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천국과지옥

지옥의 묘사

Joyfule 2019. 4. 27. 08:34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  지옥의 묘사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로 된 용광로이며,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서 거기서 그 대상자들은

그들의 죄된 본성들과, 그들이 저지른 실질적인 죄들과, 그들에게 비추어졌으나 그들이

거절했던 영적인 빛의 양에 합당하게 그들의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받는다.

 

지옥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이 거두어진 곳이며, 그곳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무시무시하고,

타오르는 불로 제시되며, 인간은 성취되지 못한 욕망들과 희망들로 영원히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산다.

 

마태복음 13:47-50에서, 주 예수님께서 심판과 관련하여 한 우화를 말씀하신다.

49-50에서, 주님께서는 사악한 자들의 운명을 설명하신다: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중에서 악인들을 갈라내어 그들을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시니라(마13:49-50)

 

주 예수님의 이 말씀들을 묵상함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지옥이 불의 용광로로 묘사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느부갓네살 왕의 용광로는 일반적인 것보다 7배나 뜨거웠고 불타는 용광로(단3:23)로 묘사되었다.

침례 요한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 하였고, 계시록은 지옥을 유황으로 타오르는 불 호수

묘사하였다.

 

우리는 정말 이러한 단어들이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상상할 수 있는가?

당신의 온몸 마디마디가 동시에 불 속에 있다고 가정해보라,

그리하여 당신 신체의 모든 섬유들이 불태워지는 극렬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은 그러한 형벌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통곡하며 이를 갈게되리라

잃어버린 자들은 불꽃이 그들을 불사르고, 지속적으로 그들의 온 몸 마디마디를 태울 때 느끼는

가장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견뎌야만 하기에 통곡하며 이를 갈게될 것이다. 거기는 결코 위로가 없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지옥 불이 어떨지 생생한 언어로 기록한다:

여러분 중 일부는 불에 타는 빌딩을 보았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매우 크고 맹렬한 불 가운데 있다면, 그 화염들과 싸우고 있는

당신의 나약한 손을 여러분 스스로 상상해보라.

여러분은 맹렬한 불 가운데로 던져진 거미나 혹은 다른 시끄러운 벌레들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순간적으로 그것이 화염의 힘에 굴복하는 것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불을 향한 더이상의 투쟁도, 싸움도 없고, 열기에 맞선다거나,

혹은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고자 버둥거릴 힘도 없다; 다만 그것은 순식간에 뻗었다가 항복한다;

그리고 그 불이 그것을 사로잡고, 즉시 그것은 불 자체가 되어 버린다.

여러분이 예수님께로 회개하여 날아가지 않는다면, 바로 그 모습이 지옥에 있게될 당신의 모습이다.

지옥의 고통들을 감당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부추기고 할 수 있는한 자극시키는 것은,

마치 타오르는 용광로 속으로 막 던져질 한 벌레가 그 자신을 한껏 부풀리고 튼튼히 하며

그 화염과 싸울 태세를 갖추는 것과 같다.  


지옥은 또한 어두운 곳으로 묘사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깥 어두운데로 던져진 혼인예복을 입지 않은 손님에 관하여 말씀하신다.(마22:13)

유다는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칠흑 같은 어두움이 영원토록 예비되어(유13) 있다고 기록하였다.

크리스토퍼 러브는 그의 책 지옥의 공포에서 말한다:

 어둠은 무섭다 그리고 사람들은 빛에서 보다 어둠에서 더 두려움을 느끼기 쉽다:

지옥은 따라서 사람들의 심령을 공포에 떨게하기위해 너무나 무시무시한 표현

즉 단지 어두움이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제시된다.

 

지옥은 이사야 30:33에서 도벳과 비교된다.

도벳은 우상숭배하던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자녀들을 불가운데로 덤짐으로써 우상신 몰렉에게

그들을 희생물로 바치던 곳이었다.

밤낮 울부짖음과 고함소리가 그곳에서 들렸으며, 밤낮으로 아우성, 울부짖음,

그리고 통곡이 지옥에서 들린다. 이사야는 말한다,

 

불과 많은 나무로 된 더미가 있으니 주님의 호흡이 유황의 시내같이 그것에다 불을 붙이시리라

불타오르는 지옥이다.

 

하나님 자신이 지옥에서는 불이시라는 증거들이 성경에 들어있다.

히브리서 12:29절은 말씀하신다, 이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이니라

 

목사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관하여 선포할 때 지상에서 불신자들이 무지몽매하게 기

쁨으로 춤을 추지만,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그 사랑과 긍휼의 수혜자가 될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소멸하시는 불이 되실 것이다.

