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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정리

Joyfule 2013. 11. 8. 09:47

 

 이스라엘 역사 정리

  

[2] 남(유대)왕국(BC933-BC586) [고대 이스라엘 지도]


4. 르흐보암(BC933-BC916)

사울, 다윗, 솔로몬 계보를 이어 받았음으로 통합 4대가 된다.

솔로몬의 왕비 나아마(모압 여인)의 소생으로 세겜에서 왕위에 올라 17년간을 통치하였다.

그는 어리석어 젊은 관원들의 말을 듣다가 유다와 베냐민 2지파 만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남 왕국 유대왕국이다.(대하 10장)

군사를 일으켜 여로보암을 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이 형제와 싸우기를 원치 않아 무산되었으나,

침입을 방비 성읍은 많이 건축하였다. (대하 11: 1-12)

여로보암이 우상을 세우고 레위 제사장을 해임하여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은 유대로 돌아왔다.

3년 동안은 하나님을 잘 섬기어 강성했으나, 그가 여호와의 버린 죄로 애굽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치고

여호와의 전(殿)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도 빼앗아 갔다.

(대하 12: 1-12)(왕상 14: 25-28)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린 죄로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

17년 재위기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다.(왕상 14: 29)

★ 고고학적 자료

시삭의 유대침입의 기록은 카르낙에 있는 아몬 대신전 남쪽 벽에 있는데 '팔레스틴 성읍 156개를

아몬 신에게 바쳤다'고 기록하였다. 므깃도에서 시삭이 세웠던 기념비 조각이 발견되었다.

다니스에서 발견된 시삭의 미이라는 순금을 입힌 은으로 만든 관속에 있었는데 이 금이 예루살렘에서

약탈해온 솔로몬의 금으로 추정된다.


5. 아비얌(야)(BC915-BC913)

아버지처럼 모든 죄를 행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지만 다윗이 하나님 일을 정직하게 행한

덕분에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다.(왕상 15: 1-8)

북 왕과 전쟁 때에 아비얌의 군사는 40만이고, 여로보암 군사는 80만이었으나, 하나님의 율법을 잘

이행하였고, 또 하나님을 의지한 아비얌 군대가 대승하여 적군 50만 명을 죽였다.(대하 13:1-20)

그의 통치기간은 3년이다.


6. 아사(BC912-BC872)

아비얌의 아들 아사가 왕이 되어 41년 동안 재위 중에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 상을 만들었을 때에 태후의 위를 폐하기까지 하면서 모든 우상을 없앴다.

그는 북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었는데 바아사가 유대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였다.

아사는 은, 금 모두를 벤하닷에게 보내어 동맹을 맺어 북 왕국 성읍들을 치게 하였다.

바아사가 이 소식을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로 돌아갔으며,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으로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다. (왕상 15: 9-24) (대하16: 6) [북 왕 바아사 참조]

<카르낙에 아몬 대신전 남쪽 벽에는 시삭의 부조가 있음>


7. 여호사밧(BC874-BC850)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대의 왕이 되어 재위 25년 동안 아버지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나 북쪽과 평화를 유지하려고 북 왕 아합과 사돈을 맺은 것은 불행이었다.

(대하 20:31-34)

그는 군중 교육제도를 만들어 제사장과 레위에 정기적으로 순회교육을 하였고,

전국에 재판소를 만들었으며, 많은 군대를 양성하여 더욱 강대하였다.

그는 아합과 동맹하여 길르앗 라못을 치다가 실패하였으며, 아합은 이 전쟁에서 죽었다.

(왕상 22: 29-38) [북 왕 아합 참조]

여호사밧은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몇 마온(세일 산) 사람과 함께 와서 치고자 할 때에 왕은 여호와께

간구 하였드니, 자기들끼리 살육하여 자멸하였다.(대하20: 1-30)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 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왕상 22: 48)(대하 20: 35-37)

8. 여호람(요람, BC850-BC843)

여호사밧의 장자를 악독녀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결혼시켜 그녀가 섬기던 바알이 유대왕국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우상을 섬기고,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 하게 하며,

그 동생들을 죽인 죄로 하나님은 창자가 빠져 나오는 병에 걸려 죽게 하였다.

백성이 그를 열왕의 묘에 들어가지도 못하였으며, 분향도 하지 않았다.(대하 21: 1-20)

그의 통치기간은 8년이다.


9. 아하시야(일명 여호아하스, BC843)

여호람의 아들이며, 모친은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이다.

