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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정리

Joyfule 2013. 11. 6. 10:11

 

 

 이스라엘 역사 정리

 

 다. 가나안 침입과 사사시대 (BC 1235 - BC 1050 경)


이 시대의 사건들은 구약성경 여호수아, 사사기에 기록되었다.

BC1235-1200 경에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정복하여 12지파에게

나누어주었다. 가나안 정복할 때에 중요한 사건은 *여리고성의 함락과 그리고 아이성의 패전이다.

패전은 아간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는 하나 이 정복 전쟁의 의미는 하나님이 하시는 성전(聖戰)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기브온성의 전쟁으로 하나님은 태양을 하루종일 머물게 하여 초자연적인 이적을 행하여 전쟁에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정복 전쟁 때에 무자비한 살육을 하였다.

하나님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아래의 바알신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BC1200-1050 경에 사사는 선지자와 왕의 역할을 하며, 군사적 영웅을 말한다.

옷니엘, 드보라, 기드온, 입다, 에훗, 삼손 등 12명 정도이며 마지막 사사는 사무엘이다.

사사시대 이후는 하나님 중심의 신권 정치가 인권 정치로 넘어 가게된다.

사사시대는 궁전도 세금도 없었으며, 이 시대에 철기가 들어왔다.


[사사시대의 압박자와 활동한 사사와 기간을 중요한 것만 간추려 보았다.]


      압 박 자

   압박기간

  활동한 사사(지파)

  평화기간

   메소포타미아

     8년

    옷니엘 (유다)

    40년

   모압, 암몬, 아말렉

    18년

    에훗 (베냐민)

    80년

  블레셋, 가나안

    20년

    드보라 (에브라임)

    40년

  미디안, 아말렉

     7년

    기드온 (므낫세)

    40년

  암 몬

    18년

    입다 (므낫세)

    31년

  블 레 셋

    40년

    삼손 (단)

    20년


(여리고성의 성경역사)

여리고 성은 성경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간단히 열거하면

민 13장에 모세가 정탐으로 12명을 보냄. 수2:1에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2명의 정탐으로 보냄.

수 6:15-17절에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수 6:12-25에 여호수아의 나팔로 성이 무너졌으며, 기생 라합 만이 구조되었다.

수 6:26에 여호수아의 저주로 사람이 살지 않았고 개축하는 자도 저주를 받으리라는 예언함

왕상 16: 34에 이 예언은 5백년 후(BC 9세기)에 히엘이 개축하였다가 저주받았다.

왕하 25: 5-6에 이 성에 선지학교가 있어 엘리야와 엘리사가 방문하였고,

갈대아(바벨론)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잡아 바벨론으로 데려갔다.

느 3:2에 스룹바벨과 느헤미아가 데려온 유대인이 이곳에서 성을 쌓았다.

마20:29에 예수님이 두 소경의 고치셨다. 눅19:1-10에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의 방문을 받았다.

눅20:25-37에 예수님이 예화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하셨다.

이상이 성경에 나타난 여리고 성에 대한 내용이다.


(여리고성의 역사)

여리고(제리코-예리코)의 현재의 지명은 예리코이며 아랍인들은 '아리하'라고 한다.

예루살렘 북동쪽 36km, 요르단강과 사해가 합류하는 북서쪽 15km 지점에 있으며,

지중해 해면보다 250m 낮으며 사해는 해저 392m이다.

각종 과실수가 많은데 그중 종려나무가 많아 종려나무성이라 불렀다.

옛 여리고는 20세기초에 발굴되어 BC 5000년경의 집터의 유적을 볼 수 있다.

고대의 여리고 도시는 BC 9000년경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BC 4000년대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과 같이 여리고도 도시문화가 나타나 성곽도시가

되었으며, 성벽은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

BC 1900년경에 거주한 집단은 가나안족으로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되는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집과 가구는 유적 발굴작업을 통해 드러났다.

BC 13세기경 무너진 여리고성은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보다 남쪽 6km쯤에 있는 아브엘 알라이크라고

부르는 폐허이다.

이 곳은 헤로데스왕의 겨울궁전이 있던 곳이며 현재의 여리고는 비잔틴 시대의 터 위에 재건되었다.

현재의 여리고는 웨스트 뱅크에 속한 도시로 1949년 요르단이 점령하여 지금의 도시로 만들었으며,

관개 수로를 통하여 비옥한 저지대로 만들었어 열대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영국고고학연구소 소장 케니온이 발굴한 옛 여리고 성에서 섬기던 제단을 발굴하였다.

