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학 핸드북 - 제4장 유대땅과 역사와 절기
4.2.1. 유대 종말론
고대의 유대 종말론에 따르면 천지창조 후 6000년이 지나면 구세주에 의해 새로운 왕국이 나타난다. 이 왕국은 천년동안 계속된다. 요한계시록 20장 4-6절의 천년왕국이 이것이다. 그런데 천지창조 후 6000년은 2000년씩 세 단계로 구분된다. 첫번째 2000년은 토후, 즉 황량(荒凉)의 시대이다. 두번째 2000년은 토라, 즉 율법의 시대이다. 세번째 2000년은 이모트 마쉬아흐, 즉 구세주의 시대인데 천지창조 후 4000년째에 태어나는 구세주의 시대인 것이다. 지금이 이 시대다. 6000년째에는 올람 하바, 즉 영원한 구세주의 왕국이 시작되는 것이다. 랍비들은 한 주간 7일을 창조 후 7000년 동안의 하나님의 계획의 패턴에 따른 것으로 생각했다. 안식일이 구세주 왕국 즉 천년왕국(밀레니엄)의 상징이다.
4.2.2. 성막시대
이스라엘의 시조는 아브라함이지만, 민족 개념으로 역사를 시작하는 것은 출애굽부터라고 본다. 모세의 지도 아래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향했다. 이때가 이집트 제18 왕조 아멘호텝 2세 초기이므로 주전 1447년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해 유월절에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도착하였으며 오순절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토라를 받았다. 그 해 초막절부터 성막을 짓기 시작해서 다음 해 유월절 보름 전에 그것을 완성했다. 후에 성막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까지 유대인들의 삶과 종교와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판관이었던 사무엘의 시대에 이르면 오로지 법궤만 남게 된다. 성막 시대의 역사는 출애굽기부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에 기록되어 있다.
4.2.3. 제1 성전시대
유다지파에 속한 다윗은 주전 1003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는 30세에 왕이 되어 이후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그 가운데 7년은 헤브론에서 33년은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다. 본디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는데 다윗이 이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를 갈망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했는데 때가 주전 959년 초막절이었다.
솔로몬이 완공한 성전을 제1 성전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은 본디 4개의 산들로 둘러 싸인 분지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예루살렘을 둘러 싼 네 개의 산들이란 동쪽의 모리아 산, 남쪽의 시온 산, 서쪽의 갈보리 산 (골고다 계곡으로 올라간다), 북쪽의 벳새다 산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성전은 모리아 산에 세워 졌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이었고, 또한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으로 다윗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인구 조사한 죄를 통회 자백 한 곳이었다. 희생과 회개의 장소에 성전이 세워진 것은 의미가 깊다. 솔로몬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이것으로 제1 성전 시대는 끝나고 말았다. 제1 성전시대의 역사는 열왕기와 역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4.2.4. 제2 성전시대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하자,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에게 귀환을 호소했고, 드디어 주전 538년에 스룹바벨에 의한 제1차 귀환이 성사되었다. 유대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은 성전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주전 515년 유월절 어간에 성전을 봉헌하였다. 아람어로 봉헌이 '하누카'다. 주전 515년에 봉헌된 성전을 제2 성전이라 한다. 이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초토화 되었는데 이때까지를 제2 성전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의 역사는 에스라서, 느헤미야서, 그리고 외경들과 신약의 여러 책들에 기록되었다. 제2 성전은 셀류키드 헬라인들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된 적이 있었다.
셀류키드 헬라인이며 시리아의 전제 군주였던 안티오쿠스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토라 공부 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리고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웠다. 주전 167년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이 거병하여 3년 동안 전투를 벌여 승리하고 성전을 수복했다. 이때가 164년 기슬레브 월 25일이었다. 성전에는 하루 분량의 기름 밖에 없었는데 이 기름이 8일 동안이나 불을 밝혔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기념하는 것이 유대인의 명절 '하누카'이다.
