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26. - 쌩 떽쥐뻬리
[6] 사막에서
이것은 밤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턱이 딱딱 마주치고, 온몸이 경련하듯 흔들린다.
손이 하도 떨려서 이젠 회중 전등을 쓸 수가 없다.
추위를 타지 않던 내가 얼어 죽을 것 같으니, 갈증의 결과란 참으로 이상하구나!
나는 더웠을 때 걸치고 있기가 귀찮아서 레인코트를 어딘가에 버리고 왔다.
그런데 바람이 점점 더 험악해진다.
사막에서는 전혀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사막은 대리석처럼 반들반들하다.
낮에는 그늘을 만들어 주지 않고, 밤에는 사람을 발가벗겨 바람에 내맡긴다.
몸을 의지할 나무 한 그루, 담장 하나, 돌멩이 하나도 없다.
바람은 광활한 벌판에서 기병대가 돌진하듯 나를 몰아친다.
그것을 피하느라고 뱅뱅 맴을 돈다.
나는 누웠다간 다시 일어난다.
누워 있든 일어나든 나는 얼음의 채찍에 휘감긴다.
나는 달릴 수도 없고, 기력도 지쳐 이 암살 자로부터 도망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두 손으로 감싼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고!
얼마 뒤에야 나는 일어나서 여전히 떨면서 앞으로 곧장 걸어가고 있는 나를 의식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 방금 떠났는데. 쁘레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부르는 목소리가 나를 깨웠던 것이다.
나는 그가 있는 데로 돌아온다.
온몸이 떨리고 딸국질이 나서 여전히 몸을 비틀거리면서. 그리고 혼잣말을 한다.
"이건 추위가 아니다. 다른 것이다. 이젠 끝장이다."
나는 이미 수분을 너무 잃어버렸다.
그저께 하고 어제, 혼자 갔을 때 나는 너무 많이 걸었다.
추위로 죽는다는 것이 슬프다.
그 전에 마음속에 간직했던 신기루가 더 좋다.
그 십자가며, 아랍인이며, 등불들이.
언제부터인지 이런 것들이 더 관심거리가 되기 시작한다.
나는 노예처럼 채찍질을 당하기는 싫다.
나는 또다시 무릎을 끓는다.
우리는 약간의 약품을 가져 왔었다.
순수 에테르 1백 그램과 90도 알코올 1백 그램,
그리고 옥도정기 한 병. 나는 순수 에테르를 두어 방울 마셔 본다.
마치 칼을 삼키는 것 같다.
다음엔 90도 알코올을 조금, 이건 목을 막히게 한다.
나는 모래에 구멍을 파고 거기 눕는다.
그리고 다시 모래를 덮는다. 얼굴만이 나와 있다.
쁘레보가 잔가지를 찾아내어 불을 붙었지만 금방 사위여 버린다.
쁘레보는 모래 속에 묻히기를 거부한다.
그는 발을 움직이는 편을 택한다. 그것은 잘못이다.
내 목구멍은 그냥 막혀 있다.
이것은 나쁜 징조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좀 낫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모든 희망을 넘어선 마음의 평정이다.
나는 별빛 아래, 노예 상인의 갑판 위에 묶여서 원치 않는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몹시 불행한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근육만 움직이지 않으면 추위를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모래 속에 잠든 내 육체를 잊는다.
나는 이제 움직이지 않을 작정이다.
그러면 더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 거니까.
하기는 사람은 그리 많은 고통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고통 뒤에는 피로와 망상이 교향악처럼 짜여져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림책으로, 약간 잔인한 동화로 바뀐다.
조금 전에는 바람이 나를 몰아쳤고,
나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짐승처럼 맴을 돌았었다.
이어서 호흡이 곤란해졌다.
마치 무릎팍이 가슴을 찍어누르는 것 같았다.
어떤 무릎팍이. 나는 이 천사의 무게와 싸웠다.
