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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8과)2

Joyfule 2009. 4. 5. 21:34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8과)2

열왕기(5): 분열왕국 이야기(2)(12-17장)

 

 


2. 남북 투쟁 시기의 유다(주전 931-870, 왕상 14:21-15:24, 대하 10-16장)(르호보암-아사)

  처음 솔로몬 왕국이 분열 되었을 때에 유다 지파만이 르호보암을 따랐다.(왕상 12:20) 베냐민 지파는 처음에 북쪽의 여로보암을 좆았으나, 지리적으로 유다와 인접한 관계로 후에 남 유다에 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우고 레위 지파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을 때에, 레위 지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남 유다로 귀환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르호보암의 세력이 강화되었다.(대하 11:13-17)

 

2-1. 르호보암(주전 931-913 왕상 14:21-31, 대하 10-12장)
  르호보암은 41세에 남 유다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7년을 다스렸다. 그는 다윗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 솔로몬의 말기의 영향을 받아 문란하도록 우상을 섬겼는데, 이는 암몬 족속이었던 그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왕상 14:21, 31)

 

 가. 북 이스라엘과의 전쟁(왕상 14:25, 26, 30)
  여로보암이 반란을 일으키자 르호보암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중에서 용사 18만을 뽑아 여로보암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선지자 스마야를 통하여 이를 금하셨다. 그 이후 그는 북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항상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나. 애굽 왕 시삭의 침략(왕상 14:25-27, 대하 12:2-12)
  하나님께서는 르호보암의 교만함을 징벌하시기 위하여 르호보암 제 5년에 애굽왕 시삭의 침입을 받게 하셨다.(대하 12:1,2, 5, 7-8) 시삭은 여로보암이 애굽에 있을 때에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던 왕이었다.(왕상 11:40) 르호보암은 애굽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을 때에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과 솔로몬 때에 만든 금 방패까지 모두 다 조공으로 바치고 겨우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여호와께서 저희의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저희가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 구원하여....그러나 저희가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열국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되리라" (대하 12:4-8)


2-2. 아비야(주전 913-911, 왕상 15:1-8, 대하 13:1-22: 여로보암을 이김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유다왕이 되었으며 예루살렘에서 3년간 통치하였다. 그는 르호보암왕의 죄를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해 주셨다(왕상 15:4, 왕상 11:13, 36). 아비야는 약 40만의 군대로 북 이스라엘의 80만의 군대를 물리치게 되었는데,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50만의 희생자를 내었고, 종교 중심지였던 벧엘과 몇 성읍들을 빼앗기게 되었다(대하 13:19). 그는 북 이스라엘의 배반을 꾸짖었으며, 위기를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원함을 받았다.(대하 13:4-12)


2-3. 아사(주전 911-870, 왕상 15:9-24, 대하 14-16장): 성공과 실수
  아사는 아비야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에서 41년간을 통치하였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모든 우상을 제거하였다.

 

 가. 종교 개혁 운동(왕상 15:11-15, 대하 14:2-5, 15:8-18)
  그는 개혁 운동을 가장 가까운 궁중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우상 숭배를 하자 이를 꾸짖고 그녀의 태후의 위를 폐하였다. 그는 또한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들을 찍어 불살랐으며, 열조의 모든 우상들과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제거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산당은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는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히 행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막아 주시고 나라에 평안을 주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에 감사하면서 나라를 견고케 하기 위하여 성곽을 만들며 성읍들을 건축했다. 그의 개혁 운동은 선지자 아사랴의 조언에 힘입은 바 크며, 그의 경건 운동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중에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지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사왕에게로 돌아왔다.(15:8-9)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회에 모여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였다.(15;13-15)

 

 나. 애굽 및 구스와의 전쟁에서의 승리(대하 14:9-15)
  아사 왕은 41년간의 통치 기간에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르었다. 하나는 구스(에디오피아)사람 세라가 이끌던 애굽 및 구스군과의 전쟁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왕인 바아사와의 전쟁이었다. 애굽(구스)과의 전쟁에 있어서 세라의 군대는 군사가 100만이요, 병거가 300승이었다. 이것은 아사왕의 군대 58만과 비교해 볼 때에 두 배에 가까운 숫자였다. 그러나 아사 왕은 적군이 "마레사"까지 진입하게 되었을 때에 스바다 골짜기에 진을 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결국 아사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전쟁에서 대승리를 했으며, 블레셋 땅인 그랄까지 쫓아가서 많은 전리품을 얻었고, 블레셋까지 점령하였다.(대하 14:13-15)

 

 다. 이스라엘과의 전쟁과 하나님의 책망(왕상 15:16-22, 대하 16:1-10)
  그러나 아사 왕은 세라의 군대를 이긴 후에 점차로 신앙이 식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아사 왕 제 16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공격해왔다. 바아사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연결해주는 요충지인 베냐민 땅 "라마"를 점령하고, 거기에 성을 건축하여 백성들이 유다와 연락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이때에 아사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메섹(아람) 왕 벤하닷에게 원병을 요청하였다. 다메섹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북방 이스라엘을 공격했으며, 결국 바아사는 철군을 하게되었다. 아사 왕은 라마를 건축하던 모든 건축재들을 모아서 "게바"와 "미스바"의 두 성을 건축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하나니를 통하여 다메섹을 의지한 아사 왕을 책망하였을 때에 왕은 크게 분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선지자 하나니는 만일 아사 왕이 아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했다면 이스라엘뿐 아니라 아람까지도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사 왕은 그 후 2년 후에 병이 들어 죽었다.