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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정리

Joyfule 2013. 11. 7. 09:36

 

 

이스라엘 역사 정리

 

 

마.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대(BC 922 - BC 586 경)


1. 2왕국으로 분열된 원인 [고대 이스라엘 지도]

BC922년 솔로몬이 죽은 후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어 받았다.

이스라엘과 여로보암이 선왕보다 노역을 가볍게 하여달라고 청원하였다.

왕에게 늙은 관원들은 허락하라고 청원하고, 젊은 관원들은 더 가혹하게 할 것을 청원하였는데

왕은 젊은 관원의 말대로 하였고, 10지파는 다윗의 자손을 거부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다.

왕상11:30-31에 선지자 아히야는 그가 입은 새 옷을 찢어 12조각으로 만들어 10조각은 여로보암에게

주었는데 아히야의 예언대로 2왕조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120년(사울40+다윗40+솔로몬40) 존속된 통일 왕국은 분열되었으며,

남은 2개 지파인 유다와 베냐민은 남 왕조 유대(유다)왕국이 되었다.

북쪽왕국은 1대 여로보암부터 19대 호세아 까지 이며,

남쪽왕국은 4대 르흐보암부터 23대 시드기야까지이다.


2. 북쪽 이스라엘왕국의 간략사

북쪽은 온난하고 수량이 풍부하여 곡식, 포도, 올리브 등이 풍부하였다.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는 망할 때까지 섬기여 하나님 보시기에 북쪽 모든 왕들은 모두 악하였는데

가장 악독한 왕은 아합이고, 아주 나쁜 왕은 오므리이다.

많은 왕이 쿠테타에 의하여 왕위를 쟁탈했으며, 후회한 왕은 있어도 회개한 왕은 없었다.

수도는 처음에는 디르사에 있었으나 오므리가 사마리아로 옮긴 후 망할 때까지 수도였다.

BC734년 18대 베가 왕 때 앗수르왕 디글랄벨레셀(다른 이름은 '불')이 북이스라엘과 시리아를

정복한 후 모든 주민을 포로로 데려갔으며, 이를 제1 갈리리 포로라고 한다.

사마리아 땅과 이스라엘 왕국만 남았다.

제2 갈리리 포로는 19대 마지막 왕 호세아 BC722년 사마리아는 완전 함락되었고,

왕과 주민은 앗수르로 끌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다.

이것을 '잃어버린 10부족'이라고 부른다.[앗수르 참조]

남은 자는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혼혈아들이 사마리아 조상이 되어 유대민족 으로부터 배척받고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이유이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대화에서 알 수 있다.(요4:7-29)

선지자는 아히야,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이다.


3. 남쪽 유대왕국의 간략사

남쪽은 땅이 건조하여 메마르며, 주된 농업은 목축이었다.

2왕국으로 나누어 질 때에 남은 2개 지파 가운데 유다가 대표적이 되여 이 나라의 이름이

유다(유대) 왕국이라 하게 되었으며,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나쁜 왕은 르흐보암, 아비얌, 여호람, 아하시야, 여호야긴, 시드기야이며,

가장 나쁜 왕은 아달랴(악마적), 아하스(악함), 므낫세, 아몬, 여호야김(악함)

가장 좋은 왕은 히스기야, 요시아이고 나머지 왕들은 대부분 좋았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유대인'이라는 부르는 대명사가 되게 되었다.

유다인(Judah)의 이름에 '쥬다(Judas)'가 많은 것도 '유다'에서 왔다.

남왕은 선한 왕이 많았고, 반란도 적었다.

왕위는 계승에 의하여 거의 이루어지고, 종교 개혁하여 우상도 파괴하였다.

선지자는 이사야, 하박국, 예레미아, 스바냐, 에스겔 등이 활약하였다.  


 

4. 2왕조 역사의 기록이 있는 성경

2왕조 역사의 기록이 있는 성경은 열왕기상, 하는 남, 북 왕조를 다 기록하였으나

북 왕조 기록은 이곳에 있으며, 역대기하는 유대 왕조의 기록이다.

열왕기 상

1-2장, 다윗의 노년과 솔로몬이 왕이 되는 과정을 기록

3-11장, 성전건축과 솔로몬 왕국과 부인에 대한기록

12-22장, 북 왕국은 여로보암-아합까지이고, 남 왕국은 르흐보암-여호사밧 까지이다.

