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46과)12 사사기(1): 서곡: 실패 원인 (1:1-3:6)
2-5.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부족들(3:1-6)
"1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열국은 3 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 4 남겨 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5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6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려고 하셨다. '가나안 전쟁'은 B. C. 1405년경부터 약 5년간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수행했던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말한다. 이 엄청난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 하셨기 때문에 큰 승리로 끝이 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시대에 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그 새데 장로들이 죽은 후에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 뒤를 잇게 되었(2:10). 그들은 선조들이 피흘려 세운 업적들을 향유하면서도 전쟁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은 잊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그들의 주와 왕이 되시니, 이스라엘은 마땅히 그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겨야 했다(출 6:7) 그러나 새 세대는 그렇지 못했다. 시험한다는 말은 전쟁의 경험이 없는 세대들에게 전쟁을 체험하게 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가 사람수의 많고 적음이나 병기(兵器)의 우수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삼상 17:47)을 익히 체험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사후 세대들에게도 남아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오직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열국을 남겨 두신 일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경륜이 담겨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분명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이러한 일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해 취해진 조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믿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블레셋은 그레데(Crete)에서 가나안 남부 해안 지대로 이주해 온 자들이다. 이들은 인종학 상 노아의 둘째 아들 함(Ham)을 조상으로 하고 있는 '가슬루힘' 지파(창 10:14)에 속한다. 이들은 사사 시대는 물론(10:7; 13:1-16:31), 사울과 다윗 때(삼상13:19-22; 14:52)와 남북 분열 왕조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왕상 15:27; 사 9:8-12).
이후 이들은 성경에 예언된(슥 9:5-7)대로 알렉산더대왕 때에 완전히 멸망 당했다(B.C. 332). 다섯 방백은 블레셋의 5대 성읍인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드, 가사의 방백들을 의미한다(수 13:3). 여기서 '방백'(사레네이)이란 호칭은 그리이스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인 '코이라노스', 또는 '타이라노스'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곧 블레셋인들이 그리이스에서 이주해 온 족속임을 증거 해준다. 성경에서 '사레네이' 또는 이에 준하는 '세렌'이란 호칭은 오직 블레셋족속에게만 사용되었다(16:5; 수 13:3; 삼상 5:8; 6:4; 7:7; 29:3,9; 대상 12:19). 한편 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가나안 땅에 이주해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블레셋인들의 초기 중심지는 그랄(Gerar)이었다(창 20:1,2 ; 21:32,34). 그러나 이후에는 아스돗 등 다섯 도시의 방백들이 중심이 되어 블레셋을 이끌었다.
가나안 모든 사람은 여호수아가 미처 다 정복하지 못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 가리킨다. 1:1주석 참조. 당시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땅의 경계에 대해서는 (수 13:1-7)에 상세히 언급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시돈은 두로의 북쪽 32km, 베이루트(Beirut)의 남쪽 32km 지점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서, B. C. 2750여 년경 함의 아들 가나안이 낳은 장남 '시돈'(창 10:15)에 의해 건립된 도시라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주로 이웃 도시인 두로(Tyre)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마 11:21; 눅 10:13). 이 당시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해상 무역을 통해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 이후에 이들은 베니게 인이라고 불려졌으며, 이들이 거하던 베니게는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행 11:19; 15:3).
'바알 헤르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수 11:17; 13:5)에 근거해 서 팔레스타인 최북 방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일 것으로 추정한다(Lange, Keil, Delitzsch). '하말어구' 역시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혹자는 다메섹 북부 약 200km 지점의 오론테스 강을 끼고 있는 수리아 성읍 '하맛'(Hamath) 부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Rawlinson). 그러나 대개는 '하맛에 들어가는곳'(수 13:5). 즉 레바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바알갓의 맞은편 북동쪽에 위치한 '르보(어구)-하맛'일 것으로 추정한다(Pulpit). 히위 족속은 가나안의 후손으로서 일반적으로(창 10:17; 대상 1:15)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 분류되어 진다. 이들 히위 족속은 대체적으로 호리 족속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히위'의 '와우'와 '호리'의 '레쉬'가 혼동되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서의 아내 오흘리바마가 (창 36:2)에서 히위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 뒤에서(창 36:20,25) 다시 호리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아무튼 이들은 아마르나 시대(B. C. 15세기-14세기) 동안에 북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미탄니(Mitanni)라는 매우 중요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미탄니 왕국은 당시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되었고, 레바논 산지와 하맛 어구(수 11:3 ; 삼하 24:7). 그리고 기브온과 그 주변 도성에까지 이주해 살면서 가나안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끼친 그러한 영향력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인 중 한 지도자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삼하 24:16)에 '아라우나'라고 하는 어떤 여부스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때의 '아라우나'는 '지도자'란 뜻을 가진 히위인 들의 호칭이었다(IDB).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새 세대를 열국을 통해서 시험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1절에서 말하는 시험과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2:22)에서 의미하듯이 열국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괴롭혀 그들의 신앙을 재확립케 하는 연단 내지 검증 과정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러한 시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세대들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준행하는지 알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에 들어간 후 그곳에 있는 족속들을 다 진멸 하고 그들과 언약을 맺거나 통혼치 말며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출 34:10-17; 신 7:1-5; 수 23:11-26). 그리고 그에 불순종할 시 따르는 징벌에 대해서도 익히 일러주셨다(신 28:15-68). 그러나 이 모든 경고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려하던 죄악에 빠지고 만다. 즉 그들은 가나안족속들을 용납한 결과(1:19,21,27-36) 자연히 우상 숭배에 빠지고 이방인과 통혼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다(6절). 하나님께서 이방 여인과 결혼을 금한 이유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신을 섬기게 될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 금지 조항을 어긴 데 대한 대가는 하나님의 진노와 이스라엘의 돌연한 멸망이다.
