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당신은 죽을병에 걸렸다고 처방할 때의 반응
제가 예전 20대 말쯤... 기침이 끊기지 않고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가슴이 계속 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담배는 피웠지만, 하루에 2-3개비가 전부였고 운동도 하였기에 나름 건강하다 자부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계속해서 기침이 멈추지 않았으며 흉부가 전체적으로 통증이 와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는 인터넷이 활성화된 시대가 아니기에
의학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병원에 찾아가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스포츠 신문에 의학 정보를 알아보는 전번이 있길래 집에 가서 그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병의 증세에 따라 기계로 녹음된 음성이 들려오는데 가슴이 하도 아파 가슴 통증에 관한 것을 연결하였습니다.
증세가 폐암과 너무 흡사하였습니다.
이 젊은 나이에 폐암이라니... 저는 폐암이라 확신하고 이 한창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것이 슬펐지만
운명이려니 받아드리고 다음 날 아침 새벽에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목욕탕에 이틀 전에 다녀왔지만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오자
일단 몸을 더 깨끗이 해야겠다는 별난 생각이 들어간 것입니다.
여하튼, 몸을 더 깨끗이 씻고 출근을 포기한 채 아는 친구들과 고향과 친척들을
죽기 전에 얼굴이나 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폐암 몇 기인지 그거나 알아볼 심산으로 종합병원에 들러 진단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에게 제 증세를 말했더니 인상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의사의 표정을 확인하는 순간, 아~ 틀림없는 진짜네...
일단 엑스레이로 흉부 사진을 촬영 후 그 사진을 보고 의사 선생님이 진단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사진이 도착하여 벽에 있는 사진 장착하는 곳에 끼우고 스위치를 누르니 환하게 보입니다.
보통 건강한 사람이라면 갈비뼈 모양이 보이며 검게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보는 사진은 거의 대부분 검은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더욱 절망에 빠졌습니다.
의사는 사진을 한참 보더니 기관지염 말기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사실 기관지염 말기라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위험한 것입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망할뻔 했다고 하는 의사의 말에 걱정은커녕
폐암이 아니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의사의 유도 질문대로 제가 기관지염에 걸린 이유를 추적해보니 제가 졸업 후 건축설계회사에 입사했는데
신입사원이라고 하면서 설계도면이 나오는 대로 청사진을 찍으라고 합니다.
청사진 기계가 암모니아를 넣어서 하는 것인데 원래 폐가 약한 저로서는
그 암모니아 가스가 계속해서 누적되며 기관지염에 걸렸던 것입니다.
처방을 받고 한 달 치 약을 받았고, 원체 싱싱한 젊은 시절이라
일주일도 안 돼서 기침이 멈추고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처방전을 받아 약을 먹고 병을 고친 것입니다.
만약, 의사가 그거 아무 상관 없는 것이니 전혀 걱정하지 말고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면 당장은 안심하면서 기분은 좋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저는 아마 기관지가 완전 고장나 아까운 청춘에 사망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의사는 정확히 진단하고, 진짜 병명을 알려주며
정확한 처방전을 내려야 환자는 건강하게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신앙인들이 영적인 사망의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목사)들은 올바른 처방을 내리지 아니하는 것인지 못 하는 것인지, 환자도 올바른 처방을 받길 거부하며 자신은 건강하다고만 합니다.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속성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주님은 수많은 명의(선지자)를 보내셔서 당신들은 사망할 병에 걸렸으니 온전한 치유(회개)를 받으라고 했으나 오히려 환자들이 의사를 잡아 가두고, 매질하고, 온갖 박해를 가했습니다.
이천 년 전 세례요한에게 그랬고 심지어 예수님에게마저...
예수님 이후에는 베드로가, 스데반 집사가, 모든 제자들...
의사들이 패역한 세대를 향하여 당신들은 죽을병에 걸렸다고 하며 올바른 진단을 내렸으나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이분들에게 돌을 던지며 박해만 했을 뿐입니다.
