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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29. - 쌩 떽쥐뻬리

Joyfule 2011. 2. 24. 10:07

  

인간의 대지29. - 쌩 떽쥐뻬리


[8] 인간들의 모순


(2)
전화 벨이 울렸을 때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긴 대화가 시작됐다.

사령부에 명령한 국지 공격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이 교외의 노동자 거리에 있는 콩크리이트 요새로 바뀐

몇 채의 건물을 점거하라는, 터무니없고 절망적인 공격 명령이었다.

대위는 어깨를 흠칫하고는 우리 있는 데로 돌아온다.
"우리 중에서 먼저 나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거기 함께 있던 한 상자와 내게 꼬냑잔을 2개 내민다.
"자네 나하고 제1차 출발일세. 마시고 가서 자게."

상사에게 말한다.
상사는 자러 갔다.

이 식탁에 둘러 앉은 우리 여남은 명은 불침번이다.

완전히 빛을 차단시켜서 어떠한 빛도 새지 않는 이 방에서

불빛이 너무 부셔 나는 눈을 깜박인다.

5분 전에 나는 총구로 밖을 내다보았다.

창구를 가린 헝겊을 제자리에 가렸을 때,

그것이 기름이 흐르듯이 달빛을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내 눈에는 암록색 요새의 영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 병사들은 아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줍게 침묵을 지킨다.
이 돌격은 명령이다. 인간의 저장 속에서 퍼내는 것이다.

곡물 창고에서 퍼내는 것이다.

씨뿌리기 위해서 한줌의 낟알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꼬냑을 마신다.

내 오른쪽에서 장기를 두고 있다.

왼쪽에서는 농담들을 하고 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반쯤 취한 한 남자가 들어온다.

텁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우리에게 정다운 시선을 굴린다.

그의 시선이 꼬냑 위로 미끄러졌다가는 돌리고서

다시 꼬냑으로 되돌아 와서 애원하듯 대위 위로 돌린다.

대위는 나지막하게 웃는다.

희망을 얻은 그 사나이도 웃는다.

가벼운 웃음이 구경꾼들 사이에 번진다.

대위가 술병을 슬며시 끌어당기자 사나이의 시선이 절망의 빛을 띠고,

이래서 어린애 같은 장난이 시작된다.

이 일종의 말없는 발레가 몽롱한 담배 연기와,

철야의 피로와, 임박한 공격 등과 어울려 마치 꿈속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밖에서는 바다의 파도 소리와 같은 폭발음이 심해져 가는데도

우리는 우리 배의 훈훈한 선창 속에 갇혀서 장난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이제 곧 그들의 땀과,

알코올과 기다림에 찌든 때들을 전투의 밤의 왕수 속에서 씻게 될 것이다.

나는 이들이 정화될 시간이 임박했음을 느낀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정꾼과 술병의 발레를 출 수 있는 데까지는 아직도 추고 있다.
그들은 이 장기를 둘 수 있는 데까지는 두고 있다.

그들은 생명을 될 수 있는 데까지 끌어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선반 위에 버티고 있는 자명종을 맞추어 놓았다.

그러니 그 종이 오래지 않아 울릴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혁대를 졸라맬 것이다.

그러면 대위는 걸린 권총을 벗길 것이다.

그땐 주정꾼도 술이 깰 것이다.

그러면 모두들 달빛으로 푸른 장방형을 이룬 입구까지

비스듬히 경사진 복도를 서두르지 않고 않고 올라 갈 것이다.

그들은 이런 하찮은 말들을 하리라.

"빌어먹을 놈의 공격...."이라든지,

"어유, 춥다!"느니 하는. 그리고 그들을 뛰어 들어갈 것이다.

시간이 되어 나는 상사가 잠을 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뒤죽박죽이 된 지하실에서 쇠침대 위에 뻗어 자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불안하기는커녕 몹시도 행복스러운 그 잠의 맛을 나도 알 것 같았다.

