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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Joyfule 2014. 6. 9. 07:25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10. <족장설화>에는 어떤 역사 배경이 있는가
족장 설화는 전승되는 소재들을 제공한 시댜와, 그것이 전승된 시대 및 그것들이 문장으로 기록되고 편찬된 시대를 포함한 이른바 세 가지 성격의 시대의 기록이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 이하의 족장들은 이스라엘 민족의이름난 선조들이다. 즉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난 선조들이다. 즉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 자체가 족장들의 생애로 묘사되어 있으며, 이 족장 설화들의 핵심에 이스라엘 민족의 여명기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로 들어간 역사적 개요는 다음과 같다.

기원전 2천년대 초기부터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유목민 집단이 남러시아의 습지대에서 파상적으로 남하하여 서아시아로 침입하고, 그 일족은 아나트리이와 고원지대 하티를 정복하여 힛타이트 왕국(BC 1700경-1200경)을 세 우고, 아시아의 원주민 속에서는 이란 서쪽 경계의 산간에 있던 카시드인이 바빌로니아를 검거하여 그 땅을 약500년간 지배했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이북지방에 있던 원주민 후르리인은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을 개시하여 인도.이란어파의 일부인 미탄니인은 유프라테스강 중류 지역에 미탄니 왕국(BC 15-14세기 중엽)을 세웠다. 미탄니인이 기마술이 능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오리엔트의 대부분은 민족 대이동의 물결에 휩쓸려 불안 동요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이 불안 동요 가운데 소아시아지방이나 메소포타미아지방을 거쳐 시리아.팔레스타인지방에서 다시 남하해서 나일 강의 델타 지대까지 침입하여 그 땅의 아바리스를 근거지로 삼아 기원전 18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걸쳐서 1세기 남짓한 사이에 이집트의 태반을 지배한 것이 <힉소스>라고 하는 혼송 민족 집단이었다.


힉소스의 민족 구성은 분명하지 않으나 그들은 순수한 단일민족이 아니고 아시아의 후르리인을 기간으로 하고 거기에 옛부터 고대 오리엔트지방에 세력을 뻗치고 있던 셈어족 등을 포함하는 혼성 민족군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후르리인과 셈어족이 기원전 17세기 전후의 오리엔트 세계에 있어서 큰 세력을 차지하고 그 땅을 활동 범위로 했던 것이다.
그후 힉소스가 침입해서 1세기 후인 기원전 16세기 전반에는 이집트에서는 힉소스의 지배에 반항하는 이집트인의 세력이 발흥하고, 테베 출신의 아하메스가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를 점령하고, 뒤에는 북진하여 페니키아 연안까지 빼앗아 힉소스 세력을 완전히 타파했다.


이렇게 해서 아하메스 1세(BC 1567-47)는 이집트를 재통일하고 제 18왕조(BC 1567-1320)의 기틀을 잡았다.
이 해로부터 이집트 역사 뿐아니라 오리엔트 전체 역사의 새로운 시대로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는 아시아의 분열된 여러 나라 사이에서 신왕국 시대로 들어가서 이른바 제국주의적 침략을 해서 세계 제국을 건설하고, 약 200년 간 여러 나라의 우의에 섰다. 이 사이에 시리아.팔레스타인지방은 이집트 신왕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11. 할례는 언제 왜 시작했는가
창세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이름은 처음에 아브람이었으나, 후에 하나님 야훼는 아브람과의 계약을 맺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아브라함이라고 개명하였다.
하나님과 노아와의 계약의 증표는 무지개였고 아브람과의 증표는 할례였다.할례란 남자 생식기의 포피를 자르는 의식이며, 할례를 행하는 풍습은 옛부터 셈족이나 함족(이집트인) 사이에 보급되어 있었고 성인의 표시로 행해지고 있었으며, 고대 이스라엘인은 여기에 전혀 새로운 의의를 발견했다. 남자가 출생하면 8일째 날에 할례를 베풀고 명명하는 관습이 그것이고, 지금도 이것은 엄수되고 있다.


창세기 17장에서는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계약의 증표를 의미하고 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언어학적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개명은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의 갱신을 뜻하고, 또한 인간의 생애의 중요한 계기를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사명의 갱신도 뜻하는 것이다.


창세기 12장 1-4절에 기록돼있는 야훼가 아브람에게 내린 축복과 저주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을 말하는 족장 설화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175세의 천수를 누리고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의 손으로 아내 사라가 묻힌 막벨라 동굴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아브라함 부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서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이슬람 교도의 마음 속에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계속 살아있다.
아브라함의 계보를 사료 비판에 관계없이 창세기에서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12. 왜,약속의 땅<가나안>으로 떠났는가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셈으로부터 계산해서 10대째가 되며 데라의아들이고, 나홀과 하란의 두 동생이 있었다 가나안 땅으로 이사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갈데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으나, 메소포타미아 서북부의 도시 하란까지 가서 그곳에 주저앉게 되었다. 아버지 데라는 여기서 250세의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왕비라는 뜻)는 창세기 20장 12절(E사료층)에 의하면 아브람은 이복 누이동생이지만 그 출생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창세기 11장 27-30절의 기록은 혈통이 가까운 부족 사이의 이합 집산을 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래의 이름은 아마 원래는 부족의 이름이었던 것 같으나 확증은 없다.


아내 사래는 남편 아브라함과 함께 조카 롯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과 재산과 물건들을 가지고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향해서 출발했다. 그때 아브라함은 75세였다고 한다. 아브람 일족이 메소포타미아의 변경인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향한 것은 그곳에서 안주할 땅을 찾기 위해서였다. 얼마후 그들 일족은 가나안 땅에 도착하고 야훼를 위해서 제단을 쌓지만,다시 남하하여 네게브 지방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이 지방에 기근이 들어 아브람은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 이집트로 갔다. 아브람은 이집트에 들어가면서 아내 사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정말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하오.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당신의 남편이라고 해서 나를 죽이고 당신만 살려 둘 것이오, 그러니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 덕으로 죽음을 면하고 대접도 받을 것이오"(창세기 12장 11-13절).

과연 그들이 이집트로 들어가자 이집트인들은 사래의 미모에 매혹돼 버린다. 유대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아담의 아내 하와를 빼놓고 사래는 세계 제일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이집트 왕의 신하들도 절세 미인 사래를 보고 매혹되어 그녀를 왕에게 칭찬했기 때문에 그녀는 왕궁으로 불려 들어갔다. 사래가 왕궁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그 기간이 얼마나 됐는지 일체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아내 사래는 무사히 남편 아브람에게 돌아왔다.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의 양 문명은 종래 주장된 것처럼 두개의 다른 문명이 아니라 동부 지중해라고 하는 공통된 지반에 세워진 유사한 구축물이라는 것을 원사료를 구사해서 강조하는 C.H.골든은 족장 설화와 우가리트의 <케레트 서사시>와 호메로스의 <일리앗>의 세가지가 모두 빼앗긴 아내를 다시 찾는 모티브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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