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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부스 - 구세군의 창설자

Joyfule 2006. 6. 10. 02:12


윌리엄 부스 - 구세군의 창설자 
해마다 연말이 되면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겨울이 왔음을 느끼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구세군 냄비... 
이 구세군을 처음 만든 사람을 알고 계신가요? 
바로 윌리엄 부스 목사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거리에는 우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함께 우시오. 배고픈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대의 주머니를 터시오. 
감옥에 죄인이 넘쳐납니다.
사랑의 손길을 펴시오.
구세군은 사회의 악과 싸우는 주님의 군대입니다.
희생이 없는 신앙생활은 짠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라고 
말하며 어려운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한 
윌리엄 부스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윌리엄 부스는 1829년 영국 노팅엄에서 태어났습니다. 
15세 때 신앙을 가지게 되어 1846년 나이 17세에 감리교 목사를 지원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인 어리다고도 볼 수 있는 나이에 
목사를 지원한 부스는 당시 의사에게서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병약한 몸으로 목회를 하면 1년 후 사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만 포기하십시오." 라고
그러나 부스는 순교한다는 각오로 복음을 증거했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구제사업을 펴는 가운데 무려 84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 의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의사를 버렸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했다. 
이 믿음이 나를 지켜주었다." 
그는 1861년 목사직을 사임하고, 65년부터는 런던의 빈민굴에서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1878년 설교자·지도자로서도 유명한 부인 캐서린 부스와
함께 구세군을 조직, 전도와 함께 여러 가지 사회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암흑의 영국에서:In Darkest England and the Way Out>(1890)라는 그의 저서는 
당시 빈민들의 실정과 그 구호책을 제창한 명저로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구세군은 그의 생존시에 영국을 비롯한 세계 58개국에 걸쳐 설립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구세군에 대해 알아볼까요?
1865년 그리스도교 전도회라는 명칭을 가지고 영국 서민층을 상대로 
동부지역 빈민가를 찾아가 노방 전도를 한데서 시작한 구세군은 
1878년 정식으로 구세군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William Booth는 감리교목사직을 사직하고, 
1865년부터 동부런던 기독교부흥회에서 기독교선교회(1870)를 거치면서 
1878년부터는 구세군(The Salvation Army)으로 명칭으로 변경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태세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구세군으로 그 명칭을 바꾼 후 그 조직이나 활동은 급속도로 활성화되어 갔습니다. 
구세군이 발전해 감에 따라 구세군에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하는 분류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기성 기독교인들과 구세군으로 인하여 손해 본 사람들 특별히 술장사,
유흥업소자들, 구세군이 들어가면 술꾼이 없어지고 장사가 안되어 
부정업자들이 망하는 경우가 빈번하면서 이들의 반대와 폭행과 핍박이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완고한 당국자들 경찰관, 재판관들의 부정부패로 구세군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 처리를 불리하고 부당한 판결을 내려 곤란케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구세군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중단시키지 않으시고 힘있고 전진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조직은 군대식 제도를 모방하였기 때문에 부스는 초대 대장이 되었고요.
구세군의 조직을 살펴보면 각 군국에는 사령관이 있고, 
지역사령부에는 지역사령관이 있습니다.
또 각 지방에는 소속된 영이 있어 담당 사관이 복음 선교와 예배, 
지역사회 봉사사업을 지도합니다. 
구세군은 국제규모의 복음전도와 각종 사회사업을 전개하여 세계 80개국 나라에 
1만 6000개의 전도 센터를 가지고 있으며, 
3000여개의 사회 복지 단체·기관·학교·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08년이고요. 
구세군 냄비는 연중행사로서 해마다 연말에 실시하는 자선 모금 운동입니다.
이 구세군 냄비의 시초가 된 것은 1894년에 난파선 생존자를 위한 모금에서 
한 구세군 여성 사관의 아이디어로 냄비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28년에 시작되어 매년 실시되고 있고요. 
붉은 세 다리 냄비걸이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 제복을 입은 
구세군 사관의 손 종소리는 이젠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 되었지요. 
현재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시·읍에서 실시되고 있는데, 
이 때 모금된 성금은 영세민 구호, 사회사업시설에 대한 원조, 
각종 이재민 구호, 신체장애자 구호 등에 쓰입니다.
평생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윌리엄 부스는 83세 때 
안질환으로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아들 브람웰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라고 말하자 
부스는 아들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네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뜻이로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부스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두 눈을 가진 상태에서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끝났다.
이제부터는 두 눈이 없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윌리엄 부스는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명을 당하고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새로운 봉사를 다짐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 것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단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들이 자신의 삶에 감사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가로막고 있을 뿐입니다. 
"역경은 희망에 의해서 극복된다."고 말했던 윌리엄 부스의 삶을 통해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보세요. 
자신의 삶에 감사하느냐,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며 
원망하고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느냐 하는 것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마음가짐이 우리의 삶을 
성공적이고 행복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 구세군 불우이웃 후원 사이트: http://salvationarmy.or.k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