그의 자고 있는 모습이 리비아에서 첫날의 생각을 나게 했다.

그날 쁘레보와 나는 물도 없이 조난 당해 죽음의 선고를 받고서도

아주 심한 갈증을 겪기 전에 한 번, 꼭 한 번 2시간 동안을 잘 수 있었다.

그때 자면서 나는 현실 세계를 거부하는

놀라운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맛보았었다.

그때, 아직은 평화로울 수 있는 몸의 소유자였던 나는,

얼굴을 팔에 파묻고 나니 그 밤을 행복한 밤과 구별지을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상사는 공처럼 뭉쳐서 사람 같지 않은 모양으로 잠자고 있었다.
깨우러 온 병사들이 촛불을 켜서 병에 꽂았을 때,

그 두루뭉수리의 덩어리에서 내가 처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군화밖에 없었다.

징을 박고 편저를 낀 엄청나게 큰 군화,

날품팔이나 부두노동자들이 신는 군화였다.

이 사내는 자기의 작업 도구를 신고 있었고,

그의 몸에 있는 것은 연장이 아닌 것이 없었다.

탄약 함도, 권총도, 가죽 멜빵도, 혁대도.

그는 길마니, 목띠니 하는 밭갈이 말의 마구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모로코에서는 지하실 속에서 눈먼 말이 끄는 연자매를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흔들리고 불그스레한 촛불 속에서,

연자매를 끌리기 위해서 역시 눈먼 말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봐, 상자!"
그는 아직 잠에 취한 얼굴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꾸물거렸다.

그리고는 잠을 깰 생각은 통 하지 않고 벽 쪽으로 돌아눕는다.

포근한 엄마 뱃속인양, 깊은 잠 속으로 다시 빠져 들어가며,

깊은 물 속에서처럼 오므렸다 폈다 하는 두 주먹으로

무언지 모를 시커먼 해초를 붙잡곤 하면서 그의 손가락들을 펴주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의 침대에 걸터앉아 한 사람이 그의 목 밑으로 팔을 살며시 넣고,

웃으면서 그 무거운 머리를 쳐들었다.

그것은 마치 훈훈한 외양간에서 서로 목을 비벼대는 말들의 다정함 같았다.

"이봐, 친구!"
나는 평생에 이보다 더 다정한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상사는 행복한 잠 속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다이너마이트와, 피로와,

얼어붙은 밤으로 된 우리의 세계를 거부하려고

마지막 노력을 다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밖에서 오는 그 어떤 것이 그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일요일에 학교의 종도 이와 같이 벌받은 아이를 슬며시 깨운다.

아이는 책상도, 칠판도 벌로 낸 숙제도 잊고 있었다.

그는 벌판에서 놀이하는 꿈은 꾸고 있었으나 헛일이었다.

종은 줄곧 울려 인간들의 부정 속으로 악착같이 그 아이를 다시 끌고 가는 것이다.

이 아이를 닮아 이 상사도 피로에 지쳐빠진 이 육체도,

그도 원치 않는 이 육체를 차츰차츰 의식하는 것이었다.

잠이 깰 때의 추위 속에서 이내 저 뼈 마디마디의 쓰라린 아픔을,

또 마구의 무게를, 또 저 무거운 달음박질을,

그리고는 죽음 알게 될 그 육체를.

죽음 자체보다도 몸을 일으키기 위해 손을 담그는 저 피의 끈끈이와,

그 힘든 호흡과, 그를 둘러싼 빙판, 죽음 자체보다도 죽어갈 때의 그 불편함.

그래서 나는 그를 쳐다보면서 줄 곧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잠이 깨었을 때의 허전함과, 엄습해 오던 갈증과,

태양과, 사막과, 사람이 어쩌지 못할 꿈인 생명의 엄습 등을 생각하며.
그런데 상사는 일어나서 우리를 똑바로 쳐다본다.
"벌써 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