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2): 솔로몬 이야기(1)(1-8장)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65과)5.
3-5. 다윗의 유언과 죽음(2:1-12)
다윗은 자신이 죽을 날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할 말을 남기게 되었다(1). 그가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였다.
1)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할 것(2:1-4).
2) 요압의 죄를 물어 그를 죽일 것(2:5-6).
3) 길르앗 사람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 것(2:7).
4) 게라의 아들 시므이를 제거할 것(2:8-9).
다윗은 세상을 떠나면서 솔로몬에서 스스로 강하게 하여 대장부가 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해하고, 하나님의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대로 지키라고 부탁했다. 다윗은 솔로몬이 이렇게 하면 그가 무엇을 하든지 또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하신 약속을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주었다.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솔로몬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확실하게 이루실 것이라고 말했다.
다윗은 요압이 무죄한 사람들, 즉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인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에 대해서 그 죄를 물을 것을 부탁하였다. 요압은 태평성대에 개인의 원한과 야망을 인해 그들을 죽여 피를 흘렸다. 그러나 다윗은 그가 자신을 많이 도왔으며, 또 그를 해칠 힘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그가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린 죄를 처벌하도록 부탁했다. 다윗은 자신이 압살롬의 난 때에 자기를 도와 다시 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바실래의 은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솔로몬에게 그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도록 부탁을 남겼다.
다윗은 압살롬의 난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다윗은 그때에 그가 자신을 영접하는 것을 보고 그를 살려두었다. 그러나 다윗은 솔로몬에게 그를 제거하라고 부탁했다. 그 후에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 된 지 40년(헤브론-7년, 예루살렘-33년)만에 죽게 되었으며, 솔로몬에 의해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며 이때에 나라는 심히 견고해지게 되었다(10-12).
3-6. 적을 제거하는 솔로몬(2:13-46)
왕이 된 솔로몬은 그의 왕 위를 위협하는 적들을 하나씩 제거하게 된다. 그가 제거한 정적들은 1) 왕위를 탐했던 형 아도니야(13-25), 아도니야 편에 섰던 2) 군대장관 요압(26-27)과 3) 대제사장 아비아달(28-35), 그리고 4) 게라의 아들 시므이(36-46)였다.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제거하게 된 일은 그가 다윗의 첩 수넴 여자 아비삭을 요구한 데서 비롯되었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의 모친인 밧세바를 찾아가서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의 첩으로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밧세바는 그의 요청을 솔로몬에게 가서 그대로 전달했다. 솔로몬은 그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여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시켜 아도니야를 죽이도록 명했다. 아도니야가 이러한 간청을 한 것은 아비삭의 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도니야는 이러한 요구를 통해서 왕위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의 첩이었다. 고대 근동에서는 후왕이 선왕의 첩을 아내로 삼음으로 자신의 왕위를 알리는 관습이 있었다. 밧세바는 이러한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혜로운 솔로몬은 이러한 아도니야의 저의를 간파하고 그를 처형시켰다. 솔로몬은 일찌기 아도니야에게 "네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을 것이라"(1:52)고 말했다. 그리고 아도니야는 아비삭을 요구함으로 왕이 되려는 의도를 비치는 것을 보고 그를 제거하기에 이르렀다(13-26).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죽인 후에 아도니야와 함께 반란에 참여했던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장관 요압을 제거하였다.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대제사장직에서 파문하고, 그를 그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돌려보냈다.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고을로 제사장의 성읍이었다(수 21:18; 대상 6:60).
이 곳은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5.6km 정도 되는 곳에 있었으며, 예레미야의 부친인 힐기야의 고향이기도 했다(렘 1:1). 솔로몬은 그가 마땅히 반역죄로 죽어야했지만, 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었으며, 또 그 동안 다윗과 함께 동고동락을 함께 해 온 일로 인해 그를 파문하고 목숨을 살려주었다. 이 일로 인해 엘리의 아들이 대제사장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던 하나님의 예언이 마침내 성취되었다(27).
군대장관 요압은 아도니야의 죽음과 아비아달의 파문 소식을 듣고 두려워 하였다. 그는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즉시 여호와의 제던으로 가서 제단 뿔을 붙잡았다. 솔로몬은 요압이 제단 뿔을 붙잡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브나야를 보내어 요압을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나 브나야가 요압에게 갔을 때에 요압은 제단 뿔에서 죽겠다고 고집하며 내려오지 않았다. 브나야는 그 소식을 다시 솔로몬에게 알렸으며, 솔로몬은 그의 말대로 그를 제단 뿔에서 죽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받은 브나야는 즉시 제단 뿔에 있던 요압을 쳐서 죽였으며, 요압은 거친 땅에 있던 그의 집에 장사되게 되었다. 그 후에 솔로몬은 요압을 대신해서 브나야를 그의 군대장관으로 삼았다(28-35).
그 후에 다윗은 다시 게라의 아들 시므이를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예루살렘에 와서 집을 짓고 그 곳을 떠나지 말라고 지시했다. 솔로몬은 만일 그가 기드론 시내를 건너게 되면 반드시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일종의 주거 제한 및 감시를 위한 조치였다. 솔로몬은 이렇게 함으로 그가 베냐민 지파에 대해 영향력을 미쳐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조치했던 것이다.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은 예루살렘에서 약 9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베냐민 지파의 요충지였다. 시므이는 솔로몬의 명령을 받아들여 그의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후에 그의 종 중에 두 명이 블레셋 땅인 가드로 도망을 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가드로 가서 도망친 자기의 종을 찾아오려고 했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의 관습에서는 합법적인 일이었다.
그는 '가드'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곳이므로 별 탈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므이가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그는 예루살렘을 벗어나기 전에 먼저 왕의 허락을 받았을 것이다. 만일 그가 이러한 절차를 밟았다면, 그는 합법적으로 도망간 종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솔로몬을 가볍게 여기고 행동하다가 죽음을 자초하게 되었다. 시므이는 직접 아기스 왕과 교섭하여 그의 종들을 되찾았다. 이러한 행동은 정치척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이었다.
즉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시므이가 가드로 정치적 망령을 하거나, 그들과 동맹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삼상 27:1-2; 29:1-2). 이러한 시므이의 행동은 즉각 솔로몬에게 보고되었다. 그리고 솔로몬은 그가 말한 대로 브나야를 보내어 시므이를 죽이도록 명령했다(36-46). 이렇게 해서 솔로몬은 그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주변 세력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후에 나라는 솔로몬의 손에서 매우 견고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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