그들의 삶 따로 신앙 따로의 회칠한 삶의 진실을 들췄기에
자신들의 양심적 부끄러움을 분노로 방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위선으로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입으로는 주 여호와를 찾았으나 그들의 삶은 천국을 위해 여호와를 섬기는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의사가... 그들이 숨기고픈 양심적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기에 그들은 분노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사도행전 7장 54절)
이들은 입으로는 여호와를 부르면서 세상적 삶을 즐기며
구원도 받는다는 달콤한 말을 의사로부터 듣길 원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이유만으로 구원은 확정된 것이라 굳게 믿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은 이를 전면 부정하셨습니다.
워낙 강퍅한 사람들이라 양심의 찔림을 받고도 치부를 가리고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억지로 정당화하기 위해 더더욱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큰소리로 외칩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33절)
예수님은 이런 회칠한 자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릴 것이라고 미리 예언되었고 또 사실화되었습니다.
지금 세대도 전혀 다를 바 하나도 없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서 외치신 대상이 하나님을 알고, 믿노라 하면서 성경책도 읽고,
믿음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외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원래 모르니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비록 적은 수지만 올바른 의사(참된 목사, 참된 선생)가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고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나
참된 믿음의 삶을 살지 아니하면 멸망한다는 처방전을 줘도 이를 불편해하며 핍박합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많은 거짓 의사(거짓 목사, 거짓 선생)들은 병명을 온전히 말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올바르게 처방하여 회개하라고 외치지 않으며, 은혜만을 말하고,
거듭남도 없는 교인들을 상대로 안전하다, 구원의 확신을 가져라, 자유함을 가지라고 외칩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 13-15절)
수많은 교인들이 온전한 회개와 거듭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혈 피만 있으면 구원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에겐 은혜가 있지 않느냐 은혜면 안 되는 게 없다 하며
자각증세 없이 영적 문둥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안심만 시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이유만으로 구원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안심하는 것과 너무 닮았습니다.
또한, 병자(교인들)들은 올바른 진단을 받길 거부합니다.
그저 아전인수로 왜곡된 달콤한 솜사탕 같은 사랑과 은혜로
죄를 덮고, 정당화하고, 감추는 데만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보혈 피로 다 덮고 넘어가면 되는 것으로 압니다.
이는 마치, 나는 한 국가의 국민이 되기로 했으니 국법을 어겨도 나는 면책특권의 자격이 있기에 법에 저촉도 안 받고 처벌도 안 받는다는 것과 같은 아주 이기적인 심리입니다.
마음을 찢는 회개도 거듭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을 상대로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이미 용서는 물론, 구원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교육받은 교인들은 아무 죄책감도 없습니다.
도무지 두렵고 떨림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이유만으로 거듭남의 삶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은 무조건 구원받는다고 외치는 유대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아주 똑같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태복음 3장 9절)
또한, 사람이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사냐고 자신의 죄를 정당화합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니 그걸 덮기 위해 보혈 피와 은혜가 필요하다는 비 성경적인...
성경에도 없는 주장을 합니다.
마치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어 하와를 타락시킬 때 했던 말처럼,
보혈 피와 은혜를 자신의 불법적인 죄를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게 합니다.
성경 어딜 봐도 은혜와 보혈 피가... 간절한 회개함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덮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내용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은혜란 것은 죄를 짓고 덮는데 사용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 반대로 죄를 안 짓게 하고, 영적 문둥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고, 또한 회개로 이끌기 위한 것이 은혜입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이렇게 전합니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사도행전 3장 19절)
세상적인 안락한 삶과 육의 본성을 포기하길 거부하는 사람들은
회개, 순종, 거듭남, 열매를 말하면 행위 믿음이라고 하며 듣기 싫어 돌을 던집니다.
자신의 살이 통증 없이 썩어가는 영적 문둥병에 걸린 것도 모르고 자신은 매우 건강하다고 합니다.
자신 속에 감춰져 있는 속사람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종국에는 버림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부디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셔서 양들을 향해 올바르게 진단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이 올바른 진단을 내리지 못하면
수많은 양들이 증상 없는 영적 문둥병으로 통증의 자각도 없이 죽어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본시 귀에 거슬리는 바른 진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위해 진리를 감추면 안 됩니다.
