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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통령 , 공비자녀를 돌보라 지시

Joyfule 2020. 6. 1. 22:15
지갑종(池甲鍾)_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
   

 

이 대통령, 청소년에 손자 대하듯
나는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라는 제안을 받고 매우 고민하였다. 그 이유는 이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신 것이 아니라 신문기자로서 접견한 국한된 내용이어서 그 범위가 한정되어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글은 아직까지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 박사의 나라사랑, 민족사랑의 인간미가 넘치는 이야기이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수많은 일화중에서 나에게 깊은 감동을 준 이 박사의 애국정신이다.


공비자녀를 돌보라 지시
나는 6•25전쟁 중 영국 「로이타」통신사의 종군기자로서 1952년 3월초 지리산지역 전투에서 생포된 공비(共匪)가 수용되어 있는 광주중앙포로수용소를 시찰하는 이 대통령 내외분을 취재한 바 있다. 이 수용소에 들어선 이 박사는 이들 공비들을 바라보며 민족의 비극임을 감안,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으며 특히 어린아이들이(공비의 자녀) 수용되어 있는 막사에 이르러 "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 더운 음식을 주고 있나? 이 아이들은 커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인재야. 공산당이 왜 나쁜 지를 잘 가르쳐야돼. 그리고 이 아이들이 있는 곳은 '수용소'가 아니라 '고아원'으로 이름을 고쳐"라고 지시하였다. 북한공산침략으로 전국토가 황폐화된 6•25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반공투사인 이 대통령은 이 수용소에서 마치 손자들을 대하듯 인자하였으며 먼훗날의 일꾼인 청소년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여 그분의 민족사랑에 대한 단면을 엿보여주었다.


도움을 청원하는 자세
또한 이 대통령은 3년간의 6•25전쟁이 멈추고 휴전이 된 다음해인 1954년 7월 25일부터 8월13일까지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6•25휴전 1년 후에 이루어진 이 미국방문은 전란으로 황폐화된 국토의 재건과 국군의 현대화를 위한 미국의 원조문제가 큰 과제였다. 나는 당시 세계통신사의 중앙청 출입기자로서 경무대를 담당하고 있어 이 대통령의 방미 출발을 취재하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나갔다.

 

김포공항에는 이 대통령이 탑승할 미국 해군의 4발 프로펠라군용기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우리나라 국가원수가 해외에 나들이할 때는 미국군용기를 빌려타는 형편이었다. 마침내 이 대통령이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는데 할아버지의 모습은 매우 피로하고 지친 모습이었으며 더욱이 이발도 오래도록 하지않은 탓인지 쓰고계신 모자밑에 보이는 머리카락은 마치 잡초(?)를 연상케하는 것이어서 나는 신문기자이기에 앞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우리나라 국가원수의 초라한 모습에 매우 마음이 우울하였다.

 

이어 취재기자들이 이 대통령에게 모여들어 질문이 시작되었다. "각하, 이번 아이젠하워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논의될 문제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이 대통령은 "지금 여기서 말해버리면 내가 미국갈 필요가 없어져"라며 "다만 내가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도와준 우방친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 다들 잘 있게, 나 다녀올테니" 그러나 나는 이 대통령의 엉성한 머리가 마음에 걸려 이 대통령에게 다가서서 "각하 미국을 가시는데 이발할 시간도 없이 바쁘셨습니까?"라고 말을 건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잠시 나를 쳐다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나라가 전란으로 이 지경이 되어 뭔가 얻으러 가는데 너무 깨끗한 모습으로 가면 도움이 안되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의 말씀에는 얼마나 깊은 뜻이 있었는가! 한나라의 국가원수로서 또한 자유대한민국의 가장으로서 국민을 먹여살리고 국가를 재건하려는 대통령의 진정한 애국, 애족의 표현이였으며 외교의 '귀신'이라는 신화의 제스처였다.

 

이 대통령의 그때 그 모습은 누구나 동정할 마음이 우러나지 않을 수 없는 인상을 주었으며 나는 그토록 나라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대통령의 장도를 빌며 대통령의 탑승기가 이륙하고 멀리멀리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초여름의 김포비행장에 서있었다. 2주일 후 이 대통령은 많은 성과를 거두고 미국으로부터 귀국하였는데 이때 김포공항에서 만나뵌 할아버지의 모습은 말끔하게 이발도 하고 용안에는 윤기가 돌아있었으며 매우 건강하고 명랑한 표정이었다.

 

이때 미국에서 거둔 성과의 하나가 우리나라 정부기구의 하나였던 부흥부(復興部)로서 1956년 발족하여 6•25전후복구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출처 : 건국대통령 기념 싸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