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김정일의 노예가 되었다. |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추정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상황에서 이승만 박사를 빼면 금방 알 수 있다 |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해방 이후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이승만 박사는 당시 유일한 자유민주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었다는 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것은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정치적 지도자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이승만 박사의 개인적 집념과 노력으로 건국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지도자가 없는 국민의 지지는 의미가 없다.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추정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상황에서 이승만 박사를 빼면 금방 알 수 있다. 이승만 박사를 당시 정치상황에서 제외하면 주된 정치 참가자는 다음과 같다. 미국과 소련, 김일성, 조만식, 김구, 김규식, 여운형, 박헌영 등이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을 다 고려하여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할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소련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대일전에 참전하는 조건으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약속하였기 때문에 4대국 신탁통치를 그대로 실시하였을 것이다. 신탁통치는 이승만 박사가 유일하게 반대하였다. 김구가 이승만 노선을 지지하여 반탁운동을 한 것을 사실이지만 후에 좌우합작에 기대를 걸게 되는 만큰 김구 혼자였다면 아마 반탁운동을 전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승만 박사는 해방 이전부터 한국민이 자치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계를 상대로 홍보하였다. 신탁통치가 중요한 이유는 소련은 신탁통치 기간에 한반도를 공산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북한을 점령하자 곧 북한 정권 수립에 착수한다. 북한을 점령한 소련 25군이 주체가 되어 북한에 괴뢰정부를 세웠다. 중공은 중국을 장악하기 전에 이미 북한에 2개 사단을 지원하였다. 남한에는 해방직후 여운형의 건준을 거쳐 인민공화국이 선포되어 있었다. 따라서 신탁통치가 그대로 실시되었다면 남한에는 좌우합작정부가 들어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것은 곧 바로 공산화 되었을 것이다. 북한에서 조만식이 축출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남한의 정치지도자는 공산주의자를 제외하고 모두 숙청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정책은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좌우합작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미국 정책을 충실하게 실행하려는 하지 중장은 그래서 이승만 박사를 가택연금까지 시키면서 정치권에서 제거하려고 하였고 김규식이나 안재홍 등과 같은 좌우합작파에게 정부수립을 맡기려 하였다. 심지어는 미국 시민인 서재필까지 이용하여 이승만 박사를 제거시키려 하였다. 종국에는 김구까지 좌우합작에 기대를 걸고 김일성을 만나러 평양으로 갔다. 이들 좌우합작파들은 미국의 정책이 좌우합작이니만큼 좌우합작이 아닌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직 이승만 박사만이 좌우합작은 공산주의자에게 나라를 바치는 결과를 가져오니 자신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공산주의자의 지배를 받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좌우합작을 반대하였다. 그렇다면 이승만 박사가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면, 또는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아니었다면, 총선거에 의한 자유민주국가를 건국하려는 이상을 가지고 또 실천하려는 정치인이 그 당시에 또 존재하였는가? 답은 아니다이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는 오직 이승만 박사만이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에 대해 한국의 독립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과 의사소통 통로를 가지고 있었다. 이승만 박사는 1919년 이후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 조직을 통해 미국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끊임없이 한국민의 자치능력을 과시하고 한국의 독립의 당위성을 설득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정치인들 중 누가 이런 조직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이승만 박사가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것은 피할 수없는 결과다. 소련의 25군은 북한을 점령하자 바로 김일성을 괴뢰를 내세워 공산정권을 수립하였다. 그 이유는 북한에 공산정권을 수립하는 것 자체보다는 북한의 부동항과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우랴늄이 풍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이 세운 김일성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1950년에는 전쟁을 도발할 만큼 무력지원도 받았다. 소련은 확고한 정책을 가지고 북한에 괴뢰정권을 세웠으나 미국은 좌우합작정부를 세운다는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메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반공을 내세워 총선거에 의한 독립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누가 공산세력을 물리치고 자유민주국가를 건국할 수 있었겠는가?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한반도는 분명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지배자는 물론 김일성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김정일의 지배를 받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국이 잘 살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 이승만 박사가 없었더라도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을 것으로 믿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보면 오히려 자유민주체제에 입각한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이 기적이며 그 공로는 오로지 이승만 박사 한 분에게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었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남한은 공산화되었다는 이야기이며며, 그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은 김정일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게 살고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얼마나 끔찍한 이야기인가. 이래도 우리가 이승만 박사를 독재자로 욕할 수 있으며, 이승만 박사를 국부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며, 이승만 박사를 건국 대통령으로 존경하는 것을 반대하며,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을 반대할 것인가? 모두들 두 손 모아 조용히 생각해보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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