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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학 핸드북 - 제3장 랍비유대교

Joyfule 2013. 11. 18. 08:17

 

 

 

유대학 핸드북 - 제3장 랍비유대교

 

 

3.13.     랍비 유대교 예전

 

3.13.1. 토라 읽기

 

랍비 유대교의 회당에서는 매주 토라의 한대목을 읽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노래를 부른다고 할 수 있다. 토라의 한 구절을 ‘파르샤트’라 한다. 첫번째 파르샤트를 ‘파라샤트 베레이쉬트’라고 하는데 창세기 처음부터 노아 이야기까지를 다루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세 5경을 모두 54개의 파라샤오트로 나누는데 이것은 윤년을 감안해서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대인들은 매년 회당 예전을 통해서 모세5경을 한번 읽게 된다. 윤년이 아닌 경우에는 50주인데 이 경우에는 짧은 파르샤를 두개 읽는 식으로 조정된다.

토라의 마지막 부분을 읽게 될 때를 명절의 하나로 지키고 있는데 이날을 ‘심크하트 토라(율법을 즐거워 한다란 의미)’라고 부른다. 심크하트 토라는 유대 신년인 로쉬 하샤나로부터 몇 주간 뒤에 온다. 토라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나면 즉시 창세기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토라 읽기를 끝내기란 유대인들 사전(死前)에는 없는 것이란 의미이다 .

회당 예전에서 주간 파르샤트는 ‘하프타라’라고 하는 예언서의 한 대목을 읽고 나서 읽는다. 하프타라는 ‘한 부분을 끝내기’란 뜻이다. 대개 하프타라는 성경의 한 장(章)보다 길지 않다. 그리고 그 주간에 읽는 토라의 대목과 내용적으로 관련이 있다. 메시아닉 쥬 랍비들은 토라 파라샤트에 맞추어 신약성경의 구절들을 읽을 수 있게 파르쉬요트 표를 만들었다.

토라와 하프타라 읽기는 거창한 예식으로 장식된다. 토라는 그것을 두는 칸막이 벽, 즉 비마에 가져 가기 전에 회당 안을 한바퀴 돌며 행진을 한다. 토라 두루마리는 한 주간 읽기에 적당하도록 분책되어 있다. 토라가 행진을 하면 회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일어 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회당 안에 있는 이방인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

누구든지 토라를 읽기에 적절한 사람이라면 토라의 대목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을 ‘알리야(올라감)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첫번째 알리야는 코헨 즉 제사장이 하고, 두번째는 레위인이 한다. 그리고 중요한 일로 축하 받아야 할 사람이 맨 마지막에 알리야를 한다. 예를 들면 혼인을 했다거나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마지막 알리야에는 축복의 구절이 들어 간다. 마지막 알리야를 행하는 사람을 ‘마프티르’라고 부른다. 그 의미는 ‘끝내는 사람’이다. 유대의 성년식 즉 ‘바 미쯔바’를 거행했으면 성년이 되는 남자가 첫번째 알리야흐를 맡는 경우도 있다.

랍비 유대교에서는 토라를 주간 단위로 읽을 수 있도록 모세 5경을 54개 파라샤트로 쪼개 놓았다. 이것을 보통 ‘쿠마쉬’라 한다. 쿠마쉬는 모세 오경이 다섯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쿠마쉬는 결국 주간별로 읽는 파르쉬요트와 거기에 삽입하는 하프타라를 함께 일컫는 말이 된다. 본래 유대인들은 모세 5경 즉 토라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으로 헬라인들이 유대 땅에 들어 오게 되자 헬라인들은 유대인들이 토라 읽는 것을 금했다. 그래서 유대인은 파라샤트 대용으로 하프타라를 생각해 낸 것이다. 

 

3.13.2. 파르쉬요트

 

다음은 가장 보편적인 파르쉬요트이다. 장 절 수는 히브리어 성경에 따랐다. 파르쉬요트에 신약성경의 구절을 붙였는데 일부 메시아닉 쥬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브리트 하다샤는 신약성경을 히브리어로 직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구절은 사용자가 적합하게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토라 파라샤트는 수 천 년 전통을 지닌 것으로 절대적이다. 어떤 히브리어 성경은 토라 부분이 파라샤트로 구분되어 있다. 영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파라샤트의 제목 때문이다. 유대인의 달력에는 파라샤트의 영어 제목이 토요일 칸마다 기록되어 있다. 파르쉬요트의 자세한 내용은 이 홈페이지의 스크립쳐 싸이트를 보라.