열왕기 하

1-17장: 북 왕국은 (아하시야-마지막왕 호세아까지이고, 남 왕국은 여호사밧-아하스까지이다.

18-25장: 남 왕국은 히스기야-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이다.

역대기 하

1-9장: 솔로몬의 성전건축과 지혜에 대한기록

10장-36장: 남(유대)왕국 기록은 르흐보암-시드기야까지이다.


참고로 사무엘 상하는 사울과 다윗에 대한 것을 기록하였으며, 역대기 상은 다윗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그리고 왕의 재위기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였다.

1. 모든 연대는 할레이 저서 '성서 핸드북'을 인용하였다.

2. 재위기간의 연대가 자료마다 다르다.(약 2.500년 전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것도 대단한 것이다.)

3. 재위연대가 겹치는 경우는 섭정기간과 성경에 기록된 통치기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 재위연대가 없는 연도는 자세한 것은 모르나 재위가 늦어졌거나 왕이 없었을 경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대략 그 시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1] 북 이스라엘(BC 922 - BC 722 경) [고대 중동지도]


1. 여로보암(BC933-BC911) [고대 이스라엘 지도]

느밧의 아들로 밀로를 건축할 때에 감독이었다.

솔로몬의 가혹한 정치 때문에 선지자 아히야는 장차 이스라엘 10지파의 왕이 된다는 예언을 들었다.

솔로몬이 이 사실을 알고 죽이려하여 애굽으로 도망가 바로 시삭에게 있다가 솔로몬이 죽은 후에 돌아왔다.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정치를 기회로 삼아 북방의 10지파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되어 22년간 재위하였다.

(왕상 12 :1-20) (대하 10:1-19)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장래에 자기를 배반할 것을 염려하여 선지자 아히야의 반대를

물리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는 북방의 단에 또 하나는 남방 벧엘에 두어 정치와 더불어 종교도

분립하게 하였다.(왕상 12:25-33)

이것은 자기와 백성을 하나님에게 배반하는 죄를 범하게 한 것으로 벌을 받아 아들 아비야가 죽었고,

아히야의 예언대로 그의 혈통은 아들 대에서 망하였다.(왕상11-15장)

북 왕국의 왕들 모두가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악을 행하여 왕상14: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강(유프라테스) 너머로 흩으시리니'라고 예언한 것이 BC722경에 이루어졌다.


2. 나답(BC911-BC910)

여로보암의 아들로 2년간 통치 중에 아버지와 같은 죄를 짓다가 불레셋에게 점령된 깁브돈 성에서 부하

바아사에게 암살되었고 식구모두도 죽임을 당하였다.(왕상15: 25-27)


3. 바아사(BC910-BC887)

천한 신분인 그는 폭력으로 왕이 되어 24년 통치하였으며, 디르사를 수도로 정하였다.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과 같이 파멸될 것이 예언되었다.

앗수루와 동맹하여 유대를 공격하여 라마성을 건축하려고 하였으나 남 왕 아사는 아람 왕과 벤하닷과

동맹하여 이스라엘 4개의 성을 점령하여 바아사는 라마성 건축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라마성의 건축 재료를 가져다가 게바와 미스바 2성을 건축하였다.

(왕상15:33-34, 16: 1-4, 렘41: 9) (대하16: 1-6)

4. 엘라(BC887-BC886)

바아사의 아들로 2년 통치하였으며, 향락을 즐기다가 취중 신하 시므리에게 암살 당하였고,

식구모두도 죽임을 당하였다.(왕상16: 8-9)


5. 시므리(BC886)

병거 대장인 그는 엘라를 살해하고 디르사에서 자칭 왕이라고 하였으나 다른 편이 즉시 오므리를 왕으로

삼아 디르사를 점령하였다.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서 죽은 것은 왕이라고 자칭한지 겨우 7일째였다.

그는 베냐민 지파로 사울의 왕위를 회복하려고 하였다.(왕상16: 8-20)(대상8:36)


6. 오므리(BC886-BC875)

엘라의 군대장관으로 시므리를 죽였으나, 또 다른 편이 디브니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여 디브니를 죽였다.

