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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짐을 맡기는 자가 복이 있다.

Joyfule 2014. 10. 24. 08:49

 

 

인생의 짐을 맡기는 자가 복이 있다.

신상래 목사

 

 

예수님이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11:28~30)

위위 말씀을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마음이 평안해지고 넉넉해지지 않은가? 그러나 이도 잠시 뿐, 다시 세상으로 눈을 돌려보면 걱정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이 다시 파도치듯 밀려오고 마음이 요동하지 않은가?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는 잠시 평안했는데, 왜 그 때뿐일까? 그러나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사치스러운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사처럼 무장을 하고 일터에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인생이라고 한다. 그런가?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성경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게 무엇인가? 그냥 공자나 맹자, 석가모니처럼, 세상의 지혜가 가득 찬 성인이 가르치는 경전이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굳이 살아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박박 우기면서 말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의 상황이 그렇다. 성경에 있는 말씀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지 못하고 산다.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이다. 원래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게 없었든지, 아니면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그 능력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걸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같은 고민조차 없이,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시계추처럼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학생처럼, 주일이면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교인들이 허다하다.

 

위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요지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들은, 그 짐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그걸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투는 성경 곳곳에 나온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또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31,32)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있다. 그런가? 당신은 하나님의 명령을 삶의 현장에서 지키며 살고 있는가? 그러게요.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목사님도 아다시피,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이 아니쟎아요. 돈 벌이는 쉽지 않고 돈 쓸 데는 대추나무 연 걸리듯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어디 말처럼 쉽나요? 그렇다. 당신 말처럼 인생이 쉽지 않다. 쉬운 일이 아니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찾아온 게 아니겠는가?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식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까,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찾아온 게 아닌가? 그런데 교회에 와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구태여 교회에 다닐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인생을 자신이 힘으로 살려면 굳이 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인생의 짐을 맡기려 하지 않은 자녀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하시며 거들떠보시지 않는 데, 무엇 하러 교회를 기웃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가? 어차피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할 거면, 세상 사람처럼 아무 것도 믿지 말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굳세게 믿고 대차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시는 분이 있다면 필자의 말을 잘 들어주길 바란다. 하나님을 말씀을 바보처럼 우직하게 실행에 옮기시라. 염려가 들어오면 축출기도로 쫒아내시라. 걱정이 스며들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이 주는 생각을 몰아내라. 불안이 엄습해오면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여 단박에 쫒아버려라. 두려움이 밀려오면 예수 피를 외치며 즉시 몰아내시라. 걱정과 염려, 두려움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죄다 악한 영이 넣어주는 생각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방치하면 생각을 파고들어 머리를 점령하고 당신의 마음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당신은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낙담과 실망에 빠져 두려움에 벌벌 떨고 공포에 사로잡히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 생각이 오래 되면 불면증과 우울증세가 서서히 나타나서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 당신의 영혼과 생명은 빛을 잃고, 불행의 고통에서 신음하면서, 정신이 피폐해지며 영혼이 황폐해지다가, 이 땅을 떠나면 유황불이 활활 타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 처음 시작이 걱정과 염려가 들어오는 것을 방치한 당신의 잘못이다. 아니, 목사님, 저도 염려하고 걱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상황과 환경을 보면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어요. 날마다 지옥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안다. 필자도 당신의 형편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 상황이 암울하고 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냥 자살해야 하겠는가? 아무런 대안도 없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게, 고작 당신이 할 일뿐이지 않은가? 낙담과 실의에 빠져 자책을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게 쉬우면 그렇게 하시라. 그게 힘들다면 필자가 요청하는 대로 혹독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걱정과 염려를 쫒아내는 축출기도를 하시라. 필자가 당신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쉬운 것을 하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어차피 필자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해야 하는 몫이다.

 

필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자살하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 자신을 책망하기에 지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삼십대 후반의 한창의 나이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낚시터에서 세월을 낚던 때가 있었다. 다 포기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까 그대로 삶이 떠내려갔다. 떠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기회를 주셨다.

필자는 정말 어렵게 잡은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교회에서 배운 관행과 관습을 쓰레기통에 쳐 넣고, 오직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도와 말씀에 전념했다. 아내와 함께 저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면서 10여년의 훈련을 견뎌냈다. 걱정과 염려가 들어오면 절대 방치하지 않았다. 성경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혹독하게 부르며 예수 보혈의 피를 외치며 사라질 때까지 쫒아냈다. 미친놈처럼 하루 종일 중얼거리며 기도하면서 보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시자 걱정과 염려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삶이 펴진 것도 아니고 암울한 환경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매일 매일 고된 노동과 쉼 없는 기도의 연속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으며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평안했다. 인생의 짐을 예수님께 내려놓자 그 분이 내게 평안한 마음을 주시고 고단한 삶을 쉬게 해 주셨다.

 

10년간 사역하면서 교인이라야 아내와 둘뿐이었고 매일 고단한 노동에 시달렸지만 참 행복했었다. 지금은 사역이 열려 고단한 노동도 많이 내려놓았고 바빠졌지만,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눈시울이 붉어지며 시야가 흐릿해지곤 한다. 지난날의 암울했던 과거가 마음을 짠하게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이 먹먹해져서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전혀 두렵지 않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필자가 한 것이라고는 최소한의 생계비를 버는 노동과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밖에 한 것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필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기에 당신에게 권면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고단한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그냥 맡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