 

3.13.3. 특별 파르쉬요트

각종 절기나 특별 샤밭에 추가해서 읽는 것이다. 내용 생략

 

3.13.4. 기도문

 

랍비 유대교는 하루에 세번씩 ‘다벤,’ 즉 기도를 하라고 한다. 저녁기도를 ‘마이아리브’라 하고, 아침기도를 ‘샤카리트’라 하며, 오후기도를 ‘민하’라 한다. 매일의 기도를 모아 만든 책을 ‘시두르’라고 부른다. 시두르는 ‘차례’라는 뜻인데 순서에 따라 기도문이 적혀 있다. 유대교에서 가장 오래된 기도문은 ‘쉐마’이다. 이것은 신명기 6장 4-9절, 11장 13-21절, 민수기 15장 37-41절을 말한다. 그리고 가장 앞 부분에는 “네가 눕든지 일어서든지”라는 말이 있다. 고대부터 이 쉐마의 기도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번씩 해 왔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기도문은 바벨론 포로기에 생겨 났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잡혀 가서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자 희생 제물 대신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호세아가 말한 것처럼 “황소 대신 우리의 입술을 제물로 드립니다 바로 이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기도를 하루에 세 번씩 했는데 매일 세번씩 제물을 바쳐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샤밭이나 특정한 절기의 날들에는 또 다른 내용의 기도를 했는데 이것도 성전에서 드리는 또 다른 제사와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또 다른 기도는 바벨론으로 잡혀 가기 전부터 실천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난 후에도 이런 기도는 계속되었다. 주전 5세기, 한 회의에서 유대교의 기본적인 기도문이 채택되었다. 이것이 ‘쉬모네 에스레이’이다. ‘18’이란 의미인데 이것은 기도에 포함되어 있는 열 여덟가지 복을 일컫는 것이다. 쉬모네 에스레이는 아미다흐(일어섬, 기도할 때 일어서므로)나 테필라흐(기도, 유대인들의 모든 기도의 본질로서)와 관련하고 예전에서 기본이 된다.

쉬모네에스레이는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로, 모두 세가지다. 둘째는 용서와 구원과 건강과 재물과 적절한 비와 흩어진 자들을 모아달라고 간구하는 것인데 모두 열 세가지이다. 셋째는 감사와 최후에 관한 기도로 모두 세가지다. 그런데 계산해 보면 18가지가 아니라 19가지가 된다. 그 이유는 주후 2세기에 “이단자들을 물리쳐 달라”는 기도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본래의 쉬모네에스레이, 즉 18개의 기도 내용만 싣는다.

 

1. 우리의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신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당신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크시고 전능하시고 두려우신 분입니다. 당신은 자비와 긍휼이 한없으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최고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우리 조상들의 행위를 기억하시며 그들의 자손들과 자손들을 위해서 구세주를 보내실 것입니다. 왕이시며, 돕는이시며, 구세주이시며, 보호자이신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당신은 아브라함의 주님이셨고 또한 보호자이셨습니다.

 

2. 오 주님, 당신의 전능하심은 영원합니다. 당신은 구원에 능하십니다. 큰 자비로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바람을 만들어 불게 하시고 비를 내리게 하시며 사랑으로 산 것들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당신은 타락한 자들을 도와주시고 아픈 자를 낫게 하시며 잡힌 자들을 자유케 하시고 죽은 자들의 신앙도 지켜 주십니다. 왕이신 당신처럼 전능하여 죽음을 주고 또한 생명을 주는 다른 존재는 없습니다.

 

