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1과) 4 |
사사기(6): 부록(1) 종교적 혼란(17-18장) |
1-2. 단 지파의 집단적 우상 숭배(18장)
가. 영토를 찾아 다니는 단 지파(18:1-7)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 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용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관하지 아니함이라."
(17:6)에 이어 본서 기자는 여기서 또다시 왕정 제도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간에는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 (17:6)은 개개인의 종교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왕정 제도의 필요성을 말했으나 본문에서는 자기 기업을 지키지 못하고 외세에 밀려나는 약한 지파를 왕정제도에 의해 강대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온전케 보존 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본래 단 지파는 여호수아 생존시에 기업을 분배받았었다(수 19:40-46). 그러나 가나안 정착 초기에 분배받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도리어 아모리 족속에 의해 쫓겨난 타 지파의 땅에 분산 거주하거나 새로운 정착지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1:34). (1:34)에서 본서 기자는 단이 분배받은 기업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요셉 족속이나 유다 지파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했기 때문임을 암시했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이유를 왕이 없는 것과 연관시키고 있다. 따라서 왕정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단순히 본서 기자의 주석이 아니라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보편적인 견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손의 고향이자(13:2-5, 24) 단 지파의 기업이던 소라와 에스다올(수 19:41)은 유다 지파와 단 지파의 경계 지역이다. 소라는 예루살렘 동쪽 약 6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며, 에스다올은 소라의 동북쪽 약 2.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원래 소라와 에스다올은 유다 지파의 기업이었는데(수 15:33), 훗날 기업을 재조정하면서 단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이곳에 안주(安住)치 못하고 많은 수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주하였는데(11절), 미리 말한 바와 같이 아모리족의 침입 때문이었다(1:34).
단 지파는 그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땅을 찾기 위해 그들의 씨족 가운데서 용맹한 다섯 사람을 미리 정탐꾼으로 파견하는 등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아마도 단 지파는 이러한 준비를 하면서 마치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을 재현하는 듯한 꿈에 젖었는지도 모른다(수 2:1). 하지만 약속의 유업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자들이 신 개척지를 얻는다 하여 거기서 신실한 언약 백성의 모습을 존속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의구심 그대로 그들의 불순하고 패역한 자태는 본 장에 확연히 기록되고 있다(5,30절). 한편 단 지파의 북쪽 이주에 대한 기사를 요약한 (수 19:47)에서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단 지파의 지경이 확장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탐꾼들은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북쪽으로 가던 도중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신당(17:1, 5)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레위 소년의 음성을 듣고 발을 멈추게 되었다. 이들이 어떻게 레위 소년의 음성을 금방 알아들었는 지는 분명치 않으나 다음 두 가지 경우로 추측해 볼 수 있다. (1) 이 레위 소년이 베들레헴을 떠날 때(17:8) 소라와 에스다올 지역을 지나쳐 왔기 때문에 정탐꾼들과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Wycliffe, Matthew Henry). (2) 에브라임의 방언은 특색이 있는데(12:6) 이 소년은 에브라임 방언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겨졌을 가능성도 있다(A.C. Hervey). 한편 이 밖에도 혹자는 단 사람들이 밤에 미가의 집에서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종소리(출 28:35)를 듣고 레위 인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Cassel).
그러나 본절은 분명히 단 사람들이 미가 집을 발견하고선 그곳에 유숙하러 가다가 레위 소년을 만났음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그 같은 추측은 개연성(蓋然性)이 없다. 단 사람들은 레위 소년이 생계 수단을 구하기 위해 떠돌아 다녔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는 정탐꾼들이 레위 소년을 금방 알아본 이유가 이전에 이미 안면이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을 한층 짙게 해준다. 레위인은 단 지파의 대표들에게 그는 자기가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으로 있게된 경위를 설명하였다. "고용했다"는 말('사카르)은 임금을 주고 고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레위 소년은 자신이 삯을 받고서 제사장으로 고용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종교인들이 얼마나 부패했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다.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세우심을 받는 성직임에도 불구하고 레위 소년은 천박한 직업 의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 또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복음을 증거하고 그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성스러운 일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마 28:19;벧전 2:9). 그러나 이 사명을 망각하고 물질의 노에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교회의 성직을 밭은 사람들은 천박한 직업 의식에 빠져 거룩한 복음 사역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로 봉사하기를 힘써야 한다(요 10:11, 12). 그리고 교회에 소속된 모든 성도들은 교직자로 하여금 복음 사역에 전무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행 6:4).
단 지파 대표들은 레위인에게 그들이 행하는 일이 형통할 것이지 하나님께 물어달라고 요청했다. 레위인은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이 여호와 앞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단 지파 사람들이 레위 소년에게 신탁을 구한 것은 그가 에봇과 드라빔(17:5)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단 사람들이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호칭한 것으로 보아 그들은 레위인이 섬기는 신을 이스라엘이 섬기는 유일신 여호와가 아니라 일반적인 신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Goslinga). 그러나 단 지파와는 달리 레위 소년은 '여호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간접적이나마 단 사람들에게 자신이 여호와께 신탁을 구할 자격이 있는 합법적인 제사장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그 길이 여호와 앞에 있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그 길을 주장하고 계시니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라는 뜻이다(Matthew Henry). 이 말을 들은 다섯 사람은 그를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했다. 그들이 보니 그 곳 백성들은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게 아무 염려 없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서로 괴롭히지 않았고, 시돈 사람과 거리가 멀어서 아무도 그들을 해치지 않았다. 라이스 또는 레센(수 19:47)은 오늘날의 '텔 엘 카디'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팔레스타인 최북단에 있으며 헬몬 산에 가려있어서 아람과 단절되어 있고, 레바논 지역에 대해서도 페니키아와도 단절되어 있어서 외침을 받을 염려가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요단 강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인하여 물이 충분했기 때문에 힘이 약한 단 지파의 정착지로서는 안성마춤이었다. 더욱이 원주민들은 이러한 천연적인 조건에 타성이 젖어 외침에 대해 무방비 상태일 뿐만 아니라 군사력도 빈약했으므로 단 지파가 정복하기에는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여기서 '한가하다'는 말('쉐케트')은 '풍족한 가운데 여유를 즐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공동 번역은 이를 '아쉬운 것 없이'로 번역하고 있다. 실제로 시돈인들은 동서 교역의 중개지로서 또한 상아 제품 제조 산업 따위로 많은 부(富)를 벌어 들여 풍족한 경제 생활을 구가하였다. 따라서 라이스 거민들이 이러한 시돈 사람 같은 경제 생활을 누렸다함은 그들이 상당히 여유 있는 생활을 즐겼음을 의미한다(Pulpit).
라이스 사람이 한가하고 평안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권세 잡은 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고대 근동 지역의 왕들은 대체로 세습에 의한 독재자들이었고 이들은 외침을 막고 부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이유로 많은 세금을 징수하고 사람들을 징용에 끌어넣었다. 그러나 라이스는 천연적인 요새였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다. 라이스는 시돈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러나 시돈은 레바논 산맥의 장애로 인해 라이스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고 또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세를 누렸으므로 굳이 라이스에까지 간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따라서 라이스는 천연 방벽을 의지하여 사실상 독립된 생활을 누리고는 있었으나, 자체적인 방어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단 자손의 침입을 막을 수가 없었다(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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