히브리서 10:30-31절은 경고한다:

 

이는 원수 갚는 일은 내게 속한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시고

또 다시 주님께서 주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그분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로다

 

죄인이여, 당신은 지옥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옥이실 것이며, 그분의 진노가 당신을 불사르고,

그분께서 존재하시는 동안 내내 당신에게 쏟아부어질 것이다.

 

누가 주님의 분노의 능력을 아나이까 주님의 두려우심은 주님의 진노와 같나이다(시90:11)

 

하나님 자신이 지옥에서는 불이실 것이기 때문에,

그 지옥에서 저주받는 자들의 공포를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가능한한 사역자들이 이 문제를 실제보다 이상으로 과장하지는 않는지,

가능한한 그것이 묘사된 것처럼 무시무시하지 않거나 공포스럽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리고 설교자들이 그에대한 묘사를 단순한 범위를 넘어서 곡해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지옥에 관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말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만 실제의 미약한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 중 하나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부자였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다(그의 이름은 나사로였다).

두 사람 모두 죽었다. 가난한 사람은 천사들에 이끌려 천국으로 갔고, 부자는 지옥으로 갔다.

그 부자는 그가 부자였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이 아니고, 그 가난한 자는 그가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이 대조를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으로 갔을 때 우

리의 상황들이 극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를 거칠게 다루시지 않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그렇게 대하지는 않으실 것이라 어리석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두 사람이 영원을 보내는 거주지는 그들이 지상에 있던 동안 하나님께대한

그들의 심령의 상태의 결과물이다. 나사로는 진실한 하나님의 신자였다. 부자는 아니었다.

 

성경이 부자와 그의 조건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우리는 심각하게 주시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지옥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23-24절은 우리에게 부자가 고통중에 있음을 알려준다.

고통중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고통은 몸의 고통과 영혼의 고통 모두를 의미한다.

우리가 보았듯이, 인간의 몸은 불 용광로에서 고통받을 것이다.

모든 신체의 지체들이 그 불의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극심한 위통을 겪은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지만, 지옥에서의 고통은 훨씬 극심할 것이다.

 암으로 인한 사망은 때때로 그 몸에 극렬한 고통을 야기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지옥에서의 고통은 훨씬 더 심하다.

만일 여러분의 몸이 각기 다른 많은 고통스런 질병으로 한꺼번에 고통받는다 해도,

당신은 지옥에서 저주받는 자들의 고통에 다가가는데 아직 한 걸음도 떼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양심 역시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양심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대로 영원히 죽지 않는 벌레이다(막9:48;사66:24)

부자는 너는 네 생전에 좋은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사람들은 극한의 고통으로 고통받을 것이지만,

그들은 또한 그들 자신의 기억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그들은 지옥에대한 설교와 그것을 조롱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회개하라는 경고를 들었거나 혹은 예수님을 구주로 진실로 받아들임 없이

그저 천국의 축복들만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구원에 부족하다고 들었으나 그들이

그 경고들에 귀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멀리서 천국의 영광들을 봄으로써 고통받을 것이고(부자가 그럴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영원동안 자신들이 저주받을 것임을 알고 고통받을 것이다.

그들은 성취되지 못한 욕망들과 채워지지 않을 바램들로 인해서 고통받을 것이다

(부자는 심지어 그의 혀를 식혀줄 물 한방울조차 얻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결코 지옥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고통받는다

(부자는 건너오고자 하여도 올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자기들 주변의 저주받은 자들의 울부짖음, 아우성 그리고 저주들로 인해서 고통받을 것이다.

사람이 지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들은 지옥의 고통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할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악한 자들이 받을 미래의 형벌에 관한 설교에서

 지옥에서 사람들은 단 한순간의 위안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옥에서 그들을 위로해줄 어떤 것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그곳에서 쉴 곳을 결고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작은 휴식을 맛볼 수 있거나 그들의 극한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경감시킬 수 있을,

다른 곳보다 조금 시원한 어떤 은밀한 구석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고통 뿐인 지옥의 어느 부분에서도 시원한 샘이나 개천을 찾아볼 수 없다;

결코, 그들의 혀를 시원하게해줄 물한방울도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에게 위로를 주거나

혹은 그들에게 조금의 선이라도 베풀 동료를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일분도 남아서 쉬고 한숨을 돌릴 장소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그들에게는 쉬는 낮도, 쉬는 밤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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