왕이 된 후 4년간은 내란에 시달렸고, 6년 되던 해에 사마리아 성을 건축하여 수도로 삼았다.

유대를 정벌하기 위하여 모압과 화친하고 베니게와 동맹을 맺는 동시에 아들 아합을 두로 왕녀 이세벨과

혼인시켰다.

이세벨이 가지고 온 바알 신을 백성이 섬기기 시작하여 오므리의 왕조가 붕괴되는 원이 되었다.

그는 12년간 재위 중에 6년은 디르사에서 나어진 6년은 사마리아에서 통치하였으며,

이후의 왕들은 사마리아에서 통치하게 되었다.(왕상16: 9-35)


고고학적 자료

오므리의 강대함은 아다드니라리 비문에 이름이 나온다.

살만에셀(샬마네세르-샤르마네세르) 3세의 검은 오벨리스크 비문에 '오무리의 아들(후계자),

예후의 조공인 금, 은, 금주전자, 금잔, 주석, 왕홀(王笏), 창을 나는 받았다'를 기록했다.

BC850년의 모암비석에 '나 모압왕 메사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는 여러 날 동안 모압을 억압했고 ...'라고

기로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땅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마리아를 최초로 건설한 건설자이기도 하다.


7. 아합(BC875-BC854)

오므리의 아들로 2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아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다.(왕상16: 29-33)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사려고 하였으나 나봇이 거절하여 그를 죽이고 빼앗은 고로

엘리야가 그 집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다.(왕상21: 1-29)

정욕에 빠진 여인의 대명사인 그녀는 바알을 숭배하여 850명의 남창을 아스도렛에 두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인 가장 악독한 왕후이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 그리고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갈멜 산에서 엘리야와 대결에 승리하였고,

그들 모두를 기손 시냇가에서 죽였다.(왕상18장)

아람왕 벤하닷과 3번 싸웠다. (벤하닷은 폭풍의 신 '하닷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첫 번째는 승리하였다.(왕상 20: 1-21)

두 번째는 벤하닷을 사로잡고 전에 잃었던 성읍을 되찾았으며, 다메섹에 아합의 거리(상가)를 수축할

것을 약속 받았고, 벤하닷을 돌려보냈다.(왕상 20: 22-34)

세 번째는 남 왕 여호사밧과 함께 싸웠다.

전쟁에 나가기 전 2왕은 예언자들에게 예언을 받았는데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는 전쟁에서 승리를

예언하였고, 하나님의 선지자 미가야는 나아가지 말 것을 예언하였으나,

거짓 선지자의 말을 따르다가 전쟁에 대패하여 아합은 활에 맞아 죽었고, 여호사밧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엘리야의 예언대(왕상 21:19)로 나봇의 피를 핥은 개가 그의 피도 핥았다.(왕상 22: 1-40장)

 

<살만에셀 3세의 검은 오벨리스크> 


★ 고고학적 자료

아합은 살만에셀 3세(BC860-825)의 비문에 '나는 이스라엘 아합 왕의 전차 2.000대와 군인 10.000명을

무찔렸다'라고 기록하였으며, '오무리의 아들(후계자), 예후의 조공인 금, 은, 금주전자, 금잔, 주석,

왕홀(王笏), 창을 나는 받았다'를 기록했다.

아합의 '상아궁'을 1908, 1931년에 발굴하였는데, 그 벽의 표면은 상아로 되어 있으며, 정밀하게 조각된

수천개의 화관, 액자, 옷장, 의자의 조각도 있었으며,

특이한 것은 이세벨의 눈 화장 도구(왕하9: 30)로 화장품을 섞는 접시와 작은 돌합을 발견하였는데

돌합에는 검은색, 초록색, 빨강색 등을 담을 수 있는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이 있고 그 가운데 패인 곳은

이것을 섞는 자리라고 한다.


*바알(Baal)과 그의 아내 아스도렛(다른 이름 아세라)[고대중동지도]

고대 시리아 셈족 고유의 남신 '주(主)'신으로 '소유자'라는 뜻이다.

페니키아 신화에 각 도시의 수호신으로, 불레셋, 가나안, 네게브, 지방에서 섬기였으며,

태양의 신 '*엘' 다음 가는 신이다.

곡식, 과일 가축 등의 결실과 성장을 주관 하는 신으로 숭배한다 .