3. 당신은 거룩하시고 당신의 이름도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당신을 매일 찬양합니다.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이시며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4. 당신은 우리가 사람에 대해 알기를 원하시며 당신은 우리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십니다. 당신 자신으로부터 오는 지식과 이해와 지각을 우리로 하여금 좋아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지식을 주시는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5.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에게 오십시요. 그리하여 우리로 당신의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당신께 다가가 당신을 예배하게 하시고 완전한 회개로 당신 앞에 서게 하소서.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6.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요. 우리는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의 왕이시여,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요. 우리는 당신께서 세우신 질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너그러운 분이시며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은 우리를 넘치도록 용서해 주시는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7. 우리가 고통 가운데서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보십시요.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속히 구원해 주십시요. 당신은 전능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이스라엘, 당신의 백성의 구원자이신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8. 주님, 우리를 치료해 주십시요. 우리는 치료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요.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모든 질병을 완전하게 치료해 주십시요. 당신은 왕이시며 신실하고 자비로운 의사이십니다. 당신의 백성 가운데 아픈자들을 치료하시는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9. 우리를 위해 올해도 복을 주십시요. 주님, 우리의 하나님. 금년에도 이슬과 비로 이 땅을 축복하셔서 많은 소출이 있게 하십시요. 당신의 선하심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시고 이 해도 풍년이 들게 하소서. 연대를 축복하시는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10. 우리의 자유를 선포하기 위해서 큰 나팔을 부십시요. 우리가 흩어져 있습니다. 우리를 모아 주십시요. 우리로 하여금 세계 각지로부터 모이게 하십시요. 흩어진 당신의 백성을 모우시는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11.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에게 사사들을 보내주십시요. 처음부터 우리에게 조언자들을 주십시요.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슬픔과 한숨을 떨쳐 버리게 해 주십시요. 당신 홀로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요. 사랑과 자비의 주님. 심판날 우리를 변호해 주십시요. 정의와 심판의 왕이신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12. 정의와 거룩함으로 당신의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무장시켜 주십시요.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끊임없이 주십시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당신의 백성이 되는 사람들이 많게 해 주십시요.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신실한 자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십시요. 이런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항상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요. 당신을 믿습니다. 의로운 자들을 도우시고 지키시는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13.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는 마음으로 새예루살렘에 가게 하십시요. 당신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곳에서 살게 하십시요. 우리의 시대에 새예루살렘을 건설해 주십시요. 다윗의 왕가 즉 예수님 안에서 그것이 견고하게 그리고 빨리 세워지게 하십시요. 새예루살렘을 건설하시는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14. 당신의 종 다윗의 자손, 즉 예수님이 속히 번성케 하십시요. 당신 힘으로 그를 들어 세워 주십시요.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번성케 하시는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15.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주십시요.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의 기도를 자비와 사랑으로 받아 주소서. 당신은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6. 오, 주님. 우리의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시온의 성전에서 당신을 예배할 수 있게 해주십시요. 우리의 제물을 받아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십시요. 우리가 당신께서 즐겨 받으시는 당신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눈이 당신께서 시온에 오시는 것을 보길 원합니다. 시온에 임재하시는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17.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주님이 되시는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은 우리 삶의 힘이시며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우리는 모든 세대에 걸쳐 당신의 능력있는 손을 의지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당신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갑니다. 당신께서 만드시는 기적이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행위와 선하신 능력이 저녁에도 아침에도 오후에도 항상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당신의 자비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마음이 따뜻한 분입니다. 당신의 친절한 행위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당신께 큰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 오 우리의 왕이시여, 이 모든 것 때문에 당신의 이름이 항상 찬양받으십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히 당신께 감사하고 진실로 당신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시며 도움이십니다. 선하심이 그 이름이신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당신께 감사하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18. 평화, 복지, 축복, 은혜, 친절을 이루십시요. 자비를 베푸십시요. 당신의 임재의 빛으로 이 백성을 격려해 주십시요. 말씀으로, 사랑으로, 정의로, 복으로, 회개로, 생명으로, 그리고 평화로 당신의 임재를 우리에게 알려 주십시요. 당신의 평화로 당신의 백성을 항상 그리고 매시간 복주시는 것은 당신의 선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평화로 백성을 지키시는 주님. 당신께 복이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기도는 토라와 예언서를 읽는 것이다. 토라는 54개의 대목으로 나눌 수 있다. 이 한 대목을 한 주일에 읽고 공부하는 것이다. 앞 절의 파르시요트를 참고하라. 쉬모네에스레이와 파르시요트는 공중기도의 핵심이다. 안식일 아침 예배에서 읽는 아주 긴 아침 기도가 있다. 이 기도를 회당이 아니라 집에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하여 그 날 할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기도에 ‘페수케이 디찜라’가 있는데 시편과 찬양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 중요한 것은 ‘카디쉬’인데 아람어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원하셨던 대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이 세상 안에서 존귀하고 거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빨리 지나가는 인생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시길 바랍니다. 모든 가족들이 이 세상에 사는 이 짧은 시간 동안 하나님이 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위대한 이름이 영원히 복을 받으시옵소서. 복되신 이름, 찬양받으실 이름, 영광받으실 이름, 초월하시는 이름, 전능하신 이름...”