이로써 다윗의 계보에 오역이 접목되었으며, 그를 여호아하스라고도 하는데 모친을 본받아 악을

행하였다.(왕하 8: 24-29, 대하 21: 17)

외숙인 북 왕 요람과 함께 아람(수리아)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패하여 이스르엘에 북 왕 요람이 치료하려

왔다가 반란을 일으킨 예후를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 요람은 예후의 화살에 죽었으며,

아하시야는 므깃도까지 도망가서 죽었다.

아합의 왕후 이세벨은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예후의 명령을 받은 내시가 궁에서

내던져 죽었으며, 시체는 개들이 대부분 먹었다.(왕하 9: 30-37)


10. 아달랴(BC843-BC837)

여호람의 왕비이며, 아하시야의 어머니가 되는 사람이다.

그는 어머니 피를 받아 잔인하였는데 예후에게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형제를 모두 죽이고 왕위에 올라

6년을 다스린 유일한 여왕이다.(대하 22:10, 23: 12-15) (왕하 11: 1-16)


11. 요아스(BC843-BC803)

아달랴가 왕의 형제를 죽일 때에 아하시야의 누이이며,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빼내어 6년 동안 성전에 숨어살게 하였다.(대하 22: 10-12)

여호야다가 반란을 일으켜 아달랴를 죽이고 6살의 요아스를 왕으로 삼았고, 바알 선지자들을 죽었으며,

성전에서 모세의 율법대로 행하였다.(대하 23장)

고모부인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은 성전을 보수하며, 정직하게 살았으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경고를 하였으나, 여호야다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를 죽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람의 적은 군대로 큰 군대를 가진 요아스를 징벌하였으며, 그는 큰 부상을 입었다.

스가랴의 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이 정복되어 모든 방백은 다 죽고 노략한 물건이 다메섹 왕에게 보내어진

것에 대한 분노로 백성은 요아스를 침상에서 죽이고 그를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다.

그의 통치기간은 40년이다


12. 아마샤(BC803-BC775)

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15세이며, 29년 동안 다스렸으며,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처형할 때에

율법(신 24:16)에 따라 아들은 처형하지 않았다.(왕하 14:1-17)

에돔하고 전쟁할 때에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 명을 고용하였다.

선지자가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고 돌려보낼 것을 권하여 돌려보냈으나 그들이 분노하여

유대 성읍을 약탈하고 사람 삼천 명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다.(대하 25: 5-16)

그는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 것에 하나님은 진노하여 북 왕 요아스와 벧세메스 전쟁에서 그를 사로잡게 하였다.

요아스는 아마샤를 예속으로 삼았으며, 예루살렘을 파괴하여 성전의 모든 금은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왔다.(왕하14: 1-16) (대하 25: 17-24) [북 왕 요아스 참조]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리자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갔으나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다.

(왕하 14: 17-22) (대하 25: 25-28)


13. 웃시야(BC787-BC735)

그는 일명 아사랴라고도 하며,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을 다스리는 동안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다. (왕하 15: 1-7)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기 때문에 암몬 사람들에게 조공을 받았다.

그 이름이 매우 강성하여 애굽 변방까지 퍼지자 마음이 교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다가 나병이 걸려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과 백성을

치리 하였다.(대하 26장)

※ 이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 미가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다.

★ 고고학적 자료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비문에 4번이나 '유대인 아사랴(웃시야)'라고 기록되었다.


14. 요담(BC749-BC743)

25세에 와이 되어 16년간 다스리는 동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다.

여호와께서 아람 왕 르신과 북쪽의 베가 왕을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였다. (왕하 15: 32-38)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며, 정직히 행하여 암몬과 싸워 이겨 조공을 받았으며,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어 강하여졌다.(대하 27: 1-9)

※ 이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는 이사야

★ 고고학적 자료

에시온게벨에서 '요담의 소유'라고 적힌 조각 물(인장)이 발견되었는데 각문을 청동 틀에 끼워 만들었다.


15. 아하스(BC741-BC726)

요담의 아들로 20세에 왕이 되어 16년간을 다스리며, 모든 이방 신들을 섬긴 죄로 아람 왕르신과

북 왕 베가의 침략을 받았다.(대하 28:1-27)

그는 예물로 금, 은을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보내어 원군을 요청하였다.

앗수르 왕은 다메섹으로 진군하여 르신을 죽이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유대를 돕지 아니하고 공격하여

앗수르의 속국이 되었으며, 아하스는 유익이 없었다.(왕하 16: 1-9)(대하 28:16-21)

아하스는 회개치 아니하고 성전의 기물을 훼파하고 성전 문을 닫았으며,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였다가 죽은 후에 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하였다.(왕하 16: 10-20)


★ 고고학적 자료

디글랏 빌레셀 비문에 '유대 왕 아하스의 조공으로 금, 은, 연, 주석, 직물을 받았다.

