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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Joyfule 2014. 6. 7. 00:39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7. 길가메슈 서사시 란 무엇인가?.

 

 

죠지.스미드는 신문사 등의 후원으로 다음 해 1873년 초에 현재 니느웨로 갈 수 있게 되어 1873년과 74년의 2회에 걸쳐서 발굴 조사를 지휘하고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또다시 홍수 설화의 일부가 되는 대량의 점토판들 을 발견하였다. 그는 먼저 발견한 서판이 12매의 서판 으로 된 대문학 작품의 일부라는 것도 알았다. 이것은 어는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서사시라는 것을 알 았으나 세개의 쐐기꼴 글자로 기록된 주인공의 이름을 쉽게 해독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창세기 10장8절에 보 이는 영웅 나므롯이다.


엔키두는 우르크로 내려와서 그곳 생활 양식을 익힌다. 양자는 우르크시의 성문에서 격투를 한다. 서로 상대의 힘을 알고 우정을 맺어 그후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 가 되고 힘을 합해서 모험을 하게 된다.
길가메슈는 엔키두에게 측백나무 숲으로 원정할 계획을 의논한다. 결국 두 사람은 우르크의 장로들과 의논해서 여행의 수호신과 태양신 샤마슈의 허락을 받고 측백나무 숲으로 원정을 떠난다.


두 사람은 측백나무 숲의 산지기인 괴물 프와와를 죽이 고 측백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돌아온다. 사랑과 향락의 여신 이슈탈은 개선하는 길가메슈를 발 견하고 이 세상의 부를 약속하고 구혼한다. 여신의 불륜을 알고 있는 길가메슈는 이것을 거절한다. 그래서 분노한 여신 이슈탈의 저주로 하늘의 신 아누로 부터 하늘소가 파견되지만 두 사람은 이것을 격퇴하고 우 르크로 돌아온다.

 

다음에 여신 이슈탈은 친구 엔키두를 12일간의 병고로 눕게 하고 저 세상으로 빼앗아 가버린다. 비탄에 젖은 길가메슈는 처음으로 이 세상이 끝이 있다는 것과 인 생의 공허함을 깨닫고 불사의 약초를 찾아 방랑의 여 행을 떠난다. 그는 산과 들을 넘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 드디어 삶과 죽음의 비밀을 알고있는 인간의 조상 우도 나피슈팀이 살고 있는 행복의 섬을 찾아가서 그에게 영 원한 생명의 비밀을 묻는다.
그는 신이 내린 대홍수의 위험에서 자기가 어떻게 피 했는지를 말한다. 신 에아의 말씀으로 자기는 네모진 배를 만들고 위험을 피할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을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길가메슈는 찾고 있던 해답을 얻지 못하고 낙심해서 돌아오려고 하자, 우도나피슈팀은 그의 아내의 권고에 따라 바다 밑에 있는 불로장생의 약초가 있는 곳을 가 르쳐 준다. 길가메슈는 곧 바다 밑으로 가서 그 약초 를 얻고 기쁘게 그것을 우르크로 가지고 온다. 도중에 차고 맑은 샘을 발견하고 거기서 목욕하는 사이 에 이 약초의 향기에 끌려 온 뱀이 물 속에서 나와 이 약초를 훔쳐 달아난다. 길가메슈는 실망에 빠져 허무하 게 우르크로 돌아간다.
본문에는 이상의 줄거리에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첨가되 어 있다.

 

우도나피슈팀의 설화는 창세기 6장-9장에 기록되어 있 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흡사하다. 노아가 홍수가 빠졌 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 날려보낸 새가 까마귀와 비둘기인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주의 깊게 읽어보면 양자는 전혀 다르다. <길가 메슈 서사시>에서는 대홍수가 일어난 것은 신들이 서로 싸웠기 때문인 것으로 돼있는데,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인간의 죄가 만연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여 내린 것 으로 돼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인의 대홍수 이야기를 그 신앙에 따라 고쳐 쓴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도나피슈 팀은 신에아가 특별히 불쌍히 여겨 가르쳐 주었기 때문 에 대홍수를 면한 것으로 돼 있는데, 노아는 의로운 사 람이기 때문에 방주를 타고 구원된 것으로 돼 있다.