신전은 전지역에 있었고, 아세라 여신은 자연의 생식력을 의인화한 것으로 제사방식은

치스러운 술잔치에 여사제는 신전의 창녀이었고, 소돔의 남자 사제는 신전의 남창이었다.

여사제를 성경에 기생이라고 하였는데, 그 중에 라합이 있다.

행위는 창녀 같았으나 오늘날처럼 부끄러운 직업이 아니고 존경받는 자리였다.

생식력을 위한 신전은 음란과 악의 중심지이었고, 성욕을 증대하기 위해 과장된 성기를 붙었다.

가나안 땅 전체가 소돔과 고모라 임으로, 유대인은 유혹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것들과 단절시키기 위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잔인한 방법으로

여호수아에게 정복하는 주민을 모두 죽이라고 한 것은 이 길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기초희생'이라는 명분으로 집을 지을 때 자기 아이를 죽여 집에 바르고,

제사에 제물로 장자를 죽이는 제사장들은 공식적인 살인자였다.

여호수아와 엘리야(왕상18:40) 그리고 예후(왕상:9-10)가 바알을 근절시키기 위하여 왜 그렇게

무자비했는지 이해 할 수 있다.


★ 고고학적 자료

므깃도를 발굴하다가 아합왕 시대 층의 아스도렛 신전 부근에서 바알 숭배으로 희생된 아이의 유해가

담긴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엘(EL)

고대 시리아 셈족이 섬기는 엘과는 성격이 다른 신으로 유대인의 하나님인 엘(EL)에 대한 이야기

하기로 한다. 여호와, 야훼, 엘로힘, 엘로이, 로드, 갓, 데오스 등은 하나님의 이름들이다.

엘(EL): 힘을 나타낼 때의 이름, 이 문자가 들어가면 하나님과 연관된다.

벧엘- 하나님의 집,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등이다.

-.여호와(Jehpvah): 함부로 부르면 불경죄가 된다. 일년에 한번만 제사장이 제사 때 부름.

-.야훼(Yahweh): '스스로 있는 자'의 뜻, 구약에 6700번 사용,

-.엘로힘(Elohim): 아주 분명하게 유일신을 뜻함. 위엄과 천사의 뜻도 포함

-.엘로이(Elroi): 감찰하시는 분, 급할 때 부름, 창21:16,17

-.로드(Lord): 주님,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영문 성경은 전부 이렇게 번역되었다.

-.갓(God): '엘'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데오스(Θeos): 복수(複數)(3위 일체)의 뜻, 하나님의 약자 Θ의 표기는 여기서 왔다.

 

엘란트라 이야기

이스라엘에 가면 엘란트라를 자주 볼 수 있어는데, 전부 'EL' 글자는 없었다.

이유는 '엘(EL)' 자는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요청에 '엘' 자를 빼고 수출한데서 기인한다.

또 우리를 보면 아이들이 '가야'라고 합창하여 소리쳤다.

그 연유를 몰랐는데 '기아 자동차'에서 선전 할 때 '기아'는 설사의 뜻이 있어 '가야'로 바꾸어 선전

하였고, 선전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어 모르는 아이가 없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한국인만 보면 반갑다는 인사로 '가야'라고 합창을 하는 것이었다.

 

*엘리야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 신과 대결하여 승리하여 기손강에서 바알선지자를 죽였으나,

이세벨의 회심에는 실패하여 호렙산에 도망가 40일 금식기도중에 '하나님의

뜻이 초자연의 표적에 있지 않고, 조용히 예언자(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뜻을 실현시킨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왕상19장)

이 대목에서 옛날 같이 바다가 갈라지고 만나가 지금에는 없는지 우리의 궁금증을 덜게 된다.

그리고 이 후로는 선지자 활동시대를 열게 된다.

과부의 아들 살리고, 불과 물을 하늘에서 내리게 하였고, 요단강물도 갈랐다.

모세처럼 죽으려고 느보산에 갔다가 불수레를 타고 승천하였다.


8. 아하시야(BC855-BC854)

아합의 아들로 모압 정벌을 나가다가 왕궁서 낙상하여 병들었으며,

병이 낫을 수 있는지를 바알세불의 점장이에게 물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의뢰치 않음을 책망하며 죽을 것을 예언하여 재위 2년째 되는 해에 죽었다.

