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5과)3 |
열왕기(2): 솔로몬 이야기(1)(1-8장) |
3. 왕위 계승 문제
3-1. 다윗의 노쇠함(1-4)
솔로몬 내러티브는 왕위 계승과 연관관 이야기들이 반복되면서 솔로몬 이야기의 바깥틀을 형성하고 있다. 솔로몬 이야기는 왕위 계승이 큰 문제로 부각되면서 시작하고 있다(1-2장).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게 되었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서(삼하 5:4-5)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도합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므로(2:11; 대상 29:27). 이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이때에 그는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았다(1). '이불'('베가드')은 원래 원래 '덮개'란 뜻을 가진 단어로 의복이나 겉옷, 또는 이불(창 39:12; 왕상 22;10)을 의미한다. 그는 젊어서 수많은 망명 생활과 전쟁으로 온갖 풍파를 겪었으며, 말년에는 집안의 불화, 반란, 살인, 음모 등을 인해 심신이 지칠대로 지치고 말았다.
본서 초두에 다윗 왕의 노환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은
1) 다윗 이 더이상 국정을 돌볼 수 없게 되었으며,
2) 이로 인해 아도니야의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3) 솔로몬이 급히 왕으로 즉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노쇠는 아직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윗의 신하들을 근심케 만들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신하들은 다윗을 위해 젊은 여인을 맞아들여서 다윗의 곁에서 그를 간호하게 해야된다고 요청했다. 젊은이의 온기를 받아 늙음 몸의 기운을 회복하는 방법은 고대의 치료 방법 중에 하나였다. 고대 헬라의 명의 갈렌(Galen)에 의하면, 젊고 건강한 사람의 체온으로 노쇠한 사람의 체온 저하를 방지하는 치료 의술이 실제로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Galen, Mathus medicus, 8.7).
다윗의 신하들은 수넴 여인 아비삭을 구해다가 다윗을 섬기게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녀와 동침하려고 하지는 않았다(2-4). 수넴은 나사렛에서 11.2km 정도 떨어진 작은 헬몬산의 남동쪽 기슭에 있는 잇사갈 지파의 고을로 현재의 '술렘' 또는 '솔람'이란 곳이다. 다윗이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은 것은 1) 그녀의 의무가 간호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이거나, 2) 그가 노쇠하여 무기력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3-2. 아도니야의 모반(5-27)
이러한 상태에서 왕이 되려고 나선 자는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였다. 그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통치할 때에 학깃을 통해 낳은 넷째 아들이었다. 첫째인 암논은 압살롬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셋째인 압살롬은 반란으로 인해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인 길르압은 어려서 죽은 것으로 보인다(대상 3;1). 아도니야는 남아 있는 자녀 중에서 장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도니야는 용모가 준수한 자로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며(6), 군대 장관 요압이나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같은 사람들을 포섭할 만한 정치력이 있었다(7절). 그러나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뜻과 다윗 왕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데 있어서 장자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선택이었다(신 17:15). 그리고 이 선택은 이미 솔로몬에게 주어졌었다(삼하 7:12-17; 12:24,-5; 대상 22:6-10). 아도니야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다. 그는 자기를 위해 병거와 기병, 그리고 호위병 50인을 예비하였다(5). 그러나 이때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대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를 따르지 않았다(8).
사독은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의 후손 아히둡의 아들이었다(삼하8:17). 브나야는 다윗의 전성기에 그렛과 블렛 사람을 관할했던 사람이다(삼하 8:18).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은 외국인 용병으로 왕의 친위대를 구성하고 있었고(38절), 브나야는 이들의 대장이었다(대상 18:17). 본래 브나야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로서(대상 27:5) 레위인이었으나, 그의 뛰어난 무용으로 인해 다윗 왕의 시위대장으로 발탁된 것 같다(삼하 23:20-23; 대상 11:22-25).
그는 후에 솔로몬의 명령을 받고 아도니야의 반란 사건에 가담한 요압을 죽이고 군대 장관이 된다(2:28-35). 선지자 나단은 다윗의 신임을 받는 왕궁의 조언자였다. 당시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나단은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을 솔로몬에게 넘겨주도록 했으며(삼하 7:4-170), 또한 밧세바를 취한 일로 다윗을 꾸짖기도 했다(삼하 12:1-14).
그리고 나단은 솔로몬 출생시 하나님의 명으로 솔로몬에게 '여디디야' (Jedidiah,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란 뜻)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일이 있으므로, 일찍부터 나단은 솔로몬이 다윗 왕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암시받은 바 있었다(삼하 12: 24-25). 시므이와 레이, 그리고 에발트가 누구인지는 확인된 것이 없다.
아도니야는 에느로겔 근처에 있는 소헬렛의 돌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들과 자기 신복들을 모두 초청했다(9). '에느로겔'(삼하 17:17) 또는 '엔로겔'(수 15:7)은 '정탐의 우물'이란 뜻으로, 예루살렘 남동쪽에서 멀지 않은 기드론 골짜기에 있다. 이곳은 잔치를 벌이기에 적당하며 지금도 예루살렘 주민의 휴양지이다. '소헬렛'은 '뱀'이란 뜻인데, 느헤미야 2:13의 '용정'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Benzinger).
이곳 소헬렛의 돌은 자연 그대로 제단이 될 수 있었다. 양과 소와 살진 송아지는 잔치 음식이 아니고 제사에 쓰이는 희생 제물이었다(민 28-29장), 아도니야는 제사 잔치를 베풂으로 반역의 거사를 개시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1) 제사 형식을 갖춤으로 종교계와 군부 실력자들의 회합 의도를 은폐시킬 수 있었고,
2) 자신의 거사 행위에 신적인 정통성이 있음을 나타내며,
3) 거사에 가담한 자들 상호간에 정신적, 종교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다윗은 여러 왕비로부터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있었다.
(대상 3:1-9)을보면 아들만 대략 19명 가량 되었는데, 그 중에 아도니야가 넷째 아들이었으며, 솔로몬은 열 번째 아들이었다. 당시에 아도니야가 최연장자였으며, 솔로몬을 제외한 그의 동생은 모두 14명이었다.
이 모임에 아도니야는 솔로몬과 그를 지지하는 나단과 브나야는 초청하지 않았다(10).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지자 나단이 밧세바를 찾아가서 그 소식을 고했다(11). 그는 아도니야의 모반을 무효화히기 위해서 지혜롭게 행동했다. 그는 밧세바를 먼저 찾아가서 다윗 왕에게 아도니야의 모반 소식을 고하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자신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12-14). 나단의 말을 들은 밧세바는 즉시 다윗에게 들어가서 아도니야의 모반 거사를 알리고, 가만히 있으면 다윗이 다음 왕으로 정한 솔로몬과 자신은 죄인이 될 것이라고 고했다(15-21). 그리고 이때에 나단도 다윗에게 들어가서 아도니야의 거사 소식을 고했다. 나단은 다윗이 이미 자신에게 다음 왕이 될 사람을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고 말했다(22-27).
'━━ 보관 자료 ━━ > 인터넷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65과)5. (0) | 2009.03.09 |
---|---|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5과)4 (0) | 2009.03.07 |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5과)2 (0) | 2009.03.06 |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4과) - 열왕기 서론 (0) | 2009.03.05 |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3과) 12. (0) | 2009.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