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학 핸드북 - 유대인의 일생
1.6.1. 삶
탈무드는 모든 인간은 한 사람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한 생명을 없애는 것은 천하를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유대교의 613개의 율법에 따르면 살인, 우상숭배, 근친상간, 간음을 금지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다.
유대교는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계명을 어기는 것도 용납한다. 예컨데, 속죄일인 욤 키푸르 때는 모두 금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병 들어 금식을 하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그는 욤 키푸르임에도 불구하고 금식을 하지 않는다.
의사는 안식일이라도 응급환자를 치료해 주어야 한다. 그 치료 행위가 비록 수 많은 안식일 규정을 범하게 하더라도... 산모의 목숨이 위태로우면 태아의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 태어나지 않은 자의 생명을 살아 있는 인간의 생명 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무한한 가치가 있으므로 죽음으로 갈 수 있는 어떤 행동도 금지된다.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안락사를 시키거나 자살이나 자살 방조나 이를 돕는 행위 등은 일체 금지된다.
탈무드는 죽음을 촉진시키는 일이라면 죽어가는 사람의 팔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이 절박하고 기정 사실화 되고 환자가 심각한 고통을 느껴 생명의 연장이 무의미하게 여겨지면 유대 율법은 인공적인 장치들을 제거 해도 좋다고 한다.
1.6.2. 죽음
유대교에서 죽음은 비극이 아니다. 요절하거나 비통하게 죽더라도 그것은 결코 비극이 아니다. 죽음은 자연적인 현상이며 또한 과정일 따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은 삶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그리고 유대교는 내생(來生)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을 제공하고 있다. 내생에서는 현재 삶의 질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카발라에 따르면, 죽기 30일 전에 사람의 영혼의 한 부분인 ‘네쉬마’는 사람을 떠난다. 임종을 기다리는 동안 네쉬마는 하늘의 심판대에 서서 자신이 깃들었던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하나님께 고(告)한다. 이때 육체는 심각한 고통에 빠진다.
심판의 결과가 좋게 나오면 사람의 전신에서 땀이 나며 고통이 줄어 들고 네쉬마가 돌아와 그를 비추게 된다. 임종을 하면 네쉬마와 네페쉬는 몸으로부터 분리되고 루아흐는 육체와 함께 남는다. 유대인들이 죽은 자를 애도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나 증오 때문이 아니다. 애도하는 목적은 죽은 자에 대한 존경 때문이며(카보드 하 메트), 죽은 자를 사랑했던 산 자들을 위로하기 위함(니훔 아벨림)이다.
1.6.3. 시신 다루기
사람이 죽으면 눈을 감긴 후 몸을 바닥에 눕히고 천으로 덮는다. 그리고 초를 켠다. 시체는 죽은 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매장할 때까지 홀로 두지 않는다. 시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쇼므림'이라 하는데 ‘지키는 자들’이란 뜻이다. 쇼므림은 시체 옆에서 먹거나 마시거나 율법을 논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죽은 자는 그런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 공동체는 장례 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를 '헤브라 카디솨’ 즉 ‘거룩한 위원회’라고 한다. 위원들은 모두 자원 봉사자들로 존경을 받는다. 왜냐하면 보상 받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어찌 보상을 하겠는가? 검시는 시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여겨 기피된다. 하지만 생명을 구하는 일이거나 현지 법이 그것을 요구하면 검시를 허락한다. 검시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실시한다. 시신이 있는 곳에 들어 가는 것은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코헨, 즉 제사장은 시신이 있는 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시신이 있는 곳에 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 갈 때 손을 씻어야 한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지 위생적인 것은 아니다. 시신을 만졌더라도 손만 씻으면 된다. 매장을 위해서 시신은 깨끗한 무명 천으로 몸을 감아 싼다. 유대 현자들은 시신에 입히는 옷이나 관은 단순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과 차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신을 탈릿이나 찌찌트로 감는 것은 옳지 않다. 시신은 존중 되므로 장기나 혈관 등을 추출할 수 없지만 기증은 가능하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한다.
시신은 화장하지 말고 흙에 묻어야 한다. 관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관을 사용할 때는 드릴로 구멍을 뚫어 시신을 흙과 접촉 시킨다. 관을 열어 놓는 행위는 금한다. 원수에게 그 죽음을 보여 모독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석을 세워서 죽은 자가 기억 되게 한다. 미리 비석을 세워 베일을 씌우거나 애도 후에 비석을 세우기도 한다. 애도자는 무덤에 돌을 하나씩 올려 놓아 다녀 간 것을 기념한다.
1.6.4. 애도 (哀悼)
유대인의 애도는 슬픔이 삭혀 들 때 까지 일정 기간 계속한다. 애도 기간은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는 시간이다. 그럼으로써 애도자들이 자연스럽게 정상 생활로 복귀하도록 돕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 즉 부모나 형제 자매 배우자 또는 자식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옷을 눈물로 적시며 슬픔을 나타낸다. 부모가 죽었으면 심장 부분을 적시고 다른 사람의 경우는 가슴을 적신다. 이 행위를 '케리야'라 하는데 ‘눈물을 흘리다’라는 의미다. 애도자는 하나님께서 참된 심판주이심을 찬양하고 그가 죽은 자의 목숨을 취하셨다고 말한다. 죽음부터 매장까지 애도자는 애도에만 전념한다. 이 기간을 '아니누트'라 한다. 이때 애도자는 "~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장례가 우선 순위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은 대개 하루나 이틀인데 유대교는 신속한 매장을 권한다.