돌이 날아오고 바위가 날아올지언정 아닌 것은 아니라고 외쳐야 하며
바른 진리는 더욱더 강하게 외쳐야 양들이 살 수 있습니다.
선생들은 양들을 향해 올바른 진단 내리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오.
날아오는 돌이 지옥보다 무섭겠습니까?
양들도 듣기 싫고 내키지 않아도 올바른 진리에 대해서는 두려움 없이 받아야 합니다.
원래 올바른 진리는 사람의 육적으로 죄 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따르기 싫고 귀에 거슬리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가 결국 양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달콤함을 누리게 하는 솜사탕 같은 거짓 복음은 육을 입고 있을 때는 그 무엇보다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솜사탕을 계속 먹으면 치아가 서서히 썩어가듯 달콤한 거짓 복음을 계속 먹으면 결국 영이 죽어갑니다.
복음은 죽어가는 영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죄의 본체인 육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육을 살리는 것이 복음의 이유라면 예수님께서 굳이
십자가에 달릴 이유도 없었으며, 거듭남을 외칠 필요도 없었고,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외치실 이유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영을 살리려고 오셨지 육의 평안함을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치부가 들키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치부가 들키고 스스로 그것을 인정할 때 복음은 참된 효과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치부를 계속해서 감추며 자신의 본 모습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복음은 그저 종교 행위로 전락시키는 도구 밖에 안 됩니다.
부디...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날아오는 돌을 두려워 말고 성경대로 가르치십시오.
교인이 교회를 떠날까 두려워 복음의 본질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양들도 달콤한 거짓 복음에만 매달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의 금식 기도 때 마귀가 유혹한 세 가지 미혹을 왜 물리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는 왜 또 세 가지(돈, 명예, 권력)로 미혹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누리는 순간 영은 타락하여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는 이것으로 유혹했고, 예수님은 그런 연유로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어느 사람에게나 다 일어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를 거부하고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
몸소 그 모범 답안을 후대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영을 멸망시키는 육의 악한 속성을 이끌어내는 도구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를 거부하라고 손수 보여주신 것입니다.
몸에 좋은 약은 몸에 쓴 법입니다.
영에 좋은 말씀은 귀에 거슬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전해 듣는 말씀이 양심에 찔림과 애통하게 함이 없다면,
자신은 지금 영을 썩게 만드는 달콤한 독을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복음은 심령을 애통하게 해야 하고, 양심에 찔려 나는 어이할꼬 가슴을 쳐야 하며,
강력한 회개를 하려고 하는 마음이 불처럼 타올라야 하며,
성령으로 거듭나려는 간절함으로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힘이고 역할입니다.
그들(심령이 가난한 자)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사도행전 2장 37절)
"그들(바리새인)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사도행전 7장 54절)
올바른 복음이 전해지면... 위 두 경우의 말씀처럼 반드시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세상 것을 열심히 누리며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에 물들고, 죄된 육신의 속성을 고수하여 자기를 부인하길 거부하며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며 넓은 길을 가며 구원받길 원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처럼 마음에 찔려 이를 갈게 될 것이고, 마음이 가난한 심령들은 오히려 마음에 찔려 애통해하며 마음을 찢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들입니까...
애통하여 마음을 찢으며 '나는 어이할꼬' 하는 분들이 되십시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희생 없이 누리기만 하려는 감탄고토의 막연한 은혜,
거듭남 없는 죄 사함과 구원강조, 회개함 없는 보혈의 피 의지함과 죄의 용서,
육의 인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삶의 변화됨이 없는 신앙생활...
이런 육의 위안만을 강조하는 달콤한 가짜 복음에서 벗어나십시오.
이것은 절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영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선악과입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갈라디아서 6장 3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1서 2장 15-16절)
이 땅의 달콤함을 위해 죄를 짓게 하고 은혜로 포장된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지지 마십시오.
이것들은 곧 꺼질 거품이고 배설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오래 살아야 백 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정 믿는 성도라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영원한 천국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죄로 가득한 육신의 속성을 과감하게 부인하고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나셔서
진정한 천국 백성의 거룩한 삶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시길 간절하게 권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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