사막에서 나는 한 번도 혼자 있어 본 적이 없다.
지금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들을 믿지 못해
내 자신 속에 파묻혀 두 눈을 감고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수많은 영상의 강물이 나를 고요한 꿈 속으로 끌고 가는 것을 느낀다.
강물은 바다의 깊은 속에서는 고요해지는 법이다.
잘 있어라. 내가 사랑하던 그대들이여.
인간의 몸이 마시지 않고 사흘을 견뎌내지 못했다해서 그게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내가 이렇게도 샘물의 포로인 줄은 몰랐었다.
나는 이렇게 자치밖에 허락되지 않는 줄은 생가도 못했다.
사람들은 인간이 자기 앞을 곧장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인간은 자유롭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을 우물에 붙들어 맨 밧줄,
탯줄처럼 인간을 대지의 배에 붙들어 맨 밧줄을 보지 못한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그는 죽는다.
당신들의 고통을 제외하고는 나에겐 아무 후회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만일 내가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시작 할 것이다.
나는 살 필요를 느낀다.
도시에는 이미 인간의 생활이 없다.
여기서는 비행이 문제가 아니다.
비행기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사람이 생명을 거는 것은 비행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농부가 땅을 가는 것이 쟁기를 위해서가 아님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비행기에 의해서 사람들은
도시와 그들의 회계원들을 떠나서 농부의 진리를 재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인간의 일을 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고뇌를 알게 된다.
사람은 바람과, 별들과, 밤과, 모래와, 바다와 접촉한다.
사람은 자연의 힘에 대항해서 꾀를 쓴다.
정원사가 봄을 기다리듯이 사람은 새벽을 기다린다.
사람은 약속의 땅인 양 착륙지를 기다리고, 별 속에서 자기의 진리를 찾는다.
나는 불평하지 않겠다.
나는 사흘 전부터 걸었었고,
목말랐었고, 모래 위에 발자취를 쫓았었고,
이슬로 내 희망을 삼았었다.
나는 땅 위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잊어버린 내 동료들과 만나려고 애써 찾았었다.
이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걱정이다.
나로서는 이것이 오늘 밤에 뮤직 홀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저 교외 열차를 탄 주민들,
자기들을 인간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어떤 압력에 의해서,
마치 개미처럼 그 용도에 맞게 퇴화되어 버린 그 인간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한가로울 때, 무엇으로 그들의 무의미하고 하찮은 일요일을 채우는 것일까?
한 번은 러시아에서, 어느 공장에서 모짜르트를 연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썼었다.
나는 2백 통의 욕설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나는 싸구려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다른 노래를 모르는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건 싸구려 카페의 경영자들이다.
나는 인간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
나는 내 직업 속에서 행복하다.
나는 나 자신을 착륙 지의 농부라고 생각한다.
교외 열차 안에서 나는 여기와는 아주 다른 고통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여기는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나는 아무 후회도 없다.
나는 걸었었고, 잃어버렸다.
이것은 내 직업의 당연한 질서다.
어쨌거나 나는 상쾌한 바다 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한 번 이것을 맛본 사람은 이 양식을 잊지 못한다.
안그런가, 동료들이여?
문제는 결코 위험하게 산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공식은 과장된 것이다.
투우사들은 전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위험이 아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생명이다.
하늘이 희끔해지는 것 같다.
나는 모래 속에서 한 쪽 팔을 빼낸다.
손닿는 데 있는 헝겊 덫 하나를 더듬어 본다.
그러나 마른 그대로이다.
기다려 보자. 이슬은 새벽에 고이니까.
그러나 새벽은 우리 헝겊을 적셔주지 않고 밝아 온다.
그래서 내 생각은 약간 뒤얽힌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을 듣는다.
"여기 있는 것은 메마른 마음...
메마른 마음...
눈물도 통 지을 줄 모르는 메마른 마음!"
"떠나자, 쁘레보!
우리 목구멍이 아직은 막히지 않았다.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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