예배에서 사용하는 기도문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생겨난 것들이 많아서 다양하다. 사회자가 탄식을 하면 사람들은 그에게 응답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것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카디쉬’를 탄식하는 자의 기도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중요한 기도는 ‘알레이누’다. 이 기도는 예배가 끝날 즈음에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모든 것의 주님되시는 분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를 다른 민족처럼 창조하지 않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우리 주님이시요 하나님이신 분에게 둔다. 우리는 곧 그 분의 찬란한 모습을 볼 것이다. 그 날에 주님은 오직 한 분으로, 그 이름은 오직 하나로 될 것이다.” 유월절에는 시편 113-118편을 읽기도 한다. 이를 ‘할렐’이라고 한다.

 

3.13.5. 예배의 순서들

 

다음은 매일 예배 순서이다. 각 파벌 나름의 예배 순서가  많이 있지만 여기에 적은 것들은 모범적인 것이다.

1. 저녁 예배 (마이아리브): 쉐마와 그 축복과 관계된 구절들, 쉬모네 에스레이, 알레이누.

2. 아침 예배 (솨카리트): 아침 축복, 페수케이 디찜라, 쉐마와 그 축복들과 관련 구절들, 쉬모네 이스레이, 할렐 (적당한 경우에), 토라 읽기 (월요일, 목요일, 안식일과 절기에), 알레이누, 아쉬레이(시 145편), 다른 끝내기 기도들과 시편과 찬송들(안식일과 절기에는 하지 않는다. 이런 날들 대신 무사프의 끝에는 한다).

3. 추가 예배 (무사프) (안식일, 절기의 솨카리트 후에 한다.): 쉬모네에스레이, 알레이누와 다른 끝내는 기도들, 시편과 찬송들

4. 오후 예배 (민하): 아쉬레이 (시 145편), 쉬모네에스레이, 알레이누

이상은 아쉬케나짐 예배의 기본이다. 세파르딤은 구조가 비슷하긴 해도 다른 음악을 사용하고 시편이나 찬송이나 기도는 다른 것들을 선택한다.

 

3.13.6. 변형들

 

위에 소개한 것들은 정통파의 기도문이다. 개혁파의 기도문은 짧지만 기본 내용이나 기본 구조는 같다. 어떤 파의 기도문은 훨씬 더 짧고 내용도 중요한 단어들이 바뀌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쉬모네 에스레이의 한 축복문이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로 되어 있는데 이것 대신 “모두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고백 한다. 보수파의 기도문은 내용이 조금 다르다.

예배 방법에 있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1) 정통파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 떨어져 앉는다. 개혁파와 보수파는 함께 앉는다. 2) 정통파와 보수파의 대부분은 모든 예식을 히브리어로 진행한다. 개혁파는 히브리어를 점점 많이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현지어를 사용한다. 3) 정통파는 예배를 인도하는 자가 청중 쪽에 서고, 기도도 청중 쪽에 서서 한다. 보수파나 개혁파는 예배를 인도하는 자가 청중을 바라본다. 4) 보수파와 개혁파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한다. 책을 볼 때 같이 보고, 같은 시각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정통파는 자유롭게 행동한다.

 

3.13.7. 시두르

 

‘시두르’를 알기 위해서는 시두르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정통파 및 보수파 회당들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행하는 시두르의 4가지 기도회 즉 샤카리트, 무사프, 민하흐, 마이아리브에 사용하는 기도들은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있다. 로쉬 하샤나와 욤 키푸르 때는 ‘마쪼르’라고 하는 별도의 시두르가 있다. 대개 시두르에서는 인도자들이 샤밭이나, 일하지 않는 절기나, 성경이 말하는 절기 즉 콜 하 모에드나, 유대력에 따른 달의 첫날인 로쉬 호데쉬 때에 그 나름의 성격에 따라 나름의 기도문을 선택하여 읽는다. 쉬모네 에스레이(아미다흐)의 경우에는 시작할 때 청중은 모두 일어서서 조용히 기도문을 읽는다. 케두샤 축복이나 제사장의 축복은 없다. 쉬모네 에스레이는 긴 기도로 5분 이상 걸리며 끝나는 것도 일정치 않다. 쉬모네 에스레이는 마이아리브(저녁예배)에서 반복하여 실행하지 않는다.

