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니우스(Eirhnai/oj, Irenaeus, died in c. 202)
이레니우스는 출생과 사망 년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2세기의 전반기에 소아시아의 서머나(Smyrna)에서 출생하여 2세기 말이나 3세기 초인 202년경에 사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Lyon에서 사제로 임명되었으며 나중에 그곳의 제2대 감독이 되었다. 이레니우스는 젊었을 때 사도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이단을 반박하며”(Against Heresies, c. 180)라는 책을 기록했는데 이 책은 2세기의 교회에 위협적이었던 영지주의를 공격한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계시를 전달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레니우스는 여러 지역의 교회 감독들부터 예수의 제자였던 사도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그들 중 그 누구도 영지주의자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 책은 1945년 Nag Hammadi 문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영지주의에 관해서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 책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그의 책 제1권에서 발렌티니안 영지주의자들(Valentinian Gnostics)에 대해서 비판하며, 제2권에서는 Valentinianism의 교리적 모순을 지적하며, 제3권에서는 복음서의 증거로부터 그들의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제4권은 예수의 가르침과 구약과 복음의 통일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제5권에서는 예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의 서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레니우스는 이단에 대항해서 정통기독교의 증거는 구약을 포함해서 현재 신약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대부분의 책들인 성경이라고 지적했다. 이레니우스 이전까지는 지역에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선호하는 복음서가 조금씩 달랐다. 소아시아에서는 요한복음을 선호했으며, 마태복음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인기가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네 개의 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정경이라고 최초로 증언한 사람이다. 아마 이것은 누가복음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였던 이단자 말시온에 대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이레니우스는 현재의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21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4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빌레몬, 히브리서 제외), 베드로전서, 요한 1서, 2서, 요한계시록. 그는 히브리서를 알고는 있었으나 한 번도 인용하지 않았으며 바울의 기록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허마의 목양서(the Pastor of Hermas)를 언급하면서 ‘성경이 말하기를’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 책도 영감된 성경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는 정경에 들어온 성경들을 가리켜 ‘복음적이고 사도적인 문서들’(the evangelical and apostolic writings)이라고 불렀다.
그는 또한 4복음서의 수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졌는데 복음서가 4개인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창조와 구원의 순서에서 중요한 수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측량하시고 수를 가지고 행하시기 때문에 이 숫자에 가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4복음서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받아들이는 에비온파(마태복음), 말시온파(누가복음), 세린투스파(마가복음), 그리고 발렌타니안파(요한복음)들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려고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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