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이사야(7) 행한 대로 보응 받습니다

Joyfule 2009. 6. 10. 20:57

이사야(7) 행한 대로 보응 받습니다

이사야 3장 1-12절


< 영혼에 화가 미치는 사람 >


  이사야는 주전 740년에서 680년까지 활동했습니다. 그가 사역하던 시대의 왕은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웃시야 왕 때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축복하셨습니다.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아들인 요담 왕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선한 왕의 길을 갔습니다.


  요담이 죽고 첩의 아들인 아하스가 왕권을 이어받았습니다. 부정하고 악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아하스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영적 간음을 행했습니다. 그는 힌놈의 골짜기에서 바알과 몰렉 신에게 분향을 했고, 어린이들을 황소 머리와 인간의 몸을 한 구리신상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러면 밑에서 불이 올라와 어린아이들을 태웠고, 그때 어린아이들의 비명소리를 안 들리게 하려고 끊임없이 북을 쳤습니다.


  또한 아하스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기보다는 앗수르 왕을 의지했습니다.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주님을 신뢰하라고 촉구했지만 아하스는 선지자의 말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이사야는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다의 잘못을 지적하며 어떤 사람에게 화가 미치게 되는지 추상같은 말씀으로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화가 미치게 될까요?


1.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이 말을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재물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재물을 사라지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 이 말씀은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의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역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제거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것을 믿는 자에는 화가 미친다는 말입니다.


2. 마음이 교만한 자


  본문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한 것이며.” 사회가 혼란하면 지도자 자격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질서가 문란하게 됩니다. 왜 그런 현상이 생깁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3. 언어와 행실이 나쁜 자


  본문 4-7절까지 말씀을 보면 질서의식이 땅에 떨어지고 도덕과 윤리가 문란하게 된 사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기독교의 믿음과 은혜는 나쁜 언어와 행실을 무조건 감싸고도는 덕목이 아닙니다. 좋은 언어와 행실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4. 백성을 학대하는 자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당시 유다는 다른 면에서도 많이 타락했지만 특별히 지도자가 심하게 타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을 더욱 존중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연약한 이웃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 행한 대로 보응 받습니다 >


  그런 당시의 타락상을 질책하면서 이사야는 어떤 말을 합니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본문 10-11절 말씀에 있습니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의롭게 행하면 의의 열매를 얻고 불의하게 행하면 불의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을 보며 화난 얼굴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자신의 모습이 화난 모습으로 비춰지고 기분이 저하되고 울적해집니다. 반면에 거울을 보며 웃는 얼굴을 하면 자신의 모습이 밝아 보여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 때 거울을 보듯 해야 합니다. 남에게 친절하면 남도 내게 친절할 것이고, 남을 악하게 대하면 남도 나를 악하게 대할 것입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보십시오. 남이 내게 불친절하거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불친절 했구나!”라고 생각하고, 남이 내게 섭섭한 말을 하거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저 사람에게 섭섭한 말을 했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남에게 악한 대접을 받거든 “내가 심어 놓은 악이 내게 되돌아오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인과응보는 기독교의 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구원과는 더욱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비록 죄가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고, 주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복음이니까 복음과 인과응보는 180도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인과응보를 부인하면 십자가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대가가 있었기에 죄인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무조건 희생이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희생이 없었다는 것뿐이지 주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구원의 은혜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사랑만 베푸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절대로 침해될 수 없고 묵과될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거저 봐주고, 용서한다고 해서 거저 넘어가지 않습니다. 값을 지불해야 용서가 있고,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사랑이 있습니다.


< 나의 변화가 관건입니다 >


  행한 대로 보응 받습니다. 결국 나의 변화가 모든 문제해결과 환경변화의 최대 관권입니다. 이사야 당시의 타락한 모습은 현 시대의 타락한 모습과 유사하다면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지금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진정한 회개입니다.


  회개(repentance)가 무엇입니까? 회개는 ‘죄의 자각(conviction of sin)’ 이상이고, ‘죄의 고백(confession of sin)’ 이상이고, ‘죄의 참회(contrition of sin)’ 이상입니다. 회개는 마음을 다한 변화(whole-hearted change)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에는 실질적으로 죄로부터 돌아서는 결단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돌아설 때 그가 속한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내가 변하고 ‘하나님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환경도 변화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타락한 모습이 많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모습도 많습니다. 정치인들을 보면 왜 정치를 저렇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왜 TV 프로그램이 저렇게 저질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왜 교회들은 저런 타락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바라보기 전에 나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켜보는 사람은 타락한 사람이나 불신자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본성상 타락한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순수하게 보이는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느낍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교육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본성을 따라 거짓말을 합니다. 그처럼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그 말은 누구에게나 회개의 필요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거기에서 상황변화의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사람은 회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도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진심으로 회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 자신의 묘비명에 다음과 같이 적힐 수만 있다면 그는 의미 있게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는 회개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선한 행동은 회개입니다. 항상 회개를 앞세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