 

3.13.8. 말해야 할 것과 행동해야 할 것

 

‘아멘’ 하기: 누가 축복을 하면 “아멘!”이라고 응답해야 한다. 아멘과 비슷한 것이 ‘딛토’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바룩 아타...”라고 기도하면 당장 “아멘”이라고 응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아멘은 말끝에 놓으면 된다. 스스로 뭔가 말하고 나서 ‘딛토’라고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 아멘이라고 말해야 하는 몇가지 경우가 더 있다. 인도자가 “비므루 아멘 (아멘이라고 합시다)”라고 하면 비므루가 나올 때 아멘을 생각했다가 인도자와 함께 “아멘!”해야 한다. 카디쉬 기도에서 이런 일은 여러 번 있다. 카디쉬에서 아멘을 한번 더 해야 될 때가 있는데, “쉬메이 라바흐”가 끝나고 그 다음 순서의 첫 부분이다.

 

3.13.9. 기도의 다른 응답들

 

많은 경우에 어떤 사람이 “바루크 아타 아도쉠”이라고 말하면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바루크 후 우바루크 쉐모”라 한다. 이것은 아주 빠르게 발음되어 “바룩 쉐모”라고 들릴 정도다. 아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카디쉬 기도에는 회중의 응답이 있다. “아멘”이라고도 하고 “비므루 아멘”이라고도 하며 “위헤이 쉬메이 라바 미브라카 랄람 우랄메이 알마야 (그의 큰 이름이 영원히 복되소서) ”라고도 한다. 인도자가 “브리크 후 (그가 복되시다)”라고 말하면 회중은 “쉬메이 드쿠데샤”라고 한다. “보루쿠 에뜨 아도쉠 하 미보라크(복되신 분 주님이시여)”라고 말하면 회중은 “바루크 하 미로라크 레올람 바에드(복되신 주여, 영원 무궁히 복되신 분이여)”라고 응답한다. 이 모두 토라 특별히 쉐마를 읽을 때 한다.

쉬모네에스레이를 할 때 인도자가 “주께서 당신들을 복주시고 당신들을 지키시고, 주께서 당신들을 도우시고 영화롭게 하시고, 주께서 당신들을 도우시고 당신들에게 평화주시기를...”이라고 인도자가 축복 하면 회중은 매 번 “카인 여헤 라트쫀 (그렇게 되기를)”이라고 응답한다.

일어서기: 두루마리 캐비넷이 열릴 때, 토라 두루마리가 예배실 안을 돌 때, 쉬모네에스레를 기도하는 동안, 예배 끝 무렵 알레이누 기도 때에 모든 회중은 일어 선다. 정통파 회당에서는 카디쉬가 진행될 때 모두 일어선다. 슬퍼하는 자들만 일어서는 통곡의 카디쉬에서는 예외로 일어 나야 할 사람들만 일어 선다. 기도는 카디쉬의 핵심 요소이며 “이트 가달 비위트카다쉬 쉬메이 랍바 (그의 위대하신 이름이 뛰어나시며 거룩해지기를)”란 어귀로 시작한다. 비정통파 회당에서는 회중들이 계속 앉아서 예배를 진행하며 통곡의 카디쉬에서만 회중이 일어 서기도 한다.

절하기: 유대교 예배에는 기도하는 중에 절하는 순서가 있다.  무릎을 구부려 힘을 주고 상체를 앞으로 숙인 다음 일어 서서 절을 하는 것이다. 다음의 경우에 그렇게 한다.  알레이누 기도 때 “바나크누 코림 우미쉬타카빔 우모딤(그래서 우리는 무릎을 굽혀 감사를 드립니다)”이라는 부분에서, 쉬모네 에스레이에서 “당신은 복되십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당신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는 부분에서, 오세 샬롬 기도, 즉 “왼쪽으로 절합니다 평화를 주소서, 오른쪽으로 절합니다 우리와 모든 이스라엘에 평화를 주소서” 할 때 등이다. 프수케이 드찜라 다음에도 절한다. 그리고 쉐마 앞에서 회중이 “바루크 아도쉠 하메보라크 롤람 바에드”라 말한 후에 절하고. 토라가 읽혀지고 있는 동안에도 절할 수 있다. 이 때는 앞 의자에 얼굴을 대고 계속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토라에 입맞춤: 회당 예배에서는 어떤 것이나 토라 읽는 순서가 있다. 이후 토라 두루마리는 회당 안을 돌게 되는데 회중은 손으로 토라를 만진다. 또는 기도서나 탈릿을 들어 토라에 대고 후에 손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여자들은 토라를 만질 수 없는데 이 경우에는 토라를 향해 내뻗은 손에 입맞춤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토라 읽기를 마친 후 글자가 적힌 부분이 회중 쪽으로 가게 하여 새끼 손가락을 사용해 두루마리로 접는다. 이후 그 손가락에 입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