사실 그릇된 결혼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불행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사항이다. 심지어 성경은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이한 결과 그들이 갖고 온 우상을 섬기고 마는 과오에 빠졌음을 보여 준다(왕상 11:1-8). 또한 (창 6:1-5)은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사모하여 결혼한 결과 세상에 관영한 죄악에 물들고 말았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도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도 또한 이 때문이다(고후 6:14).
<참고: 가나안 종교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가나안 주민과의 전쟁은 군사적인 전쟁이 아니고 종교, 문화적인 것이었다. 사사기 저자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가나안 주님들이 섬기는 신을 섬겼으며, 그들의 딸과 결혼했다고 언급하고 있다(삿 3:1,4-6). 이스라엘은 가나안 주님들에게 군사적으로 패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종교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종교 앞에 그렇게 무력하게 무릎을 꿇게 되었는가? 가나안 종교에 대해서는 1929년 발굴된 우가리트 문서(라스 솨마라서판)을 통해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이 섬기는 신들은 자연의 힘을 의인화한 신들이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간 후부터 그들은 농사를 짓고 사는 농경 문화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가나안의 종교는 이러한 농경 문화에 적절한 신들을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4-10월까지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우기 때에 비가 내려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들어 낸 신들은 주로 이러한 비와 풍요를 주관하는 신들이었다. 우가리트 문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최고의 신이며 신들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엘'(El) 신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아세라였다. 그리고 엘 신에게는 풍요를 주관하는 '바알'(Baal)이란 아들과, 전쟁의 신인 '아낫'(Anath) 이라는 딸이 있었다. 그 후에 땅의 신이었던 바알은 강과 바다의 신인 얌(또는 '리워야단'(Lotan))과 누가 가장 강한 지를 가리기 위해서 싸우게 된다. 이 전쟁에서 결국 바알이 얌을 누르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 그는 어머니 아세라에게 부탁하여 궁전을 짓고 신들의 왕이 된다. 그러나 바알에 대해 반기를 든 신이 있었다. 그는 가뭄과 죽음의 신인 '못'(Mot)이었다. 바알은 지하 세계로 내려가서 못과 싸우다가 죽음의 빵을 먹고 죽게되었다. 비와 풍요를 주관하는 바알이 죽게되자, 비가 오지 않아 모든 땅이 갈라졌다. 신들은 바알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때에 바알의 누이이자 아냐였으며 전쟁의 신인 아낫이 지하 세계로 가서 못을 죽이고 바알을 구해낸다. 아낫은 못과 싸워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땅에 뿌린다. 이렇게 된 후에 바알은 다시 소생하게 되었고, 비가 내리며 땅에는 다시 생명이 생동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바알 종교의 신들은 자연을 의인화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비와 풍요가 필요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바알 종교에 쉽게 빠져들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교는 그들의 문화에 아주 자연스럽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알과 그의 아내인 아낫이 성 관계를 가질 때에 비가 내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전에 창기를 두고 제사를 드리러 온 남자들과 성행위를 갖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성행위를 보고 바알과 아낫이 흥분하여 성 관계를 갖게 하려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제사 관습을 통해서 많은 비와 풍요를 얻으려고 했다. 이러한 신들 외에도 중요한 가나안 신은 블레셋인들이 섬기던 '다곤'(Dagon) 신이 있다. 이는 곡물의 신으로서 바알 신과 그 성격이 비슷하여 바알과 이름이 다른 같은 신이 아닌가 추측된다. 라스 솨마라 지방에서 바알 신을 '다곤 신의 아들'로 부른 것을 보면 이것이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I.D.B.). 또한 라스 솨마라 서판에는 '그모스'(Chemosh, 삿 11:24) 혹은 '몰렉'(Molech, 레 18:21), '밀곰'(Milcom, 왕상 11:5)등으로도 부르던 암몬 신이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방 신들이 숭배되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순수한 여호와 종교를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나안 인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했다. 그리고 거듭해서 그들의 문화와 종교에 젖어들지 말라고 거듭해서 강조하였다. 그러나 농경 문화에 익숙해진 이스라엘 민족은 쉽게 가나안 종교에 동화되었으며, 가나안 사람들과 결혼을 하고 말았다. 그 결과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이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지 못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신들도 그들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심판자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사사 시대 동안 줄곧 계속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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