이 지역은 주위 보다 21m 정도 높고, 그 아래에 엘리사 우물이 있는데 이것을 '탈앗술탄(수량이 풍부한

앗술탄 샘)'의 수원이 있어 어느 곳에서도 보기 드문 맑은 물이 수로를 통하여 흐르고 있다.

요르단 영토로 있다가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후 줄곧 이스라엘이 관장하였다.

현재는 PLO의 자치지구로 되어있다.


(여리고성이 무너진 역사적 사실)

19세기부터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견을 시도하였고, 고고학자 가스텡과 여러 학자들은 여리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방법으로 정복되었다는 증거들을 찾아냈다.

고대의 전쟁은 오랫동안 성을 에워싸고 전쟁을 하기 때문에 식량이 바닥나게 되면 그때 항복을 하고

전쟁이 끝나게 된다.

그런데 발굴된 여리고성 내에는 많은 식량들이 남아있었다는 것은 단기간에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대영박물관의 탐사팀에 의해 여리고성은 여호수아시대에 강도 6.0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파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지질구조가 발굴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여리고 성의 성경적 함락이 매우 신빙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지리학자는 탄소동위원소법에 의하여 추정 연대 BC 14세기에 침식 작용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침입이 BC(14-13)세기로 추정됨으로 비슷한 시기가 되는데 여리고 성 침입 할

때에 갑자기 침식작용이 잃어나 성이 파괴된 것으로 생각하면 성경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룻기는 다윗의 계보를 알리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예수의 계보를 알리는 일이기도 하다.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에 두 정탐꾼을 도왔던 라합은 갈렙의 아들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만난 룻과 결혼하여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위대한 다윗(다비드=David)을 낳으니 룻은 다윗의 증조모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베들레헴이 생각되어 지는데, 이유는 이곳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160Km나 떨어진 나사렛에서 살고 있던 요셉이 이곳까지 온 연유는 로마황제 아구스도(옥타바누스)가

호적을 하라는 명령 때문이다.

명령에 의하여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1100년 전에 조상 보아스와 룻이 살았던 다윗이 고향 베들레헴으로

임신한 마리아를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목자 뜰은 1.1Km 떨어진 곳에 있다. 


 라. 통일 왕국시대 (BC 1050 - BC 922 경)

(우리나라는 BC 11세기 때 중국 주나라 호왕이 '기자'라는 사람을 보내어 단군을 몰아내고

'기자조선'을 세우고 단군은 황해도 산속에 숨어 1908세에 산신이 되었다는 설화 역사이다.

설화 이야기로는 단군이 솔로몬보다 오래 살았다. 헬라는 신화와 호머의 역사시대이다.)

신정정치가 무너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왕의 제도를 반대하였다.


1대 사울 (BC 1050 - BC 1002 경)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4가지 잘못을 하였다.

1) 교만으로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지냈고,

2) 군대식량을 삭감하였으며,

3) 장군 요나단 사형하였고,

4) 고의로 하나님께 불복종하였다.

사울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아 말년은 불행하였다.


2대 다윗(BC 1002 - BC 962 경)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왕으로 아브라함의 14대손이다.

골리앗과 싸워 이겼으며, 골리앗은 거인이라 큰 것은 이 이름이 사용되며, 예로 '골리앗 크레인'이 있다.

그는 당대에 가장 강력한 왕이며, 신권정치와 인권정치를 도입했다.

지금도 유대인은 '메시아'하면 이 왕을 생각하며, 메시아가 다윗 왕국을 재건하여 줄 것을 갈망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였고, 성가대를 창설하였으며, 법궤를 운반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였고, 예루살렘을 새 종교중심지로 만들었다.(삼하 5:7)

성전 지을 준비를 하였으며, 전쟁에 처음 말을 사용하였다.

그도 단점은 있어 우리아 아내를 취하기 위하여 우리아를 전방에 보내어 죽게 하였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그의 죄로 딸이 죽었으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은 도망 다니며, 망신을 당하였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으로 그 죄값을 치렀다.

밧세바에게서 아들을 얻으니 그가 솔로몬이다.

다윗의 아내이며, 사울 왕의 딸인 미갈이라는 여인이 있는데,

남편의 나체를 흉보다 불임의 저주를 받았다.