아하시야는 부하 50명과 그들 부장를 엘리야에게 보내었으나 하나님의 불에 내려와서 부장과

그 오십 인을 불살랐으며, 또 보냈으나 그들도 불살랐다.(왕상22: 49-53, 왕하1장)


9. 여호람(일명 요람, BC854-BC843)

아하시야는 아들이 없어 아합의 아들 요람이 왕위에 올라 12년간을 통치하였다.

아합 왕에게 조공을 바치던 모압 왕이 배반하여 에돔과 함께 진군할 때에 물이 없어 고생하다가 선지자

*엘리사에게 구하여 많은 물을 얻어 모압을 정벌하였다.

그가 타락하는 것을 엘리사가 책망하자 도리어 죽이려고 하였다.(왕하6: 30-33)

하나님께서 저를 아람(수라아) 군대에서 구원하셨다.(왕하7장)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아람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이스르엘에 머물다가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하여

그의 시체는 나봇 밭에 던져졌다.(왕하 9: 14-26)

왕후 이세벨도 예후의 명령을 받은 내시가 궁에서 내던져 죽었으며,

시체는 개들이 대부분 먹었다.(왕하 9장)

[남 왕 아하시아 참조]


★ 고고학적 자료

모압의 배반은 모압 비석에 기록되었는데 '나 모압왕 메사는 이스라엘에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이 기념비를 그모스(모압 신)에게 바친다.

이스라엘 왕 오므리는 여러 날 동안 모압을 억압했고, 그의 아들(아합)이 뒤를 이었으나 나는 그를

축출하고 여러 성읍을 빼앗으며, 전리품은 그모스에게 여자는 아스달 신에게 바쳤고,

이스라엘 포로로 고르하를 건축했다'라고 기록하였다


 *엘리사

선지자 엘리사는 여호람에서 요아사까지 활동하였으며, 그는 엘리야의 겉옷을 입은 제자이다.

그의 기적은 왕하 4-7장에 기록되었는데 요단강을 갈랐고, 과부의 기름이 증가하였고,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렸고, 독이든 음식을 제거하였으며, 빵이 증가하였고,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쳤고,

전차로 사마리아를 구출하였고, 시리아 군대를 물리 쳤고, 도끼자루를 물위로 떠오르게 하였으며,

보리떡 20개로 100명이 먹고 남는 등의 기적을 많이 행하였다.

아람의 왕 하사엘과 예후에게 기름 부어 왕이 되게 하였으며, 곡물가격이 하락할 것 등의 예언도 하였다.

그는 벧엘, 여리고, 길갈 등에 선지자 학교를 세운 것 같으며, 제자로 요나와 아모스를 가르친 것 같다.

같은 시대의 남 왕국 선지자는 요엘인 것 같다.


[선지자 학교]

사무엘은 제사장과 왕의 도덕적 타락을 억제하기 위하여 선지자학교 시작한 것 같으며,

사무엘상 19: 20절에 의하면 라마에서 시작한 것 같다.


★ 고고학적 자료

왕하 8:13절 하사엘에 관한 사건은 살만에셀 3세(BC860-825)의 비문에 기록되었는데 '나는 벤하닷과

싸워 그를 패배시켰다. 누구의 아들인지 모르는 하사엘이 그의 왕위를 계승했다'라고 기록하였다.


10. 예후(BC843-BC816) [고대 이스라엘 지도]

그는 아합의 경호원이며, 요람의 군대장관이었고, 엘리사는 제자를 보내 북 왕국의 왕으로 기름부고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다 전멸하라고 하였다. (왕하 9: 1-13)

예후는 반란을 일으켜 북 왕 요람과 남 왕 아하시야도 죽이고, 아합의 부인 이세벨도 사살하였으며

(왕하 9: 14-37), 아합의 아들 70명과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를 하나도 빠짐 없이 죽었다.(왕하 10: 1-28)

다윗의 자손인 여호람의 아들이며, 남 왕 아하시야의 형제42명도 죽었다.(왕하 10: 12-14)

그러나 그도 율법을 준행하지 않았고,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 섬기는 일을 금하지 않았다.(왕하 10: 29-31)

그는 28년간을 통치하였다.

