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함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1861년에 출생한 그는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하고 1892년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해 1912년까지 엄청난 민족적 수난을 겪고 있던, '전환기의 한국'에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던 선교사였다. 그는 관서지방 개척선교에 착수하여 복음의 불모지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평양남도 사경회' 때 설교와 기도회 인도를 통해 평양대부흥 운동을 발흥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레이험 리(한국명: 이길함)를 주강사로 1,180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린 선천과 의주의 겨울남자 사경회 저녁집회 동안에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그레이험 리가 주 강사였다는 사실 자체가 이 지역에서의 성령의 역사를 예견하기에 충분했다. 1907년 북장로교 선천 선교부가 기록한 대로 그가 인도한 사경회 동안에 “교회가 수개월 동안 기도하여 온바 하나님의 능력이 현시되었다.” 그것은 1907년 3월 3일 컨즈(C. E. Kearns)가 말한 대로 숨겨진 죄악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시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였다. 역사 속의 부흥운동이 그런 것처럼 평양대부흥운동 역시 부흥운동의 지도자, 그레이험 리를 통해 한 지역에서 또 다른 지역으로 부흥의 불길이 확산된 것이다. 1907년 “북장로교 보고서”가 밝힌 선천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과 너무도 유사한 영적각성운동이었다
이처럼 선천과 의주의 겨울 사경회 기간 동안 나타난 성령의 놀라운 역사는 평양대부흥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회개를 동반한 영적각성운동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선천 지역이 이와 같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길함 선교사의 영향이 컸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 이길함 선교사가 평양대부흥운동의 성령의 불길을 그곳으로 가지고 간 것이다.
이길함 선교사 짧게 설교한 뒤 곧 통성기도를 할 것을 제의하였고 ' 통성기도의 음성은 신비로운 조화와 여운을 가지고 있었으며, 통회의 울음은 설움의 폭발이라기보다는 성령의 임재에 압도되어 넘치는 영혼의 찬양의 물결 같다'고 믿었다. 이 때 이길함 선교사의 요리사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거짓행동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으며, 교회의 지도자급인 강씨와 김씨가 서로 화해하며 강씨가 김씨에게 당신을 미워했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고백할 때, 온 회중에게 감명을 준 은혜로운 장면이 있기도 하였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도의 발원지인 장대현교회를 담임한 이길함 선교사는 썰매를 타고 겨울 전도여행에 나섰는데 당시 전국을 돌며 부흥의 불길을 확산시켰다. 이길함 선교사한테 세례를 받은 사람 중에 한국에는 길선주 장로가 있었다면 선교사로는 미국인 이길함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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