 

노아의 홍수 설화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노아의 홍수 설화의 원형은<길가메슈 서사시>중의 우 도나피슈팀 설화로 소급되고, 다시 이 설화의 원형은 슈메르의 서사시들 중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파손이 많이 된 점토판 문서이긴 하지만 그 내 용은 인간의 창조와 왕국의 기원과 홍수 설화와 슈르파 크와이며 경건한 주스트라가 배를 타고 이 난을 면한 이 야기이다.

 

전승은 주스트라->아도나피슈팀->노아,로 이동된 것으 로 생가된다.
<길가메슈 서사시>는 여러 민족 사이에 널리 애호되고 많은 조각과 그림 등의 테마가 되었으며, 또한 서사시 전편을 통해서 볼수 있는 이른바 동양적 허무주의는 구 약성서의 전도서로 계승되어 있다. 이 서사시는 바빌로 니아의 종교와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가 될 뿐 아니라 시리아, 팔레스타인에 그리고 소아시아를 통해 서 그리스에도 전해진 문화 교섭의 역사를 해명하는데 도 중요한 연구 사료가 된다.


8. 노아가 도달한 아라랏산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께서 노아와 배에 있던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들 의 생각이 나셔서 바람을 일으키시니 물에 빠지기 시작 하였다. 땅 밑 큰 물줄기와 하늘 구멍이 막혀 하늘에서 내리던 비가 멎었다. 그리하여 땅에서 물이 줄어들기 시 작한지 150일이 되던 날인 7월17일 배는 마침내 아라랏 산 등마루에 머물렀다.> (창세기8장1-4절) 창세기 6장에서 9장에 걸친 노아의 홍수 설화는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돼 있지 않다.


방주에 실려진 짐승들 이야기도 홍수의 원인이나 기간 등도 오랜 야훼이스트 사료층과 새로운 제사적 사료층 이 섞여있으며 중복과 모순이 있다. 이것은 창세기의 편찬자가 천지 창조 설화와 같이 오래된 전승을 버리지 않고 남겼기 때문이다. 구약성서가 전해진 뒤로 많은 사람들이 홍수 설화를 읽고 노아의 방주에 관심을 가졌 던 것은 물론이다.

 

이 설화를 테마로 그린 화가도 많고 교회당의 장식으로 노아의 방주와 비둘기를 조각한 조각품도 많다. 아라랏산 과 노아의 방주에 관해서는 저 유명한 마르코 폴로도 언급 한 것처럼,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문제삼아 왔 다.
노아의 방주가 최후로 도착했다고 하는 아라랏산은 어디 있는 산일까. 지도를 보자. 흑해와 카스피해의 두 바다 사이에 아르메니아지방이라고 하는 고원지대가 있다. 높은 봉우리가 많고, 이것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이 티 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이 되어 이라크 평야를 적셔주고 있 다.