다메섹을 멸망시키고 그 관원을 산 채로 막대기에 꿰었고, 과일 나무를 모조리 베었다'라고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왕하 16장과 이사야 7장의 기사와 완전히 일치한다.


16. 히스기야(BC726-BC697) [고대 중동지도]

내환과 외환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25세로 왕이 되었으나 29년 재위 중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성전을 보수하였으며, 더러운 것을 없애고 성결하게 하였다.(대하 29:1)

그는 성전에서 많은 제물로 번제, 속죄제를 드리었으며, 유월절을 지키었고, 또 종교개혁까지 하여

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여 유대 왕 중에 이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하였다.

(왕하18: 1-12) (대하 29, 30, 31장)

산헤립이 40개의 유대 성을 점령하고 20만 명을 포로로 잡고 막대한 배상을 요구하여 성전과 왕궁의

장식품까지 벗겨내어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주었다.(왕하 18: 13-17)

산헤립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위협하였으나,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여

이사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여호와는 사자를 밤에 보내어 18만 5천 군사를 전멸시켜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떠나 니느웨으로

돌아갔으며, 앗수르 속국에서 벗어났다.(왕하 19장)

또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낯을 벽으로 향하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3일만에 성전에 올라갈

것과 덤으로 15년을 더 살 것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

왕은 예언의 징표를 요구하였고, 이사야는 여호와께 간구하여 아하스의 해시계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였다.(왕하 20: 1-11)

히스기야가 병든 것을 문안하려고 온 바벨론의 왕 사자들에게 보물창고에 잇는 것을 모두 보여

주었다가 이사야에게 책망과 함께 이 보물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바벨론으로 옮겨지리라는 예언을

듣게 되었다. 히스기야는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터널을 뚫어 물을

끌어들였다.(대하 32: 30)

터널은 양쪽에서 뚫어 들어가 만났다고 하는데 당시의 기술로는 대단한 공사라고 한다.

이사야서 66장은 성경의 66권과 대조를 보이는데

39장까지는 구약을 40-66장까지는 신약으로 보인다. 특히 53장은 고난받는 예수님을 잘 예언하였다.

이사야는 유대나 이스라엘은 망하여도 '남은 자(회개한 자를 의미)'는 살 것을 믿었다.


★ 고고학적 자료

히스기야 수로에 대한 비문은 1860년에 발견되었으나 지금은 잘라져 이스탄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문에는 양쪽에서 곡괭이 질을 하는 동안 3큐빗이나 떨어져 있는데 상대방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곡괭이가 마주치자 물이 기온에서 실로암까지 흘렀다. 길이는 1200큐빗, 높이는 100큐빗이었다.

또 산헤립의 진흙으로 만든 6각 프리즘에는 '나는 굴복하지 않는 히스기야의 46개 성을 수 없이 부수고

200명, 150명 남녀노소와 말, 노새, 나귀, 소, 양 등을 수 없이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처럼 예루살렘에 가두고 성읍을 나오는 사람들을 격퇴시켰다'라고 기록했다.

산헤립이 패배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또 히스기야가 보낸 조공으로 금 30달란트, 은 800달란트, 보석, 상아, 궁녀 등의 성물을 받은 것과

산헤립의 궁전 벽 비문에는 그의 부상당한 기록이 있다. 


17. 므낫세(BC697-BC642)

12세에 왕위에 오르고 55년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겼다.(대하 33:1-9)

하나님은 앗수르(아슈르바니팔 왕)를 보내어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가게 하였다.

그는 바벨론에서 하나님께 겸손하게 기도하여 다시 돌아오게 되었으며,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다.

그는 22년 동안 하나님을 배반하였나 그후 23년 동안에는 모든 이방 신을 제거하며,

성전을 증수하고 하나님께만 제사를 하였다.(왕하 21: 1-28)(대하 33:10-20)

※ 이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는 이사야, 하박국, 예레미야, 스바냐로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 죽였다고 한다.

★ 고고학적 자료

앗수르 왕 에살핫돈(BC 680-BC 669) 비문에 '나는 서쪽 나라 왕 22명에게 궁전에 사용할 건축자재를

바치게 했다'라고 기록하였으며, '유대 왕 므낫세'의 이름이 있다.


18. 아몬(BC641-BC640)

22세에 왕이 되어 2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아버지 므낫세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였다.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 하여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였고,

백성들은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다.