그는 정당하게 살아있는 두 남편을 섬긴 성경에 유일한 사람이다.

두 번째 남편 밭디엘은 미갈을 다윗이 데려 갈 때 울며 따라 갔다고 한다.

다윗은 왕이 될 때에 불레셋의 도움을 받았다.

불레셋은 사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대결의 상태로 있다.

불레셋(팔레스타인)은 지금도 뉴스에 자주 등장하니 조금 다루어 본다.

 

팔레스타인(philistine-그리스어로 '팔라이스티나') [고대 중동지도]

불레셋의 히브리어 '플레셰'어원인'필리스티아'는 이집트 북동쪽 작은 연안지역을 가리킨다.

팔레스타인은 '펠리시테인의 땅의 뜻'은 동일어로 민족과 지역(땅)의 개념으로 같이 쓰인다.

이 지역을 유대인들은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이라고 부른다.

불레셋은 함의 자손이나 어디서 왔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이집트를 공격하다 패하여온

이방인으로, 페니키아(베니게)같이 바다를 무대로 삼아 활동하든 민족으로 생각한다.

AD135년 하드리안 황제는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유대지역의 이름을

'팔레스타인'으로 바꾸어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자치지구에 사는 사람과 이 지역 사는 난민을 지칭하며,

이스라엘의 지배하는 지역에 사는 사람은 이스라엘 아랍인이라 따로 구별하여 부른다.

넓게는 현재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 사는 전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팔레스틴 사람만 사는 지역을 말하기도 하는데, 현재의 지역을 나누기는 무척 복잡한다.

건물을 나누거나, 도시를 나누기도 하고, 지역을 나누기도 한다.


이스라엘이란 바다 안에 팔레스타인란 섬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가나안 정복시 철기를 가지고 있어 여호수아가 점령하지 못한 곳이며,

가나안 정복 때 위험을 느끼고 유대인을 공격한 민족이다.

불레셋이 유대인의 법궤을 빼앗아 7개월 동안 가지고 있을 때 큰 재앙이 내려 재빨리 돌려주었다.

삼손이 불레셋 사람 들릴라에 속아 두 눈이 빠진 후에 하나님께 간구하여 이스라엘을 구하였다.

다윗이 싸워 이긴 골리앗도 불레셋 사람이다.

불레셋이 철기를 먼저 다루었고, 이스라엘에 전하여 준 것 같다. [팔레스타인 참조]


이 지역에 살던 가나안 7족

1) 가나안(시돈) 2) 아모리 3) 브리스 4) 여브스 5) 히윗 6)헷(힛타이트) 7) 기르가스(길갈)이다.

이들은 정복되었거나 동화되어 유대인과 한민족으로 운명을 같이 하였으나

불레셋 만은 따로남아 지금까지 대립하고 있다.


3대 솔로몬(BC 962 - BC922 경)

우리는 그를 지혜의 왕으로 잘 알고 있다.

아기의 어머니가 둘이어서 아기를 둘로 나누어 주라고 하자 아기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 친어머니가

포기함으로 누가 친어머니인가를 알아 낸 것과 생화와 조화를 가려내는 방법으로 나비가 찾아오는

원리로 알아낸 것 등이다.

지혜를 배우기 위하여 멀리 에티오피아 여왕 시바(스바)가 찾아 왔다.[메넬리크 2세참조] [아라비아참조]

솔로몬은 여왕과 내기를 하였는데 솔로몬의 허락 없이는 어느 것도 취하면 게임에 지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짠 음식을 대접하였고, 그녀는 허락 없이 물을 먹었다가 게임에 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의 지혜를 담은 책이 잠언서이다.


다윗(군인)과 솔로몬(건설자)시대는 이스라엘은 세계최강국이었으며, 그때 애굽, 앗수르, 바벨론은 약했다.

그는 성전과 궁전을 건축하였고, 무역(각 나라와 페니키아=베니게 등), 금속, 건축에 뛰어난 왕이다.

예루살렘은 가장 화려한 성읍이며, 성전은 가장 장엄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도 잘못이 많았는데 늙어 첩들이 가지고 온 신들의 신당을 건축하였고,

정치에 잡신을 도입한 것은 성서의 슬픈 장면이다.

강제노동과 중과세는 북부 반란의 원인이 되어 죽은 후 나라가 분열하게된다.

그는 성경 잠언, 전도서, 아가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