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사와 오벧에돔
김요한 선교사
엘리 때에 블레셋과 전투에서 빼앗긴 법궤가 블레셋이 감당할 수 없으므로
다시 돌아와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습니다.(삼 7:1-2)
다윗의 때가 되어 이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 오려고 정예병 3만을 동원하여
새 수레에 싣고 나곤의 타작마당을 지날 때에
소들이 뛰니 법궤가 흔들려 떨어질 것 같아 웃사가 법궤를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진노가 웃사에게 임해 그 자리에 죽고 말았습니다.(삼하 6:6-7)
그 일로 인해 다윗은 법궤 공포증이 일어나 법궤 운송을 포기하므로
그 법궤는 오벧에돔이란 무명인사의 집으로 가고 말았습니다.(삼하 6:9-10)
그런데 법궤가 버림받듯이 오벧에돔의 집에 간지 3개월 만에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소유에 복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오벧에돔은 여호와 법궤의 문지기가 되고(대상 15:24) 그
형제들과 자손들이 다윗 왕국에서 성전에서 일자리를 다 하나씩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쓰임 받았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벧에돔의 가문 전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복을 받았습니다.
웃사는 아비나답의 아들로 정식으로 법궤를 지키는 일에
인정을 받은 집안의 아들입니다.(삼상 7:1)
그리고 법궤 운반을 위한 마부의 일을 임명받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중책입니다.
그렇지만 군대를 동원해서 법궤를 운반하려는 다윗이나
수레에 실어 법궤를 옮기고자 하는 레위 인들이나 무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법궤는 레위 인들이 궤의 고리에 채를 꿰어 메도록 되어 있습니다.(출 27:14) 이
를 무시하고 법궤를 옮기다가 웃사가 죽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로 보건대 그 당시의 영적 상황이 얼마나 형편이 없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오벧에돔은 벌벌 떨면서 3개월을 법궤를 지키다 보니
하나님이 그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보면서 신학과정을 거쳐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목사나
신앙을 오랫동안 한 사람들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건 그럴 가능성일 뿐 반드시 그렇다는 등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인 받은 아비나답의 집안의 아들은 법궤를 불법으로 만지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아무 지식도 없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은 그 법궤로 인해 복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잃은 성경지식에 잡혀 있는 것을 봅니다.
웃사처럼...
나는 많이 알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웃사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몰라도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을 지켜내는 오벧에돔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