:1-3)“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이 시인은 사람들의 비웃음도 들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뻐하고 찬송을 드렸습니다.

(시 42:4-5)“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우리 모든 사람은 이렇듯 인생에게서 당하는 모든 시련의 근원을 찾고 이를 하나님을 통하여 위로를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도우심을 받을 때에 참된 삶의 가치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자이며 명예와 지식과 재물과 건강이 든든하여 그것으로 목마르지 않고 만족한다 해도... 하나님이 없는 것은 음부 곧 지옥에서 목말라 외치는 영원한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전에 우리의 목마름을 풀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야 합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7:37-38)“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는 반석이십니다. 그를 쳐서 흘러나온 물은 영생하도록 솟는 샘물입니다.

이 물을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구속은 우리에게 모든 갈증을 풀어주는 생명수입니다.


지옥은 물이 없는 구덩이입니다.

(슥 9:11)“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이곳에 있는 자들이 본래 우리 인생들이었습니다. 여기서 풀어 나온 것은 언약의 피 때문입니다.

지옥은 물 없는 구덩이이기에 부자는 음부에서 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에 지옥에서는 물을 한 방울도 얻을 수 없는 곳입니다.

지옥은 불과 유황이 타는 꺼지지 않는 못입니다.

영원히 타는 불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 33:14)“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모닥불처럼 쬐고 있는 것 아닙니다.

(사 47:14)“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치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더웁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만한 불도 아니니라”

(막 9:47-4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가엾은 부자는 물 한 모금이 없는 곳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아마 지옥이 이러한 것임을 알았다면 그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도록 미리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천국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그는 이 세상이 천국으로만 여기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요 3: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난 사람들은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였으나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사랑하고 섬깁니다.

그 나라를 마음속에 이루어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그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기뻐하며 찬양하며 주님의 품으로 받들려 가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는 육체를 따라 난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으로써 할례도 받았고, 절기도 지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아닙니다.


부자는 이 땅에서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거듭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옥에서 그의 눈이 열려 천국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에는 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눅 16:23)“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그 불쌍한 부자는 육신의 고통뿐 아니라 마음의 고통까지 더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곳인지, 얼마나 고통 받는 곳인지...

반대로 천국도 보고 그때서야 깨달았지만 그의 현실은 참담한 것뿐입니다. 그가 필요로 한 것은 물 한 방울이었습니다.

(눅 16:24)“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이 너무 부러웠겠지만 그러나 그는 물 한방울이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만이라도 서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부자는 물 한 방울이 필요했기 때문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물이 많을 때에는 물 한 대접이고 적을 때는 한 모금이지만 지옥에서는 한 방울도 없었기에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아마 천국을 보고, 지옥 생활과 비교해서 갈급함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모든 지옥에 들어간 사람들의 기도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있을 때에 갈급함으로 기도를 드렸다면 그는 생수의 강을 얻는 응답을 받았을 테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물을 구하는 이 사람의 기도는 아마 처음으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이 기도는 진실한 기도였고 간절한 기도였고 울부짖는 기도였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살아있을 때에 이러한 지옥에서 느끼는 것 같은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만이 아니라 천국에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있음도 보았을 것입니다.


지옥에서의 기도는 얼마나 애타며 열렬하며 간절한 것이지만 그의 기도는 응답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으십니다.

(잠 1:24-26)“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물을 청한 부자의 간구에 대하여 주님의 심판은 공의로우신 것입니다.

(눅 16:25)“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살았을 때에 이 세상 것으로 만족하고 위로를 받고 살았던 사람은 더 이상의 위로가 아니라 형벌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자들이 당한 모든 시련과 고난과 핍박과 환난은 주님의 영원한 위로를 받아 안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살후 1:6-7)“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영원한 안식과 기쁨의 곳이됩니다.

(고후 4: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롬 8: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나 부자와 같이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히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물 한 모금을 원하지만 그것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눅 16:26)“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죽음 이후의 천국과 지옥은 영원토록 분리된 곳이기 때문에 누구도 오고 갈 수 없습니다.

이를 통하여 죽음 이후에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면 그가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엉터리 교리는 얼마나 비 성경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큰 구렁이 끼어 있어 누구도 오고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부자는 그의 간구가 거절되자 두 번째로 간구를 합니다.

(눅 16:27-28)“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부자는 자기와 같은 죄악된 삶을 살았던 다섯의 형제를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를 합니다.

그를 사랑하여서 이기보다는 너+무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내가 지옥에 있으니까 고통 받는 곳으로 오지 말도록 간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간구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 아직 하나님을 영접치 않은 사람들은 분명 이 부자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당할 일들을 안다면 그들에게 지금 구원의 길을 나타내고 지옥에 가지 않도록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눅 16:29)“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구원의 길은 모세와 선지자를 통하여 듣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증거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은 그들이 기록한 글 곧 성경이 있습니다.

천국 가는 길은 오직 성경을 통하여 얼을 수 있습니다.

(요 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딤후 3:15)“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길이 있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인을 불러 초청을 하고 계십니다.

(행 10:43)“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라고 했을 때 부자는 다른 요구를 합니다.

(눅 16:30)“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이가 가서 전하면 믿을 것이다.

어떤 이적과 체험을 통해서는 믿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늘로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눅 16:31)“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곧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영원토록 끝이 없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우리는 그곳에 갈 수 밖에 없는 자들임에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은혜를 다시 생각하면서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해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을 건져내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글쓴이 / 뿌리깊은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