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을 키우는 교회, 인물이 떠나는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은 표면에 나타난 현상 이면에 감춰져 있는 내면의 진실을 읽는 능력에 달려 있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돈 문제부터 보자. 협회는 월1500만원에 해당하는 연봉 1억8천만원을 제시했으나 박감독의 입장에서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내기까지 고생을 했고, 국내 프로축구팀 감독들이 보통 월 2천5백만원을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자신의 가치를 그에 걸맞게 인정해 달라는 '자존심'이 문제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그는 월 2천만원을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한국 축구는 히딩크가 월드컵팀의 사령탑이란 직무를 잘 해내도록 100 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급여 훈련비 포상비의 명목으로 제공했으며, 그가 편히 그리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원하는 지원 스탭을 다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었었다.
그것은 차범근 전 감독처럼 자신이 맡을 대표팀 선수 선발 회의장 밖에서 서성거려야만 했고, 지원해줄 기술인력들이 없어 혼자서 자료수집하고, 정리하고, 작전 짜고, 선수 훈련까지 혼자서 다 할 수밖에 없던 것에 비하면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 일간신문 논설위원의 말처럼 이처럼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지원을 받고도 히딩크 감독이 좋지 않은 성적을 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결국 그 다음날, 국내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주요 일간지의 사설에까지 이 사건은 “박항서 감독의 "이유있는 반발”이란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그의 돌출발언 시기나 방법은 신중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도, 신문의 사설은 협회측의 책임 부분도 함께 다뤘다.
그 신문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 좋은 지적이었다는 글도 올라왔지만, 축구협회와 관련된 대통령 후보 정몽준과 이회창측과의 보이지 않는 정치적 대립으로 보는 이들의 욕설까지 실로 기가 막힐 정도의 논쟁(인터넷에서의 논쟁은 항상 비이성적이라, 실은 논쟁이 아니라 각목 없는 격투전이다)이 벌어졌다.
인물을 키우는 교회, 인물이 떠나는 교회
어떤 교회에 인재가 남고 어떤 교회에서 인재가 떠나는가?
나는 이 번 박감독 사건 자체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유는 끊임없이 히딩크에 집착하고 히딩크를 이용하려는 것은 축구협회에 관련된 대통령 후보와 관련이 있다는 음모론 주장자나, 또 다시 옛 근성을 드러낸 축협의 조전무를 먼저 퇴출시켜야 한다며 축협은 말 그대로 소나 돼지나 키우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공격을 당할까 염려되는 바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목사로서 이 문제를 통해 지도자를 세우는 교회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 가를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언급한 신문의 사설이 지적한 것은 첫 째로, 한국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후 국가대표팀 감독 선정을 놓고 협회의 태도가 불투명했으며 미래의 리더십에 대한 청사진 제시도 없었다는 점이다. 필자도 한국축구가 승승장구하여 16강에 진입하고 8강에 들 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다들 히딩크 히딩크 하며 대통령 후보로 보내자, 희동구란 이름을 주고 주민증을 만들어 귀화시키자는 소리까지 하지만, 그는 갈 사람이다. 그가 떠난 후도 생각해야 한다. 그가 떠나고 나면 누구를 세울지, 차기 지도자에 대한 생각은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또 다른 사람을 사오면 되냐? 왜 우리를 책임질 지도자를 우리 가운데서 세우지 못하는가?”
