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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62과)2.

Joyfule 2010. 12. 25. 22:12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62과)2.

말라기(2): 결혼과 이혼-성경적 결혼관- (2:1-17)

 말라기(형식적인 종교에 대한 책망)

 

2. 결혼과 이혼 -성경적 결혼관-(2장)


2-5. 이혼죄(13-16)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13),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14).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16)."

 

  이스라엘 남자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들과의 결혼은 또 다른 죄악의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이방 여인들과의 재혼은 유대 여인들과의 이혼이 전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대 남자들에게 버림을 받은 유대 부인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와서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그러므로 전 남편들이 제물을 가지고 제단이 나아올 때에 하나님은 그 제물을 받으실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가슴 아파서 울부짖는 유대 부인들의 아픔을 돌아보셨으며, 악한 일을 행한 유대 남자들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 구약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이혼죄에 대해서 이처럼 강하게 언급한 적이 없다.

 

 이러한 언급은 이혼이 만연한 오늘날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혼죄를 범하면 이혼 당한 자가 울며 부르짖는 애통이 제단에 메아리를 치기 때문에, 그가 드리는 모든 제물과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말라기 시대의 유대인들은 왜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와서 왜 자기들이 드리는 제물을 받지 않으셨냐고 물었다. 그때에 하나님은 자신이 합법적인 결혼의 증인이 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버린 유대 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하고, 젊었을 때부터 어려운 일을 함께 겪어온 친구요 동반자였다.

 

  2:15은 이혼에 대한 강력한 논쟁으로서, 말라기 전체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로 간주되고 있다. 이 구절은 유대교 해석자나 기독교 해석자들에게 항상 문제가 되어 왔다. 이 구절의 상반절은 비교적 해석하기가 쉽다. 그러나 하반절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말라기는 유대 남자들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고 유대 부인들을 잘못 대우한 일이 큰 잘못이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의 상반절을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의 나머지를 가진 자는 아무도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이것은 유대 남자들이 하나님의 영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무자비하게 유대 부인과 이혼하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하반절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다. 탈굼과 대부분의 랍비들은 "하나"를 첫 부인 외에 다른 부인을 취한 아브라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말라기 시대의 유대인들은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인 후에 다시 하갈을 취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자기 행위를 정당화 하려고 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이기적인 쾌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후손을 얻기 위해서 하갈을 취했으며,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한 후에도 하나님의 영이 아브라함에게 머물러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한 것을 옳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말라기 시대 유대 남자들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아니라 자기 정욕을 위해서 유대 부인들을 버리고 이방여인들과 재혼을 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이 구절을 아브라함에게 적용하여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지자 말라기가 이혼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의 언래적인 제도가 언급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창 2:24)에 나오는 "한 몸"과 여기에 있는 "하나"를 비교하라! 하나님은 결혼 관계 속에서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많은 부인을 주실 수 있으셨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많은 여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렇지 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담에게 한 여인만을 만들어 주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손을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경건한 후손들이 태어나기를 원하셨다.

 

 일부 다처제와 이혼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행동은 약속된 메시아의 혈통을 유지하는 일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은 유대 남자들의 이방 여인과의 잡혼으로 인해 도전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유대 남자들에게 자기 행위를 부지런히 살펴보고, 옳지 못한 행동을 삼가라고 촉구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은 아내를 버리는 이혼을 미워하신다.

 

이 말씀은 이혼을 허락한 (신 24:1)과 대치되는 것은 아니다. 신명기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워낙 완악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혼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상태에서 이혼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또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사람들도 가증하게 여기신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한 여인을 자기 아내로 주장하기 위해서 그 여인에게 옷을 던지던 당시의 관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아내를 위해서 옷을 펼치지 않고, 오히려 폭력으로 그 옷을 가리웠다. 옷은 결혼과 신뢰와 보호를 상징한다. 선지자는 다시 한 번 이러한 중요한 일에 대해서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2-6. 하나님을 괴롭힘(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17)."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세 번째 악한 일은 "회의주의"였다. 그들은 불경건과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괴롭혔으며, 그들의 계속된 악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참고 바라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악인이 번영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러한 일을 보고 하나님의 의로운 섭리를 부정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포로로 지냈으며, 그 후에도 많은 시련을 받았다. 그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형통하게 하시며, 이교도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번영을 주셨다고 말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고난을 주시고, 악인을 엄격하게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했다. 그들은 날마다 회당에서 전파되는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항의했다. 이러한 그들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3:1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 대답에 대해서는 3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2-7. 축복이 저주로 변하다

  인간의 심령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축복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는다. 불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축복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누릴 줄 몰랐다. 그들의 축복은 율법에 대한 순종 여부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처음에 그들에게 주어졌던 축복은 점차 저주로 변하고 말았다. 이러한 일은 어느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그들은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면 그들이 받은 축복은 저주로 변하게 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성령과 복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하나님은 그 축복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우리가 축복을 상실한 후에 후회하지 말고, 그 축복이 주어져 있을 때에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주신 풍성하신 축복을 체험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