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4)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이사야 1장 18-31절
<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
본문에는 죄로 가득 찬 예루살렘 성읍에 관한 묘사가 나와 있습니다. 본문 21-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이 구절을 보면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총체적인 도덕적 문란에 빠진 것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신앙을 버리면서 특별히 지도자들이 불의를 행하고 뇌물에 빠져 타락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리는 심판이 24-31절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 시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죄에 빠진 백성들을 그냥 두시지 않고 ‘위대한 초청’을 하십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 구절에서 “서로 변론하자!”는 말은 “서로 논쟁하자!”는 말이 아니라 “서로 만나 이성을 가지고 생각해보자!”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성도 필요합니다. 이성이 없는 믿음은 지혜가 없는 열정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과의 위대한 대면’을 가지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위대한 대면이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주홍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도가 사는 길은 하나님을 만나 동행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나라고 큰소리를 치며 하나님을 등지며 살 때 잃는 것이 많습니다. 그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를 잃게 되고, 가장 위대한 가능성을 잃게 되고, 가장 사랑스러운 반려자를 잃게 되고, 동시에 삶의 의미와 영원한 목표를 잃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사막과 같아서 생명과 축복의 길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께 몰입하며 하나님 안에서 죽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앞으로 천국에서 주님과 거할 때 그 영광에 익숙할 수 있도록 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을 매일 경험하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성도에게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위대한 대면을 가지는 삶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 지금 하나님께 오십시오 >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은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오라’는 말은 원어로는 ‘지금 오라(Come now)’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삶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와 은혜를 깊이 묵상해보고 더 이상 죄악 가운데 빠지지 말고 지금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깊게 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하는데 50시간 이상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고 노는 데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인터넷을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성도들조차 잘 내지 않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항상 “지금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목사님! 언젠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겠습니다. 지금 일이 다 정리되고 안정되면 언젠가 교회에 다시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대개 그 ‘언젠가’는 오지 않습니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전술이 “내일 하자!”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런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돌아오라!”고 언급한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지금 오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 말씀을 지금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씀도 ‘지금’을 강조합니다.
일전에 개봉된 ‘로키 발보아(Rocky Balboa)’란 영화가 있습니다. 두 차례나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을 지냈던 로키가 현재의 헤비급 챔피언과 경기하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서 로키를 훈련하는 트레이너가 힘든 훈련과정 중에 번민하는 로키에게 말합니다. “로키! 무슨 문제가 있나? 그 친구가 자네를 작살을 낼 거야. 더 지옥같이 훈련해야 해.”
그때 로키가 말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소. 내일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때 폴리가 로키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내일은 없어.” 그 말은 내일 하겠다고 하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지금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내일 하겠다고 미루지 말라. 두 번째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오라! 지금 하라!” 하나님께 오면 과거를 불문하고 깨끗하게 씻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하시고 진홍 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희게 만드실 것입니다.
옷을 만들 때 사용했던 주홍색과 진홍색 물감은 옷감을 훼손시키지 않고 탈색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죄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죄를 지우고 없애려고 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죄의 흔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가서 진정으로 회개하면 과거의 죄, 어제의 죄를 하나님은 완전히 지우시고 우리를 눈과 같이 성결한 존재로 만드실 것입니다.
< 공의를 따라 행하십시오 >
우리는 이미 그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처럼 은혜 받은 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공의를 행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공의를 행해야 축복받는다는 메시지는 오늘날 성도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메시지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자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19-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본문 21-31절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죄의 불순물이 있으면 심판을 하시고, 그 불순물이 제거되면 회복의 은총을 허락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의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기대와 기도와 기다림도 없이 급한 마음으로 행동하면 안 되지만 기대하는 것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때를 기다린 후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과감히 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에스더도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담대히 나갔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야 기적의 역사는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되었으면 과감히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행동과 헌신을 잊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미국에 노예제도를 반대했던 헨리 데이비드 토류(Henry David Thoreau)란 시민운동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주 정부에는 세금을 내기보다는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고 하고 감옥에 갔습니다. 그의 절친한 동료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 감옥에 가서 창살 사이로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헨리! 그 안에서 뭐하나?” 토류가 대답했습니다. “랄프! 자네는 그 밖에서 뭐하나?”
성도는 교회 안에서만 신앙인처럼 보여서는 안 됩니다. 교회 밖에서 성도다운 삶을 보여주어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의를 따라 오늘부터 행동하면 오늘부터 새로운 축복과 변화의 역사는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마음에 두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을 오늘부터 시작하는 적극적인 믿음의 행동으로 축복과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복된 심령들이 되길 바랍니다.
ⓒ 설교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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