전설에 의하면 이 아르메니아 지방에 있는 어느 높은 산 이 아라랏산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지방은 소련, 터키, 이란의 세 나라로 갈라져 있는데, 아라랏산은 이 3국 국경에 솟아있는 화산이며 터 키령에 있다. 그 최고봉은 5,156미터나 된다. 아르메니아 지방의 그리스도교도들은 옛날부터 이 산마루에 노아의 방 주가 남아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 산에는 아무도 오를 수 없는 신성한 산으로 여기고 있다.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전설의 산 아라랏에 오르려 고 했다. 1929년에는 도이치 의학자이며 등산가인 파로트 가 이 아라랏산에 올라가서 산마루에서 노아의 방주가 앉 을만한 넓은 대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방주를 실 제로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창세기의 원문에는 <아라랏산들>이라고 돼 있으며 한 봉 우리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어느 지대 전체를 의미하는 것 같이 생각된다. 헤브라이어의 아라랏은 앗카 도어의 우랄루두(<높은지방>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반 호수지방의 고원지대를 가리켜 이름지어진 것 이며, 기원전 8세기경에 그 땅에는 우랄루두 왕국이 번영 하고 있었다. 이것은 창세기의 야훼이스트 사료층이 기록 된 시대와 맞먹는다. 오늘날 우리는 니실산이나 아라랏산 이나 방주의 도착지점을 입증할 수는 없다. 그리고 슈메르 의 홍수 설화에는 산 얘기가 없다. <홍수층>쪽이 확실한 고고학적 사료의 증거가 되고 있다.


9.이스라엘 민족사의 시작
헬레니즘과 함께 유럽의 정신적 전통을 이루고 있는 헤브라이즘의 담당자였던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에 유가없는 기구한 운명을 짊어지고 오늘에 이른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원 제 20세기의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는 깊은 안개 속에 싸여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실증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근년의 여러가지 연구는 이에 관해서 고고학의 여러가지 성과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특히 <마리문서>(BC 18세기), <누즈문서> (BC 15세기),<아라락 문서>(BC 15세기), <우가리트문서.(BC 15-14세기),<보하스.쿄이문서>(BC 14세기)등이 그것이다.


창세기 12장 이하에 전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즉 아브라함(12장-25장), 이삭(25장-26장),야곱(25-36장)등에 관한 족장 설화는 오랫동안에 걸쳐 구전되어 온 구비를 근거로 한 전승들이며, 이 전승들이 야훼이스트의 손으로 새로운 문맥과 수식이 가해지는 것은 기원전 10세기로 소급된다. 그리고 이것들을 현존하는 모양으로 완성한 것은 바빌로니아 포로시대(BC 6세기)나 그 이후라고 상정되는 제사적 사료층의 기록자와 그 밖의 약산의 가필자들이라고 생각된다. 족장 설화는 19세기 말경까지는 후대의 창작의 반영이라고 했으며, 아브라함 이하의 족장들은 신화적인 인물로 쳤으며, 그리고 수수께끼에 싸인 부족의 조상이라고 여겨져 그 사실성이 부정되는 일이 많았다.


그 후 오리엔트 고고학의 진전에 따라, 특히 1925년 이후의 고고학적 제 발견에 의하여 그 내용이 일변하였다. 즉 족장 설화와 메소포타미아와의 지리적 역사적 관계가, 특히 족장 설화의 역사적 배경이 기원전 2천년대 초기에서 중엽에 걸쳐서 메소포타미아 북부지방의 생활 관습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고 전승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사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족장 설화는 출토된 여러 사료와의 관련으로 역사적인 테두리 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족장들의 연대에 관해서 1950년 이후의 주요 견해들을 대별하면, 기원전 2천년대 전반기로 치는 설과 기원전 2천년대 중엽 이후의 아람인의 이주와 결부시키는 설로 나뉘고, 양자는 학계의 쟁점이 돼 있다. 전자는 <마리문서>나 <누즈문서>등을 근거로 해서 족장들의 연대를 기원전 2천년대 전반의 어느ㄸ로 잡는가는 학자에 따라서 다르다. 이와 반대로 족장들의 연대를 기원전 2천년대 중엽이후로 주장하는 학자로는 미국의 C.H.골든 등이 있다.
그는 <누즈문서>와 창세기에 전해지고 있는 족장시대의 관습이 평행되고 있는 예를 들어서, 그리고 <우가리트 문서>를 근거로 해서 족장들의 연대를 아마르나=미케나이시대로 잡는다.
골든의 견해에 관해서는 뒤에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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