4.2.5. 성전 파괴 이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지금은 성전 파괴 이후의 시대이며 메시아에 의해서 제3 성전이 세워지기를 고대 하는 시대이다. 사실 성전 파괴 이후 유대인들은 방랑의 길로 들어 섰다. 사실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잡혀 갔어도 이때만 해도 유대 민중은 유대 땅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제2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유대인들은 거의 대부분 유대 땅을 떠나 살도록 강제되었다. 유대인들은 정처 없이 떠돌았으며 세계 끝까지 퍼져 나갔다. 그 가운데서도 북아프리카, 스페인, 독일, 러시아 등으로 많이 들어 갔다. 중국의 당(唐) 시대에도 그 곳에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제1 성전 시대가 끝나면서 생긴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4.2.6. 시온주의와 이스라엘 공화국
유대인들은 언젠가는 그들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이 희망은 '하 티크바 (소망)이라는 노래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 노래는 시온주의자들의 찬송이었고 현 이스라엘 공화국의 국가이다. 오래동안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려는 소망은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1800년대 말, 데오로르 헤르쯔와 하임 바이쯔만은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시온주의를 제창하고 나섰다. 그들은 러시아에서 박해받는 유대인들의 피난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시온주의를 태동케 했다.
시온이란 말은 예루살렘의 별칭이다. 아울러 유대인의 유토피아 사상을 말한다. 시온주의는 종교운동이 아니라 정치운동이다. 초기 시온주의자들은 전적으로 법률적 의미에서 전 세계가 인정하는 이스라엘 공화국을 세우려 했다. 예컨데 데오도르 헤르쯔는 유대인 저널리스트였다. 그는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시온주의 사상에 불을 당겼다. 드레퓌스는 독일 간첩 혐의를 받은 유대계 프랑스 장교였다. 그때 시온주의자들은 아프리카의 우간다에 이스라엘 공화국을 세우려 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이스라엘 땅은 팔레스틴의 한 부분이 되었다. 팔레스틴은 영국의 보호령으로 현재의 이스라엘과 요르단 그리고 이집트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영국의 외무장관 발포아는 유대인 금융가 로스쉴드에게 편지하기를 영국 정부는 팔레스틴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것이 1917년 발포아 선언이다. 이후 유대인들은 팔레스틴으로 매우 급속하게 이주했다. 하지만 유대인 인구의 3분의 1이 희생된 홀로코스트가 터질때까지 유대인 국가 창설 논의는 흐지브지 했다.
1947년, 영국은 유대인 국가 창설 문제를 새로 생긴 국제연합에 상정했다. 국제 연합은 팔레스틴을 유대인 몫과 아랍인 몫으로 나누는 안을 만들었고 1947년 11월에 이 안이 통과되었다. 새로운 유대인 국가는 1948년 5월 14일에 독립을 선포했고 영국군은 팔레스틴에서 철수했다. 영국군이 철수하자마자 이스라엘의 주변 아랍국가들은 즉시 신생 이스라엘을 침공했고 1년 동안 이 전쟁을 지속했다.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은 승리를 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들과 전쟁을 할 때마다 영토를 넓혀 나아갔다. 시나이 반도부터 골란고원까지 차지한 것이다.
4.2.7. 오늘의 이스라엘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는 500만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이스라엘 인구의 80%를 유대인이 차지하게 되면서 이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다. 유대인들은 지금 대량으로 이스라엘로 이주하고 있다. 이런 이주를 유대인들은 '알리야' 즉 '승천'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에 따르면 어떤 유대인들도 비록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동적으로 이스라엘의 시민이 된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공화국을 지원하고 있다. 정통파 유대교도들 가운데는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것은 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세속적인 이스라엘 공화국을 세우는 것은 신학적인 이스라엘 국가의 전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늘의 이스라엘은 인구의 60 퍼센트 이상이 무신론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유대교 국가임을 자처한다. 종교가 없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도 자신은 원치 않아도 결국 유대교도가 아니겠는가고 반문한다. 이스라엘의 유행가 가사는 종교적인 내용들이 많다. 탈무드는 이스라엘은 산헤드린 공화국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세속 정부의 내무나 법무 행정을 랍비들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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