모두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목회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는 교회, 사람이 떠나는 교회’란 제목으로 얘기하면 다들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인물을 키우는 교회, 지도자가 떠나는 교회’라는 주제로 얘기한다면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의 교회에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오늘 불시에 주께서 내 영혼을 찾겠다고 하시면 우리의 교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차기 지도자를, 인물을 세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온전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시고,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소리는 매우 무책임한 말일 뿐 아니라, 지도자로서 할 말이 아니다. 지도자는 사람을 세우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수십년 간 기도와 눈물로 세운 교회가 퇴임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후임목사와 전임 지도자를 모시던 장로들 간의 갈등, 후임목사와 위임목사의 갈등, 신임목사와 성도간의 비전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고 찢어지는 아픔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박감독의 경우, 히딩크 감독과 2년 뒤 대표팀 감독 우선 협상권 계약을 체결한 상황에서 국내파 감독이기에 과도체제에 임시대우를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히딩크 감독 등과 계약할 때는 국제 관례에 따라 모든 조건들에 합의를 본 뒤 발표해 놓고, 국내 감독을 선임할 때는 "일단 뽑아 놓은 뒤 연봉 등을 결정한다"는 발상, 게다가 대표팀 감독은 명예직인데 어디 신성한 스포츠계에서 연봉과 돈을 운운하느냐는 생각은 당사자에게는 이중적 잣대로 비취고 자괴감 마저 들게 했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너는 내가 키웠고 길러줘서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충성하며 보은해야 된다, 목회는 감사함으로 섬기면 되지 사역자가 웬 사례비 얘기냐", 교회에서 계속 일해온 사람은 박봉이고 외부에서 데려온 사람만 특별 대접을 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목사님,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사역의 비전이 있어서요... (그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에 불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인물난에 허덕이는 교계에서 유능한 사람을 내버려 둘 리도 없다.
나는 이 번 박감독 사건 자체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유는 끊임없이 히딩크에 집착하고 히딩크를 이용하려는 것은 축구협회에 관련된 대통령 후보와 관련이 있다는 음모론 주장자나, 또 다시 옛 근성을 드러낸 축협의 조전무를 먼저 퇴출시켜야 한다며 축협은 말 그대로 소나 돼지나 키우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공격을 당할까 염려되는 바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목사로서 이 문제를 통해 지도자를 세우는 교회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 가를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언급한 신문의 사설이 지적한 것은 첫 째로, 한국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후 국가대표팀 감독 선정을 놓고 협회의 태도가 불투명했으며 미래의 리더십에 대한 청사진 제시도 없었다는 점이다. 필자도 한국축구가 승승장구하여 16강에 진입하고 8강에 들 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다들 히딩크 히딩크 하며 대통령 후보로 보내자, 희동구란 이름을 주고 주민증을 만들어 귀화시키자는 소리까지 하지만, 그는 갈 사람이다. 그가 떠난 후도 생각해야 한다. 그가 떠나고 나면 누구를 세울지, 차기 지도자에 대한 생각은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또 다른 사람을 사오면 되냐? 왜 우리를 책임질 지도자를 우리 가운데서 세우지 못하는가?”
모두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목회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는 교회, 사람이 떠나는 교회’란 제목으로 얘기하면 다들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인물을 키우는 교회, 지도자가 떠나는 교회’라는 주제로 얘기한다면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의 교회에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오늘 불시에 주께서 내 영혼을 찾겠다고 하시면 우리의 교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차기 지도자를, 인물을 세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온전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시고,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소리는 매우 무책임한 말일 뿐 아니라, 지도자로서 할 말이 아니다. 지도자는 사람을 세우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수십년 간 기도와 눈물로 세운 교회가 퇴임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후임목사와 전임 지도자를 모시던 장로들 간의 갈등, 후임목사와 위임목사의 갈등, 신임목사와 성도간의 비전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고 찢어지는 아픔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박감독의 경우, 히딩크 감독과 2년 뒤 대표팀 감독 우선 협상권 계약을 체결한 상황에서 국내파 감독이기에 과도체제에 임시대우를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히딩크 감독 등과 계약할 때는 국제 관례에 따라 모든 조건들에 합의를 본 뒤 발표해 놓고, 국내 감독을 선임할 때는 "일단 뽑아 놓은 뒤 연봉 등을 결정한다"는 발상, 게다가 대표팀 감독은 명예직인데 어디 신성한 스포츠계에서 연봉과 돈을 운운하느냐는 생각은 당사자에게는 이중적 잣대로 비취고 자괴감 마저 들게 했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너는 내가 키웠고 길러줘서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충성하며 보은해야 된다, 목회는 감사함으로 섬기면 되지 사역자가 웬 사례비 얘기냐", 교회에서 계속 일해온 사람은 박봉이고 외부에서 데려온 사람만 특별 대접을 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목사님,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사역의 비전이 있어서요... (그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에 불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인물난에 허덕이는 교계에서 유능한 사람을 내버려 둘 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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