★ 고고학적 자료 아합을 참조할 것


11. 여호아하스(BC820-BC804)

예후의 아들로 17년간 재위 중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은 아람 왕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을 보내어 백성들이 많은 고통을 당할 때에 그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벗어났다.

우상(금송아지)을 섬기며,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두었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백성이 멸절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였으며,

군대도 전멸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10대와 보병 만 명만 남았으며, 17년간 통치하였다.(왕하 13: 1-9)


12. 요아스(여호아스, BC806-BC790)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되어 16년간 다스리며 우상(금송아지)을 섬겼다.(왕하 13: 10-13)

그는 엘리사가 임종시 방문하여 아람에게 3번이길 것을 예언 받아 예언대로 3번 승리하여 아버지가

잃었던 성읍을 되찾았다.(왕하 13: 14-21)

에돔의 세일 자손의 신들에게 분향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남 왕국 아마샤가 에돔에 승리한 것에

용기를 얻어 요아스를 침공하였다가 도리어 벧세메스 전쟁에서 사로잡히게 되었다.

요아스는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에서 모든 금은과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왔다.(왕하14: 1-16)(대하 25:17-25) [남 왕 아마샤 참조]

 

13. 여로보암2세(BC790-BC749)

요아스의 아들로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41년간 다스렸으며, 우상숭배는 계속되었다.

(왕하 14: 23-29)

그의 치세 때 이스라엘은 가장 융성하여 영토를 회복하기를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다.

※ 이 시대에 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구원하신다고 예언하였다.(호 1: 1, 7, 3장)

선지자 아모스는 우상숭배, 사치, 방탕, 도덕적 부패로 멸망을 예언하였다.(암 2: 6, 5: 27, 6: 14)


14. 스가랴(BC748)

여로보암 2세의 아들로 6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왕하 15: 8-12)


15. 살룸(BC748)

무정부 상태로 있을 때에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되어 1달 동안 다스리다가 므나헴에게 살해되었다.

(왕하 15: 13-16)


16. 므나헴(BC748-BC738)

냉정하고 잔인한 그는 살룸을 살해하고 왕이 되어 10년간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앗수르 왕 불이 치려 왔으나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 되돌아갔다. (왕하 15: 17-22)

※ 이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는 호세아로 그의 악정을 기록하였다.

★ 고고학적 자료

디글랏 빌레셀의 비문에 '사마리아의 므나헴으로부터 나는 조공을 받았다'라고 기록하였다.


17. 브가히야(BC738-BC736)

므나헴의 아들로 왕이 되어 2년간 다스리며, 그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장관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왕하 15: 23-26)


18. 베가(BC748-BC730)

그는 세력 있는 군인으로 이스라엘 왕이 되어 20년간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 9지방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겨갔다.

이것을 제1 갈릴리 포로라 한다.

세아가 반역하여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왕하 15: 27-31)

유대왕 요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동맹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왕하 16: 5)

★ 고고학적 자료

디글랏 빌레셀 3세(BC 746-727) 비문에 '오므리 땅(이스라엘) 사람들을 재산과 함께 앗수르에 끌고

왔다. 그들의 왕 베가는 그들이 전복시켰다. 나는 호세아를 세워주었다.

그는 나에게 금 10달란트와 은 1.000달란트를 바쳤다'라고 기록하였다.


19. 호세아(BC730-BC721)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왕이 되어 9년간 다스리며, 여호와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고

배반하였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가 올라와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사마리아를 3년간 포위하였고,

사르곤이 점령한 후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는데 이것을 제2 갈리리 포로라고 한다. (왕하 17: 1-6, 18: 9-12)

이 때에 사마리아 여인들은 앗수르 군인들 또는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혼혈 아이들이 사마리아인의

조상이 되었다.

 

★ 고고학적 자료

사르곤 2세의 비문에 '앗수르왕...사마리아에 가서 3년을 에워쌌더니...드디어 사마리아를 취하고 사람을

잡아 앗수르에 이르러...바벨론으로부터 사람을 보내어 사마리아의 모든 성읍에 두니라'라고 기록했으며,

또 다른 기록에는 '나는 첫 해에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포로 27.290명을 잡아왔다.

조공을 바치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을 사마리아에 살게 하였다'라고 하였다.(왕하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