아니누트 동안 죽은 자의 가족들은 홀로 고통을 견뎌야 한다. 이 기간에 조문은 없다. 매장 후에는 가까운 친척 친구 이웃이 애도자를 위해 첫번째 식사를 준비한다. 이것이 '세우다트 하브라아'로 '고통의 식사'란 뜻이다. 이 식사에서 생명을 상징하는 계란과 빵을 먹는다. 이 식사는 죽은 자의 가족들만 위한 것이다. 이후에 조문이 허락되고 문상을 받는다. 아니누트가 끝나면 7일 동안 애도 기간을 갖는다. 이를 '쉬바'라 한다.
쉬바에는 죽은 자의 부모, 자식, 형제 자매, 배우자가 참여한다. 죽은 자의 집에 모여 이것을 하는 것이다. 쉬바는 매장한 날 시작해서 일곱번째 날 아침까지 계속한다. 애도자들은 낮은 걸상이나 마루에 앉는다.
가죽 구두는 신지 않으며 면도나 이발을 하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으며 즐거움이 되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
즉, 목욕이나 성 관계나 새 옷을 입거나 하지 않는다. 토라 공부를 하지는 않지만 애도나 슬픔에 관련한 토라의 구절들은 읽어도 된다. 애도자들은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또는 장례식 때 찢었던 옷을 입으며 집안의 모든 거울을 보자기로 가린다. 쉬바 때는 친구나 이웃이나 친지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 수도 있다. 카발라에 따르면, 시신이 매장된 첫 7일 동안 네페쉬는 울면서 무덤과 집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다. 7일째 되는 날 육체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네페쉬는 세상으로부터 풀려 난다.
쉬바 기간에 안식일이 오면 그 안식일 만큼은 애도의 날이 아니다. 만약 이 기간에 축제가 있으면 애도는 끝난다. 매장이 축제 기간에 있으면 애도는 축제가 끝날 때까지 연기된다. 쉬바 다음에는 '쉴로쉼'이 있다. 서른이란 뜻인데 매장 후 서른 번째 날이 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때 애도자들은 어떤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으며 축하연이나 극장이나 공연장에 가지 않는다. 매장부터 열 한 달 동안 죽은 자의 아들은 매일 ‘애도자의 카디쉬’를 읽어야 한다. 이 카디쉬를 읽으면서 죽은 자가 좋은 곳에 가도록 기도한다. 유대인들은 죽음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발라의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네페쉬는 세상으로부터 해방되기까지 열 두 달 동안 몸과 함께 남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네쉬마는 칠 일 동안 남고, 네페쉬는 열 두 달 동안 남는다고 한다. 칠 일 또는 일 년이 지나면 그때까지 무덤 위에 서서 네페쉬를 보호하고 있던 토라는 네페쉬와 함께 하늘로 올라 간다.
토라는 네페쉬를 위해 길을 치우며 앞장 서 나아가 막벨라 굴에 이른다. 그리고 무덤으로 돌아와 육체가 부활하는 날까지 그곳에 머문다. 네페쉬는 에덴 동산으로 간다. 거기서 가장 먼저 손에 불칼을 들고 있는 케루빔과 마주 친다. 네페쉬가 에덴 동산에 들어갈 자격이 있으면 케루빔은 들어 가라고 한다.
의롭게 살지 못한 사람의 네페쉬는 게힌놈에 던져 진다. 그리고 두마라고 하는 게힌놈의 왕자에 의해 지옥의 심장부로 끌려가 사방이 불타는 곳에 갇힌다. 그곳에서 부활을 기다리는 것이다. 아벨루트의 기간이 끝나면 가족은 애도하지 않는다. 다만 자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 매년 죽은 날에 알리야흐를 읽고 24시간 촛불을 켜둔다. 욤 키푸르, 쉐미니 아쩨레트, 유월절 마지막 날, 샤브오트 때는 회당에서 하프타라를 읽은 후에 가까운 친지들이 애도자의 기도문을 읽는다. 이찌코르(그가 기억되기를…)를 읽는 것이다.
조문객은 애도자가 먼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서 애도자가 죽은 자에 대한 생각만 하도록 돕는다. 조문객은 죽은 자를 칭찬할 수는 있다. 상가(喪家)를 떠날 때 조문객은 "우리 주님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을 위해 애도하는 모든 자들과 함께 당신을 위로할 겁니다"라고 인사한다.
1.6.5. 카디쉬
‘카디쉬’는 애도자들의 기도를 말한다. 이 기도는 "그의 위대하신 이름이 그가 뜻대로 창조하신 이 세계에서 뛰어나며 거룩하기를 바랍니다. 그의 왕 되심이 당신의 살아가는 날 삶 속에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애도자의 기도는 ‘엘 몰라이 라카밈’이다.
카디쉬가 애도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의 죽음과 같이 큰 슬픔을 겪으면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있다. 그래서 애도자들로 하여금 하루에 한번씩 민얀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하시다”고 하는 것이다.왜 11개월 동안인가?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기 전에 자신을 정결케 할 시간이 필요하다. 정결에 필요한 시간이 12개월이나 되면 악한 사람이었음을 말한다. 그래서 11개월만 카디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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