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하나님께 기도하라
< 은혜의 하나님께 기도하라 >
시인은 이스라엘이 포로생활로 있다가 회복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했다(1-2절).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었을 때 그다음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이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감사할 것을 감사하지 못하는 인생처럼 불행한 인생도 없고 불행이 예고된 인생도 없다.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받은 은혜를 오래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과거에 회복의 은혜를 주신 것을 기억하고 미래에도 회복의 은혜를 주실 것을 믿으라. 그처럼 회복의 은혜를 입기 위해 한 가지 꼭 있어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개다. 진심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덮어주시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 또한 분노도 그치고 진노도 돌이키신다.
또한 시인은 과거에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새로운 은혜도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다(4-7절). 믿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특별히 기도를 통해 은혜 주기를 기뻐하신다. 성도란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늘의 소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다. 하늘의 소리를 따라 주체적으로 살면 대적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 고난 중에도 당당할 수 있다. 그런 담대함과 당당함의 원천이 바로 기도다.
사람들이 내적인 빈곤을 느끼는 것은 기도의 부족 때문이다. 바쁠수록 돌아가야 하듯이 바쁠수록 기도해야 한다. 오히려 바쁘기에 더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삶의 방향을 잘 잡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기도하셨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기도가 없는 삶에 대해 다른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 기도의 실패는 믿음의 실패로 귀결되고 믿음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로 귀결된다.
< 은혜의 하나님께 순종하라 >
회복의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도 끝나면 안 된다.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다 해달라고만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결국 회복의 은혜를 입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다짐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하면서 특별히 화평을 도전하는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화평을 깨는 어리석은 길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8절).
하나님은 회복의 은혜를 얻기 위해 먼저 화평을 추구하길 원하신다. 의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희생과 순교 콤플렉스에 빠져 불의에 무조건 항복하란 말도 아니다. 의를 고수하면서도 힘써 화평을 추구하라는 말씀이다.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려고 힘쓰되 불의한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 정의도 중요하지만 화평을 추구하는 것 자체도 매우 중요한 정의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십자군 전쟁은 없어야 했다.
11세기 초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기독교 성지 순례자들이 큰 박해를 받게 되자 당시 교황 우르반 2세는 공의회를 열고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 결국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했지만 그 과정에서 십자가를 내세우며 살인과 약탈을 저질렀고 특히 예루살렘을 피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명분을 내세운 전쟁이 결국 명분 없는 전쟁으로 전락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의롭게 보시지 않는다.
십자군 전쟁 이후로 중동 선교가 어려워지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칼을 든 정복자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쟁은 가장 피해야 할 정의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고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이기에 성도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 기독교의 원래 속성을 잃지 않으려면 미움을 잘 극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뤄진 화평은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능력을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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