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장애를 극복하는 구체적 방법(2) 자기 관리의 지혜.
기독교인들 중에서 <자기 가치에 대한 믿음>의 길을 출발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길 선상에서 여러 가지 인생의 장벽을 부딪히다 보면
자기 가치에 대한 신뢰감을 잃고 마음의 평안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관리의 지혜가 부족한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인지라 자기 관리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자기 관리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자기 관리를 할 수 있을까요?
이 시간에는 신앙인들의 정신건강을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
제가 목회를 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3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문제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는 깨닫지 못하고
"저 사람은 좀 이렇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목회자들도 참으로 아쉽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교인들이 좀 이렇게 변화되었으면..."하고 교인들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목회를 하면 어려움을 제공하는 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그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이것은 목회자들의 평생 숙제입니다.
몇 년 전에 어떤 목회자가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너무 말썽을 부리는 교인이 있어서 너무 고통스러워 하루는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그를 변화시켜 새 사람을 만들리라. 아니면 추방하리라."
그래서 단단히 결심하고 작정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사람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아니면 다른 곳으로 보내주시옵소서."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아름답게 들어주셨습니다.
기도하던 3일 째 되는 날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마음속에 감동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 중에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도 그를 고칠 능력이 없어서 죽었다. 고칠 능력은 없었지만 죽을 능력은 있단다.
그 사람을 고치는 것보다 네가 죽는 것이 쉬운 것을 알기 바란다."
그래서 기도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주여, 저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그때부터 목회가 편해지고 마음에 안정이 생기면서
그 성도를 위한 사랑과 긍휼의 심정까지 생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회자가 교인을 스스로 변화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괴로운 일만 생깁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죽이려고 하면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새롭게 힘찬 전진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 경험은 저의 경험이기도 하고,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의 경험이기도 할 것입니다.
장로를 바꾸려고 아무리 금식기도 해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에 잘 응답하시지도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죽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죽이려는 기도가 천하를 얻는 기도입니다.
목사는 교인을 치려 하지 말고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목사 한 사람이 죽으면 교인 전체가 목사와 함께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회입니다. 목사가 죽으면 교인들은 따라 편안히 죽습니다.
그러면 평안한 교회가 되고 아름답고 조화를 아는 성도가 됩니다.
이런 원리는 어디에서나 적용이 됩니다.
자신이 죽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가정이, 나라가 시끄러운 것입니다.
알고 보면 저 사람 책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책임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느껴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나니(나는 죽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오직 예수 뿐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자기를 죽이는 십자가의 신앙으로 산다)."
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살면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환경이 달라져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달라질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고백한 대로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이고,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임을 실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평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삶은 이제 같이 포기합시다.
둘째, 일과 휴식의 배분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먼저,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잠을 줄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수면 부족 때문에 죽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어떤 사람은 잠이 부족하면 될 일도 안될 것이라고 지레 걱정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묻습니다. "몇 시간 잡니까?"
"다섯 시간 정도 자는 것 같습니다."
"그것 가지고 됩니까? 적어도 하루에 8시간은 자야 한다고 하는데
5시간만 자고 어떻게 일하십니까?"
지레 걱정을 합니다. 실컷 8시간씩 자고 제대로 되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하루 8,9시간 잔다고 건강해집니까?
여러분! 모두 경험하셨지요. 잠을 더 많이 잘수록 허리와 몸 전체가 아프고
자기 안일이 싹트고, 더 나아가 스트레스가 더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했습니다.
"생각도 없이, 할 일도 없이, 전념할 일도 없이,
완전한 휴식 속에 사는 것처럼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없다."
여러분! 일이 많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알고 보면 그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일없이 완전한 휴식 속에 있을 때
자기 허무, 자기 불안, 자기 회의, 자기 무력, 자기 공허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이런 때에 마음 깊은 곳에서 권태와 우울과 고뇌와
그리고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회한과 절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쁜 것은 원망할 일이 아니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 없이 바쁘지는 말아야 합니다.
사람 됨됨이는 그 사람의 일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휴식하는 것에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휴식이 주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휴식은 바로 우리에게 우리 일을 해석하도록 주어진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휴식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인간화하고 비노예화한다는 것입니다.
즉 휴식은 일의 목적을 상기해 보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휴식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은 정신건강을 위해 대단히 중요합니다.
셋째, 굳건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십시오.
공부, 명예, 지위... 그리고 이런 것들 위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공부를 많이 시킨다고 인격이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위가 높다고 인격이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잘살게 되었다고 인간이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문제가 커집니다.
모든 것을 성취하여도 인격파탄이 위에서부터 오면 달리 구제책이 없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실패의 순간을 많이 겪습니까?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공부, 명예, 지위가 실패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의 순간을 만나면
그것이 더욱 큰 좌절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실패의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을 바로 굳건한 믿음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불안입니다.
정작 사람을 실패하게 만드는 제일 요인은 바로 불안입니다.
그런데 가장 치명적인 불안은 어디서 옵니까?
불신에서 옵니다. 믿음이 있으면 절대 불안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도 실패할 수 있고 불편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참으로 잘 믿으면 불안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어도 성공할 수 있고 편안하게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없이 참 평안은 없습니다.
예수님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평안의 복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잠깐 불편할 수는 있어도 잠시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병은 불안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치 앞은 내다볼 수 없기에 늘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시편 3편에서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해도 두려워 않겠다는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자주 찬송하지 않습니까?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470장)
그러한 평안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소망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망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에 있습니다.
여러분! 때로 어려운 상황을 만나 절망적일 수 있으나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환난이 있어도 그 환난이 무엇으로 변하게 됩니까?
인내로 변하고, 인내는 연단으로 변하고, 연단은 소망으로 변합니다.
'━━ 영성을 위한 ━━ > 치유영성회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계성 인격 장애. (0) | 2021.02.27 |
---|---|
'자존감' 만들기. (0) | 2021.02.26 |
인격장애를 극복하는 구체적 방법(1) 자기 가치에 대한 확신. (0) | 2021.02.24 |
성경인물 속에 나타난 성격장애의 모습들. (0) | 2021.02.22 |
성격을 바꾸는 지혜를 3초만 생각하자. (0) | 2021.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