(대하 33: 21-25)


19. 요시야(BC639-BC608)

아몬의 아들로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을 다스렸다. 그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 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낭독하게 하였다.

은 율법대로 행하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가 크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옷을 찢었다. 모든 백성을 모으고

율법왕 책을 낭독하여 듣게 하였고, 백성에게 율법을 준행하게 하였다.

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헐어 버리고 우상을 섬기지 못하게 하며,

철저히 개혁하였다.

북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다.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율법을 준행한 자가 전무후무하였더라고 기록되었다.(왕하 22, 23장)(대하 34, 35장) 선지자 훌다가 왕의 시대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는다는 예언이 있었지만 왕의 운명은 빨리 찾아 왔다.

BC 609년 애굽왕 느고가 앗수르를 치려고 므깃도에 온 것을 막다가 전사하였으며,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슬퍼하였고,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다. (대하 35: 20-27)

이시기부터 바벨론이 강대국으로 등장한다.[므깃도 참조]

※ 이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는 예레미야


20. 여호아하스(BC608)

또는 살룸이일명 아하시야라고도 하며, 요시야의 아들로 3개월간 재위하였고, 애굽 왕 느고에게 잡혀가

그곳에서 죽었다.(왕하23: 30-34) (대하 22: 1-4) 


21. 여호야김(BC608-BC597)

사악하고 고집이 센 그는 여호아하스의 아우로 애굽왕 느고가 왕위에 앉혔으며,

본명은 엘리야 김이었으나 느고가 이름을 고쳐주었다.(왕하 23: 34) (대하 36: 5-8)

그는 3년간은 느고를 섬겼으나, 갈그미스전투에서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무찌르고 점령하였으며,

유대는 바밸론의 속국이 되었다.(왕하 24: 1-4)

그의 11년 재위 기간에 사회 전체가 죄악에 빠졌으며, 그는 악한 무리의 손에 참혹히 죽었다.(렘22: 13-19)

※ 선지자 예레미야를 여러 번 죽이려고 하였다.


22. 여호야긴(BC597)

18세에 왕위에 올라 3달 10일 동안 다스리다가 느부갓네살 왕이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를 바벨론으로 잡아갈 때에 여호와의 전의 귀한 그릇들도 함께 가져갔다.(대하 36: 9-10)

이 때가 제 1회 '바벨론 유수'이다.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에 그를 석방하여 자유를 주었으며,

바벨론 왕과 함께 식사를 하게 하였고, 37년 동안 속국이 된 다른 왕보다 우대하였다.(왕하 25: 27-30)

※ 선지자 에스겔이 함께 잡혀갔다.


★ 고고학적 자료

바벨론 공중 정원의 폐허에서 기름과 곡식을 정기적으로 분배받은 이름이 나열된 토판을 발견하였는데

그 중에 여호와긴과 5왕자에게 지급된 배급양의 표가 있었다.

배급양의 표에는 '유대의 왕, 여호야긴을 위해 기름 10실라(1.8리터), 왕자는 2.5실라'라고 쓰여있다.


23. 시드기야(BC597-BC586)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잡아갈 때에 22세인 그를 왕으로 세웠고,

11년의 재위기간에 악을 행하였다.(대하 36: 11-21)

시드기야는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끌려가 그의 아들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그는 두 눈을 빼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왕하 25: 1-7)

루살렘의 성벽은 무너지고, 성전과 궁전은 불탔고, 성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파괴되었으며, 백성은 죽임을 당하였다.(왕하 25: 8-17)

살아 남은 자는 노예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는데 이것을 제 2회 '바벨론 유수'이라고 하며,

이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을 '바벨론 유수기'라고 한다. 유대 지도자로 그달리야를 세웠으나,

그를 죽이고 유대백성들은 예레미야와 함께 애굽으로 도망갔다. (왕하 25: 22-26)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참조]

※ 선지자 예레미야는 옛 계약 대신 새 계약을 주신다고 예언하였고,

에스겔은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한다고 예언하였다.


★ 고고학적 자료

왕하 25: 4절 시드기야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라는 기록이 있다.

이 '두 성벽 사이의 길'이 예루살렘 동남쪽에 지금도 50m남아있다.

라기스, 벧엘, 벳세메스 등지의 불탄 재의 두꺼운 층 아래에서 BC600경의 신전보물, 제단, 향로, 그릇,

제물의 뼈, 식료품(콩, 건포도, 올리브)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너무 갑자기 불이 탄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느부갓네살이 지른 불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